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강불화전 


리강 개인전


2022.5.25~2022.5.31  무우수갤러리 3-4F

서문


양자역학에서 관측이란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어떤 물체의 존재는 그 물체의 존재를 인식할 생명체가 필요하며, 위치를 특정하여 그 값이 얼마인가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의미가 없기 때문이 다. 결국 존재라는 것은 관측이라는 행위가 만들어낸 결과이며, 이미지는 관측을 인위적인 실사 로 만들어낸 것이다. 따라서 이미지는 의식을 가진 존재를 필요로 한다. 양자역학에서 대상의 존 재를 확인하기 위해서 관측자를 필요로 한다면, 불교에서는 이미지에 대한 의식적인 관측을 통해 자아성찰을 할 수 있게 한다.

우리는 태어나서 모두 죽는다.

죽음은 보편적인 것이고 당연한 것이다. 그보다는 생명을 지속시키는 것이 어렵고  오히려 기적에 가깝다. 비록 그것이 우주 속의 영겁에 불과할지라도, 우리는 이 기적의 시간에 “참나”를 찾아가는 것만큼 보람찬 일이 없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불화를 그리는 것만큼 마음속의 빈 구멍을 차곡차 곡 채워주는 일이 또 있을까 싶다.

나는 불화를 그리고 있다. 고로 나는 관측의 실재다. 


불교의 최초 중원 유입과 불교 미술의 탄생

《후한서》 〈서역전>에 후한後漢 명제 유장(劉莊, 재위 57~75년)은 영평永平 8년 어느 날 밤 꿈속 에서, 3미터에 이르는 키에 어깨 넓이가 3척이나 되고 정수리에 흰 빛을 띠고 있는 기이한 거인이 처마와 벽을 타고 궁전을 에돌아 날아다니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다음 날 명제는 이 기이한 꿈을 대신들에게 알려주며 해몽을 물었다. 침묵하던 대신들 중에서 오직 ‘부의’라는 박사가 무릎 꿇고 아뢰기를 “신이 알기로는 서방의 천축국天竺國에 신이 계시는데 부처라고 부릅니다. 폐하가 꿈속 에서 뵈었던 분과 동일하오니, 이는 임금님께 길상의 징조인 걸로 보입니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명제는 외무대신 채음蔡愔을 천축국天竺國에 특사로 보내 불법을 구해오도록 하였다. 채음은 어명을 받들어 천문, 지리에 해박한 학자 십 수 명을 거느리고 장안에서 출발하여 총령 (葱岭, 지금의 파미르 고원)에 이르렀다. 이후 그들 일행은 네팔, 파키스탄, 벵골, 스리랑카, 중앙아 시아 등 여러 나라를 경유하여, 당시 북천축국라 불리는 대월씨국大月氏国에 다다랐다. 채음 일 행은 천축국에서 선교 활동을 하고 있는 고승 섭마등攝摩騰1)과 축법란竺法蘭을 만나서, 그들에 게 중국에 가서 불교를 전파해 주기를 요청하였다. 두 고승은 흔쾌히 승낙했고 불상과 42장의 불 경을 백마에 싣고서 채음 일행과 함께 산 넘고 물 건너 중국 낙양에 도착하였다.

