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 서정민 작가, 우공이산이 이룬 선(禪)적 미학

관리자
2024-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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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 작가, 우공이산이 이룬 선(禪)적 미학


11일~10월 14일 무우수갤러리 초대전
한지를 쌓아 올린 화폭엔 명상적 분위기

[서울 =뉴스프리존]편완식 미술전문기자= 명말 청초의 예술가 시타오(石濤)는“일 획을 긋는 것이 만 획의 근본이고, 만상의 근원이 된다”라고 호방하게 선언했다. 회화에서 빈 화폭에 선을 처음 긋는 것은 그야말로 천지창조고, 알파요, 오메가이다. 선이 그어지기 전에 공간은 혼돈이라고 해도 좋고 허구라고 해도 좋다. 하지만 일단 공간에 선이 그어지면서 구분은 지워지며 경계가 세워져 긋는 주체의 위치에 따라 안과 밖이 나누어진다. 평면에 그어진 선은 면을 분할하는 면이 되고 공간을 가로지르는 선은 틈이 되고 사이 공간이 된다.

수행적 노동으로 회폭을 일구는 서정민 작가

수행적 노동으로 회폭을 일구는 서정민 작가

한지를 매체로 선을 만들어 가는 서장민 작가의 초대전 ‘무한의 선(禪)’이 11일부터 10월 14일까지 인사동 무우수갤러리(대표 이연숙)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는 작가의 ‘선(Lines) 시리즈’를 만나볼 수 있다.

서정민 작가의 이력은 좀 독특하다. 대학 졸업 후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며 가장으로 삶을 살아가던 어느 날 자신이 바라던 예술가의 꿈을 이루고 싶다는 열망에 퇴근 이후 무수한 선 긋기 작업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독학으로 작업을 해오던 중 갈증을 느껴 늦은 나이에 조선대학교에 진학하게 된다. 대학에서 만난 스승 김유섭을 통해 현대 미술에 새로운 시각이 열린 작가는 기존의 풍경을 담은 유화 작품을 선보이다가, 보이는 세계 그 이상을 경험하고자 선(line)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수년간 연필 선을 긋는 작업만을 고집하던 작가는 우연히 한지를 사용하게 된 것이 현재에 이르렀다.

서정민의 회화를 보고 온 날 밤 잠을 설쳤다는 .미술평론가 김웅기는 “ 안료가 아닌 한지를 자르고, 말고, 쪼개고, 붙여서 만든 작은 조각들로 꽉 차 있는 거대한 캔버스를 보고 우선 그 시시포스적인 수고에 압도되었다. 그 촘촘하게 붙어있고 박혀있는 조각들이 만들어 내는 강박의 스펙터클에 숨이 막혔다. 스튜디오에서 가지고 나온 작은 종이 다발 조각을 만지작거리고 있으면 소름까지 돋을 정도로 뭔가가 감각적으로 불편했다. 족히 백 장도 넘을 작은 종이 다발이 주는 촉감은 부드러운 플라스틱이나 매끈한 스티로폼 같은 느낌이 났다. 인식과 감각이 계속 어긋났으며 이 불일치 자체가 하나의 선이나 틈처럼 느껴졌다”고 평했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의 미학(美學)을 넘어섰다는 얘기다.

작가는 선(線) 너머 극한의 무한으로 들어가는 경험을 느끼게 하고자 한다. 불교적 선(禪)의 세계다. 촘촘하고 빽빽한 작품을 보고 있으면 이내 절제된 고요에 이르게 된다.

서정민 작가의 작품은 노동이라는 행위를 통해 시각적 감동을 전달한다. 작가는 노동이 생존 수단 이전에 신성한 삶의 가치이며, 이러한 숭고함과 수행성이 우리의 서당 문화로 대표되는 유가와 도가의 사상과 더불어 종교적 개념과 맞닿은 지점이 있다고 말한다. 그의 예술적 재료가 되는 수많은 한지토막은 인고의 과정을 가시적으로 형상화한 선(線)인 동시에, 비가시적인 선(禪)이 되는 셈이다. 아날로그적 감성의 극치다.

밤하늘에 치는 번개가 공간을 찢으면서 가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군집해서 살고 있는 바다생물들의 촉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생명의 기운이나 약동, 또는 살려고 하는 맹목적인 의지 같은 느낌이 단박에 들기도 한다.

작가가 엄청난 노동을 지루하게 반복할 수 있는 원동력은 육체를 일정한 흐름이나 의식 속에 밀어 넣으면서 가능해진다. 수행적일 수밖에 없다. 수행을 통해서 그 단조로운 세계가 절제된 고요에 이르게 되면 명상적이 된다. 엄청난 양의 한지의 집적이 스펙터클하다.

점차 한지의 느낌은 사라진다. 이렇게 재료의 물성이 그 재료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제프 쿤스(Jeff Koons)나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 작품을 연상시킨다.



편완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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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완식 기자 wansikv@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