고분벽화와 암각화 연구에 평생을 바쳐 온 전호태 울산대학교 명예교수가 최근 새로운 방식으로 역사와 마주했다. 40년 넘게 학문으로 만난 선사시대 유적, 국보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를 옻칠화로 되살려낸 것이다.
학문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번 시도는 9일부터 오는 28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무우수갤러리에서 열리는 '전호태 옻칠화 초대전-시간여행'을 통해 공개된다.
전 명예교수는 작년 3월 통도사 서운암에서 옻칠 창작 작업을 하는 대한불교 조계종 종정 중봉 성파대종사를 통해 옻칠화를 처음 접했고, 연습작으로 시작한 작업이 자연스럽게 수십 년 간 연구해 온 암각화로 이어졌다.
"만나자마자 다짜고짜 자그맣고 검은 판과 민화 용머리 그림의 본을 주며 판박이 방식으로 본뜨기 하라고 하시더군요. 매주 하루 두 달 동안 가서 시키는 대로 했더니, 청룡 머리 옻칠화가 완성됐습니다."
이렇게 두 달 동안 연습작을 만들다가 자연스레 수십 년 동안 익숙한 연구 주제였던 암각화와 고분벽화에 눈길이 쏠리게 됐다.
어차피 아무도 손대지 않을 것이고, 실제 잘 보이지도 않으니, 이런 작업을 하면 그 결과물이 암각화와 고분벽화를 제대로 보고, 고구려사, 고구려 문화, 선사시대 암각화가 우리 역사문화에서 지니는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는 것.
특히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와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모티브 작품은 전 교수의 오랜 연구 결과가 녹아 있다.
전 교수는 30년 동안 세 차례 정밀실측도를 제작한 경험을 살려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에 그림이 새겨지는 순서에 맞추어 차례로 점쪼기 그림을 넣고, 기하문을 더했다. 선각화와 명문도 본래의 필치대로 넣어보았다. 기본적인 선 넣기 작업을 마친 뒤, 정제 칠과 사포질을 두어 차례 반복했다. 돌아보면 여러 시대를 한 화면에 새기고 긋는 작업이 쉽지 않다는 걸 경험하는 귀중한 시간이었다고 한다.
국보 울주 대곡리 반구대암각화 혹등고래와 사람, 나무판에 옻칠, 50X50㎝.
또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모티브 작품은 혹등고래가 등장하는 장면을 부자 간의 교감으로 재해석해 담아냈다.
물속에서 솟구쳐 올라 활 모양으로 몸을 뒤로 젖혔다가 잠수하는 듯한 모습으로 새겨진 혹등고래가 배를 타고 바다로 나온 아버지, 아들과 만나 교감하는 장면이다.
"'고래 신이 오시면 우린 굶지 않을 거야'라는 상상의 대화 내용이 담긴 제 시가 떠올랐어요. 고래가 단순한 사냥의 대상이 아니라 신화 속 존재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죠. 그런 감정을 담아, 바다와 하늘을 푸른색 옻칠로 겹겹이 칠하고, 사포질과 광내기를 반복했습니다."
전 명예교수는 "40년 고분벽화와 암각화를 공부하면서 직접 그려보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옻 물감으로 암각화를 그리게 될 줄은 몰랐다"며 "학문으로는 수없이 분석하고 기록해 왔지만, 그걸 그리고 새기는 건 전혀 다른 경험이더군요. 암각화가 처음 새겨지던 시대의 풍경으로, 마음만큼은 잠시 돌아가 있었던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는 또 "암각화는 세월의 손길을 받은 유적"이라며 "옻칠 작업을 하며 세월을 거슬러 암각화가 막 새겨지던 그때의 풍경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나 자신에게 질문했고, 이번 그림들은 그런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전호태 울산대 명예교수가 옻칠작업을 하는 모습. 전호태 울산대 명예교수 제공
이번 전시에는 암각화 2점 외에도, 고구려 고분벽화가 20점, 신라 유물 2점, 중국 대동 운강석굴 출토 북위시대 조각 잔편 1점 등이 함께 전시돼 한국 고대사에 대한 깊은 시선을 예술로 만나볼 수 있다.