후한 영평 11년(서기 68년)에 명제는 이 날을 기리기 위해 낙양洛陽에 백마사白馬寺를 짓고 그들 을 머물게 했다. 이때부터 백마사는 중국에서 가장 먼저 건립된 불교사찰이 되었다. 채음도 최초로 고인도에 가서 불교를 유입한 사람으로 되었으며, 번역서로는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이 있다. 《석서釋書》 〈석로지釋老志〉의 기록에 따르면 명제는 백마사를 세운 다음, 화공들에게 천불만 기千佛萬騎가 탑을 에둘러 오른쪽으로 세 번 돌면서 경례하는 의식을 벽화로 그리도록 명하였다. 이로서 중국 역사상 최초의 불교 미술이 탄생되었다. 중국에 유입된 불교 미술은 비단 인도 회화 의 영향과 경전 도상 해설을 근거로 제작되었지만 불경 번역을 통한 불교의 중국화中國化와 더불 어 중국 전통 회화 예술의 중요한 장르로 정착되었다. 주지하다시피 불교 회화는 불교 사상을 선 양하고 불교 교의를 전파하며 예배용으로써의 기능을 하였다. 그러려면 당시 대중들의 복식과 풍 습 등을 이미지로 표현한, 중국화된 불교 도상을 제작할 필요가 있었다. 당나라에서 뛰어난 화가 오도자吳道子는 인자하게 내려다보는 부처님 눈매와 흩날리는 듯한 선묘로, 지극히 동양적인 불 교 도상을 창안하였다. 이는 당시에 많은 영향을 주었을 뿐 아니라 훗날 ‘오가양吳家樣’으로 불리 며 불교 미술의 정형화된 양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다. 당시 오도자의 벽 화를 보고 “천의비탕만벽풍天衣飛蕩滿壁風動, 즉 천의가 흩날리고 온 벽면에 바람이 이는 듯한 예술적 효과를 주었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1) 섭마등은 중천축中天竺 사람으로 본명이 Kāśyapamātanga이며 공식적인 중국 이름은 가섭마등이다. 예의에 밝고, 대승大乘과 소승小乘 경전에 모두 정통하였으며 사방을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교화시키는 것을 자신의 의무로 삼았다.


불화의 시조

조불흥曹不興은 삼국시대 오나라의 오흥吳興 사람으로 그림에 뛰어날 뿐 아니라 조소雕塑에도 능했다고 한다. 그는 독자적인 화풍을 개척하여 자신만의 불화 스타일을 형성하였는데, 불교 미 술이 성행하였던 당나라 시기 그의 화풍을 따라하는 무리를 ‘조가양曹家樣’이라 불렀다. 장승요張 僧繇의 ‘장가양’과 더불어 오도자(吳道子)의 ‘오가양’, 주방周昉의 ‘주가양’이 한 시기를 풍미했으 며 불화의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현대에 발굴된 당나라 무덤 벽화에서도 이런 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조불흥(曹不興)은 당나라의 ‘화성(畫聖, 회화의 성인)’으로 불리는 오도자와 쌍벽을 이루었다고 평가를 받고 있다. 화론에서 오도자의 그림은 옷자락과 띠가 바람에 흩날리는 듯한 선묘인 ‘오대당풍吳帶當風’으로, 조불흥의 그림은 마치 물속에서 금방 나와 살결에 찰싹 붙은 듯 한 옷 주름 선묘인 ‘조의출수曹衣出水’로 거론된다. 이처럼 이 둘은 서로 대비되는 선의 특징을 표 현하고 있다.

후대의 화가들은 한 작품에 두 가지 선묘기법을 동시에 사용하여 풍성하고 세련된 화면을 구성 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북송시기 백묘법의 창시자인 이공린李公麟이 그린 〈유마힐연교 도維摩佶演教圖〉을 들 수 있다.

이밖에 당시 궁중화가로 활약하던 주방周昉 역시 뛰어난 불교 인물 화가이다. 그의 화풍을 승계 한 ‘주가양周家樣’의 인물 표현은 정교하고 생동감 있을 뿐만 아니라 인물 형상을 통해 인물의 심 리까지도 섬세하게 드러내고 있다. 수월관음도상水月觀音圖像이 바로 주방에 의해 창안되었다. 당나라에 이르러서는 석가모니 본생 이야기와 설법 위주의 위진 시기 불화보다 경변經變, 변상 도變相圖를 주로 그렸다. 불경의 내용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하여 감성적인 인지를 통해 불교 교의와 붓다의 세계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도상은 주로 서방 정토와 극락 세계의 전경을 그리고 있 는데 누각, 정자, 연못, 수석과 빼곡히 들어선 사람들 사이에서 풍악을 울리고 노래와 춤추는 장면 이 가히 웅장하고 기세가 대단하다. 이는 불화가 교화, 예배용에서 세속화, 예술화로 발전하고 있 는 전형을 보여준다.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범문으로 Avalokiteśvara이다. ‘모든 것을 내려다 보는 지배자’라는 의미에서 관세음 혹은 광세음光世音,관자재觀自在, 관재자재觀世 自在로 불리며 아미타부처의 좌협시로 서방삼성西方三聖으로도 일컫는다. 불교의 보살 가운데 대중들에게 제일 보편적으로 알려진 보 살로서 석가모니 입적 후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 중생들을 고통으로부터 지켜주는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보살이다. 당나라 태종 이세 민李世民의 ‘세世’ 자를 피휘避諱하는 의미에서 관음보살로 부른다.



법해사法海寺


법해사(Dharma-samudra Vihāra)베이징 석격산구石景山區 모식구취미산남리模式口翠微山南麓에 위치한다. 명나라 정통 4년(正統 四年,1439년)에 개공하여 목공, 석공, 기와공, 칠공, 화사 등 많은 기술자를 동원하여 5년에 거쳐 완공하였다. 사찰 내 대웅보전, 가람조 사2당, 사천왕전, 호법금강전, 약사전, 선불전, 종고루, 장경루, 운당 등 건축물로 조성되었고 총면적인 2만 평방미터의 규모로 웅대하다. 특히 사찰의 벽화는 명나라, 청나라에 이어 여러 차례의 보수를 거쳤다.

그중 대웅전의 벽화는 베이징 지역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되고 보존이 제일 완벽하며 표현 기법이 뛰어난 불교 미술 벽화 중 하나로 서 예술성을 높게 평가받고 있다. 벽화에는 수월관세음, 문수보살, 보현보살 외에 전설 속의 천제, 제후, 천왕, 신녀, 역사와 동자 등 35 명의 신선들이 높이가 2미터에서 50센티미터까지 다양한 크기로 표현되고 있다. 배경은 상운, 화회, 동물, 바위, 파도, 산수 등으로 받치 고 있고 불함 뒷면에도 가운데는 관음보살, 좌우에는 보현보살과 문수보살, 주변에는 선재동자, 위타천, 공양불, 사자와 코끼리의 조련 사, 앵무새, 흐르는 샘물, 대나무, 모란꽃 등 다양한 표현이 있다. 전체 벽화에 77명의 보살과 신선을 표현하고 있는데 형상마다 다양하 고 생동감이 넘친다.



화이트 타라白度母


화이트 타라(白度母, White Tara)는 티베트어로는 ‘조마갈모’이며, 중국어로는 증수구도불모(增寿救度佛母, 수명을 느리고 중생을 구 제하는 불모)라고도 하는데 관세음보살의 화신이다. 관세음보살은 32화신이 있으며 그중 타라 보살 화신으로 21타라가 있고 화이트 타 라는 그중 한 분이다. 티베트 밀교에서 그린 타라와 화이트 타라 신앙이 제일 보편적이다. 또한 밀교에서는 장수불, 화이트 타라, 존승불 모와 함께 ‘장수삼존長壽三尊’으로 모시기도 한다. 화이트 타라는 여덟 가지 어려움에서 구제해주는 위력이 있으며 일체 중생을 장수하 게 해주는 보살이다. 이밖에 경건하게 모시고 타라 법문을 수행하게 되면 급속하게 지혜를 늘릴 수 있다고 한다.

화이트 타라는 성격이 온화하고 선하며 아주 총명할 뿐 아니라 인간의 비밀을 쉽게 간파한다고 한다. 티베트인들은 어려운 일에 닥치면 늘 타라 보살에게 도움을 청하곤 한다.

화이트 타라는 살결이 설산처럼 하얗고, 상호는 단정하며 자상하다. 이마와 두 손바닥, 발바닥에 눈이 달려 도합 7개의 눈을 갖고 있기 에 7안불모七眼佛母라고 부른다. 이마의 눈은 시방무량불토十方無量佛土를 관조하고 나머지 여섯 개의 눈은 육도 중생을 관찰한다고 전해진다.



그린 타라綠度母


타라 보살은 21타라, 500타라 등 다양한 화신이 있는데 모두 관세음보살의 화신이다. 그중 그린 타라(綠度母, Green Tara)는 전체 타라 화신의 주존으로 20화신의 공덕을 한 몸에 담고 있어 신자들이 최고로 모시는 보살이다.