울산매일 | 고은정 기자 kowriter1@ius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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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분벽화와 암각화 연구에 평생을 바쳐 온 전호태 울산대학교 명예교수가 최근 새로운 방식으로 역사와 마주했다. 40년 넘게 학문으로 만난 선사시대 유적, 국보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를 옻칠화로 되살려낸 것이다.
학문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번 시도는 9일부터 오는 28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무우수갤러리에서 열리는 '전호태 옻칠화 초대전-시간여행'을 통해 공개된다.
전 명예교수는 작년 3월 통도사 서운암에서 옻칠 창작 작업을 하는 대한불교 조계종 종정 중봉 성파대종사를 통해 옻칠화를 처음 접했고, 연습작으로 시작한 작업이 자연스럽게 수십 년 간 연구해 온 암각화로 이어졌다.
이렇게 두 달 동안 연습작을 만들다가 자연스레 수십 년 동안 익숙한 연구 주제였던 암각화와 고분벽화에 눈길이 쏠리게 됐다.
어차피 아무도 손대지 않을 것이고, 실제 잘 보이지도 않으니, 이런 작업을 하면 그 결과물이 암각화와 고분벽화를 제대로 보고, 고구려사, 고구려 문화, 선사시대 암각화가 우리 역사문화에서 지니는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는 것.
특히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와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모티브 작품은 전 교수의 오랜 연구 결과가 녹아 있다.
전 교수는 30년 동안 세 차례 정밀실측도를 제작한 경험을 살려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에 그림이 새겨지는 순서에 맞추어 차례로 점쪼기 그림을 넣고, 기하문을 더했다. 선각화와 명문도 본래의 필치대로 넣어보았다. 기본적인 선 넣기 작업을 마친 뒤, 정제 칠과 사포질을 두어 차례 반복했다. 돌아보면 여러 시대를 한 화면에 새기고 긋는 작업이 쉽지 않다는 걸 경험하는 귀중한 시간이었다고 한다.
또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모티브 작품은 혹등고래가 등장하는 장면을 부자 간의 교감으로 재해석해 담아냈다.
물속에서 솟구쳐 올라 활 모양으로 몸을 뒤로 젖혔다가 잠수하는 듯한 모습으로 새겨진 혹등고래가 배를 타고 바다로 나온 아버지, 아들과 만나 교감하는 장면이다.
"'고래 신이 오시면 우린 굶지 않을 거야'라는 상상의 대화 내용이 담긴 제 시가 떠올랐어요. 고래가 단순한 사냥의 대상이 아니라 신화 속 존재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죠. 그런 감정을 담아, 바다와 하늘을 푸른색 옻칠로 겹겹이 칠하고, 사포질과 광내기를 반복했습니다."
전 명예교수는 "40년 고분벽화와 암각화를 공부하면서 직접 그려보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옻 물감으로 암각화를 그리게 될 줄은 몰랐다"며 "학문으로는 수없이 분석하고 기록해 왔지만, 그걸 그리고 새기는 건 전혀 다른 경험이더군요. 암각화가 처음 새겨지던 시대의 풍경으로, 마음만큼은 잠시 돌아가 있었던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는 또 "암각화는 세월의 손길을 받은 유적"이라며 "옻칠 작업을 하며 세월을 거슬러 암각화가 막 새겨지던 그때의 풍경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나 자신에게 질문했고, 이번 그림들은 그런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는 암각화 2점 외에도, 고구려 고분벽화가 20점, 신라 유물 2점, 중국 대동 운강석굴 출토 북위시대 조각 잔편 1점 등이 함께 전시돼 한국 고대사에 대한 깊은 시선을 예술로 만나볼 수 있다.
울산매일 | 고은정 기자 kowriter1@ius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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