그린 타라는 불의 재난, 사자의 재난, 코끼리의 재난, 뱀의 재난, 수해의 재난, 도둑의 재난, 감옥의 재난, 비인간적인 재난 등 여덟 가지 재난으로부터 구원해주는 보살로, 다섯 가지 독으로 불리는 탐貪, 진嗔, 치痴, 만慢, 의疑에서 벗어나 원만한 지혜를 얻고, 부녀와 아동 을 보호하는 공덕을 입게 한다.

타라 보살의 핵심 주문을 반복적으로 외우면 중생의 번뇌와 고통이 사라지고 원하던 바를 이룰 수 있고, 현세의 부귀, 장수, 평안, 길상을 얻게 되며 갖가지 병마를 퇴치하고, 고통의 바다에서 해탈하여 사후 극락세계에 올라가서 궁극적으로 안락을 얻게 된다고 한다. 그린 타 라는 악마 퇴치에 용맹함으로 ‘구도속용모救度速勇母’ 즉 신속하게 중생을 구제하는 용감한 보살이라고도 불린다.

도상으로 보면 이팔묘령에 온몸이 녹색을 띠며, 허리가 날씬하고 몸매가 뛰어난 미모의 보살이다. 머리에 오불보관五佛寶冠을 쓰고 몸 과 사지에 각종 영락 보석을 두르고, 천의와 화려한 군의裙衣를 입고 있으며, 온몸에서 형광 빛이 뿜어 나온다. 형상이 화려하고 아름다 우며 자상하면서도 장엄하다.

그린 타라는 연화월륜 좌대에 앉아 있는데, 왼 다리는 가부좌 자세로 굽히고 오른다리는 앞으로 살짝 뻗어 있어서 수시로 고난 속의 중 생을 구원하고자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다.



돈황막고굴敦煌莫高窟


돈황 막고굴은 중국 감숙성 돈황에 있는 대표적인 천불동이다. 전진 건원 2년(前秦建元二年, 366년) 승려 낙존이 처음 돈황 명사산을 지 날 때 갑자기 금빛이 반짝이면서 마치 천만부처가 현시한 듯한 황홀함을 보고 암벽에 석굴을 파서 불상을 조각한 것을 시작으로, 훗날 법량선사를 비롯한 고승들이 연이어 이곳에 석굴을 파고 참선하면서 성지가 되었다. 이후 불사가 성행하게 되면서 천 년에 거쳐 확장 조 성되었다. 원래는 ‘사막의 제일 높은 곳’이라는 의미로 ‘막고굴漠高窟’이라고 하였는데, 후세에 ‘사막 막漠’을 ‘없을 막莫’으로 개칭하였다. 불가의 말씀에 따라 불교 수행으로 석굴을 짓는 것은 커다란 공덕을 쌓는 일이니, ‘ 막고굴은 ‘불가능 없음’을 나타내는 ‘막漠’를 써서 ‘석 굴을 짓는 것보다 더 높은 수행은 없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전진시기에 시작되어 북조北朝, 수나라隨, 당나라唐, 오대십국五代十國, 서하西夏, 원나라元 등 대규모로 확장 건축되어 거대한 규모 를 형성하였다. 통일 수나라를 거쳐 통치기간이 길고 불교를 국교로 삼았던 당나라에 와서 석굴과 벽화가 가장 많이 조성되었으며 전성 기를 이루었다. 이후 송나라, 서하를 거치면서 돈황의 가치가 하락했고 개굴 수도 현저하게 적어졌으며 원나라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쇠 퇴한 도시가 되었다. 이후 오랫동안 잊혀진 존재가 되었다가 1900년 막고굴을 관리하던 도사 왕원록의 우연한 발견에 의해 장경동 유 물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서구 열강의 각축과 내부 분란, 부패 등으로 국력이 피폐해진 청나라 정부와 지방 관리들은 딱히 재정을 지원하지 않았다. 오히려 소문을 듣고 달려온 영국의 탐험가 아우렐 스타인(Aurel Stein, 1862~1943)이 1907년에 찾아와서 아 주 적은 돈으로 약 7000점의 유물을 사서 영국으로 보냈고,1908년에는 프랑스의 폴 펠리오(Paul Pelliot, 1878~1945)가 찾아와서 왕원 록과 흥정 끝에 수많은 희귀 고서, 유물들을 저렴한 가격에 사들여 해외로 유출시켰다. 역설적으로 돈황 막고굴은 이렇게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아시아 역사 연구, 불경 연구 등 돈황학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일본, 러시아, 독일 등 서양 열강들이 불공정 한 수단으로 유물들을 대량으로 갈취해갔다. 현재 유물의 대부분은 영국, 프랑스, 일본, 러시아 등에서 국가 또는 개인이 소장하고 있다. 돈황 막고굴은 석굴 735개, 벽화 4만5천 평방제곱미터, 채색이 된 진흑 조소 2,415존으로 현재는 세계 최대 규모의 불교 예술의 성지가 되었고, 198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지장보살地藏菩薩


지장보살(地蔵菩薩, Kṣitigarbha)은  8대 보살의 한 분이자 민간 불교신앙에서 제일 널리 모시는 보살 중의 한 분이기도 하다. 산스크 리트어인 ‘Kṣitigarbha’는 ‘생명을 낳고 기르는 대지와 같은 잠재력을 가지는 보살’이라는 의미를 한문 ‘지장地藏’으로 표현한 것이다. 지장 신앙은 인도의 바라문교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알려져 있다. 바라문교 시대에는 별의 신 가운데 하나였다. 불교의 지장보 살 숭배는 대승불교 후기에 나타난다. 『지장보살본원경地蔵菩薩本願經』에 따르면, 지장보살은 부처가 되는 것을 연기하고 보살 상태 에 머물면서 중생의 죄와 고통을 제거하는 데 종사하기를 본원本願하였다. 지장보살은 중국의 십왕과 결합하기도 했는데, 돈황에서 출 토된 지장십왕도地蔵十王圖에서 저승의 재판관인 십왕 뒤에 지장보살이 그려진 것을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염라대왕이 곧 지장보살의 화신이라는 사상도 나타났다.



고려불화高麗佛畵


고려불화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160여 폭만 전해지는데 일본에 120여 폭, 미국에 18폭, 한국 국내에 20여 폭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대 부분이 해외에서 최근에 구입한 것이다. 미국 윌슨은 고려불화의 예술 가치를 “동아시아 불화 중에서 탁월한 정밀함과 장식성을 갖춘 그 림이다.”고 평가하였고, 하버드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도 “묘사의 정밀도가 극치에 달하였으며 금색을 능숙하게 사용하였고 표현력이 매우 다양하다.”고 평한바 있다. 중국의 원나라와 비슷한 시기인 고려 말의 백년을 고려불화의 전성기로 본다. 다양한 주제의 불화들이 있는데 특히 지장보살, 수월관음도의 정교한 금선 무늬와 사라 표현은 단연 최고봉이다.



백묘화白描畫


백묘화는 동양화의 표현형식으로, 담백한 먹선으로 인물 혹은 대상을 표현한다. 처음에는 담담한 먹바림으로만 표현하는 화법으로 채 색화의 밑그림인 초본에만 그쳤지만, 송나라 이공린이 채색을 배제한 선묘에 담백한 먹 선염을 한 뛰어난 작품을 선보이면서 하나의 장 르로 자리 잡게 되었다.

선묘는 동양화의 기초이면서 가장 중요한 표현 방식이다. 엄지, 식지, 중지를 이용한 집필법으로 붓은 화면과 수직을 이루고, 중봉용필로 선이 균형적이면서 강, 약, 조, 세의 변화가 풍부하여 가히 독보적이다. 선묘의 표현으로 화가의 공력을 쉽게 간파할 수 있을 정도이다. 현재 전승되어 불화에 많이 표현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위진시기 화가 고개지를 시초로 이공린, 조맹부로 이어지는 가늘고 탄력 있는 철선묘鐵線描와 당나라 오도자와 뒤를 잇는 마화지, 마원 등의 조세 변화가 선명하고 천이 흩날리는 듯한 표현의 난엽묘蘭葉 描가 있다. 그밖에 마치 물에서 금방 나온 듯, 몸에 감겨 붙은 옷 주름 표현을 방불케 하는 조의출수묘曹衣出水描와 잔잔한 물결처럼 무 늬를 표현한 전필수문묘戰筆水紋描, 행운유수묘行雲流水描, 구인묘蚯蚓描 등이 있으며 마른 장작나무처럼 부러지듯 꺾임이 있는 고시 묘枯柴描, 절로묘折蘆描 등이 있다. 백묘 작품으로 오도자의 <송자청>, 이공린의 <면주도免胄圖>를 최초의 명작으로 꼽을 수 있다. 불 교 고사를 표현한 <유마연교도>도 아주 뛰어난 백묘 명작이다.



대리국 장승온 <범상도권>大理國張勝溫<梵像圖卷>


장승온(張勝溫, 12세기)은 대리국 사람으로 생몰은 알려지지 않았고 회화사에도 기록이 없다. 오직 두루마리 작품인 <범상도>가 전해진 다. 화선지에 그린 이 작품은 채색에 금분도 사용하였다. 높이가 30.4cm, 가로가 1,612cm인 이 작품은 불교의 주존을 메인으로 하여 여 러 단락으로 대리국 이정황제와 후궁들이 부처님을 예배하는 장면, 그리고 16대 국왕 대신들, 13대 남소왕, 운남의 유명한 고승 등 방대 한 주제를 담고 있다. 도상의 상호는 우아하고 장엄하다. 선묘는 유려하고 정교하며 각 단락 화제로 쓰인 서예도 중후하다. 전체적인 표 현에서 당나라 화풍이 엿보인다. 두루마리 마무리 부분에는 석묘광釋妙光, 송겸宋濂, 석종륵釋宗泐, 석래복釋來復, 증영曾英 등 사람들 의 발제가 있다. 그중 대리국 고승 묘광스님은 발문에서 “대리국 묘공 장승온 …… 실로 장승요, 오도자의 화풍을 신통하게 닮았고, 무종 원의 아름다운 흔적이 영리하게 담겨 있다.”라고 하여 그 전 시기의 대가들과 같은 수준으로 평가할 정도로 극찬하였다. 문장 말미에 “성 덕 5년 경자세 정월 11일盛德五年庚子岁正月十一日”라고 적혀있는데, 성덕 5년은 대리국 선종 단지흥段智興(이정황제利貞皇帝라고 도 한다)의 재위 시기의 연호이며, 경자년은 남송 효종의 순희淳熙 7년에 해당되어 지금부터 842년 전인 기원 1180년을 가리키므로 이 작품은 그 이전에 완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는 대북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육지장六地藏


육지장六地藏은 지장보살의 여섯 화신을 형상화한 것으로 육도六道 중생을 일깨우는 여섯 분의 지장보살을 지칭하는데 경전에 기록 된 내용들이 서로 다르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대일경 소권 오태장계 지장원 구존 중의 여섯 분 즉 지자, 보처, 보장, 지지, 보인수, 견고 의에서 기원하였다. 육지장 신앙은 일본에서 널리 유행하여 오랫동안 동화이야기도 전해지고 있으며 현재 일본 우지시(宇治市)에는 육 지장역도 있다.

중국에서는 당나라 말기에, 일본에서는 나라 시대에 성전이 세워졌으며, 헤이안 중기부터는 민간에서 지장 숭배가 활발하게 일어났다. 지장상은 자애롭고 온화한 스님의 모습으로 만들며, 오른손에는 석장, 왼손에는 보주를 쥐게 한다. 밀교에서는 보관과 영락瓔珞을 착용 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육도를 구제한다는 의미를 담아 여섯 개의 지장상을 세운 것이 육지장(六地蔵)의 형식이 되었다.

일본에서는 특히 어린이를 보호하는 부처로 상징되어 있다. 어려서 죽고 삼도천에서 고통 받는 아이들을 구제한다고도 여겨진다. 이에 따라 육아 지장, 아이보기 지장, 밤울음 지장 등 육아에 관련된 다양한 지장상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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