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韓호랑이

고선례     김연우     리 강     문선영     이태호     전지우     지민선

2022.2.11~2022.3.6  무우수갤러리 3-4F







호랑이 나라에서 만나는

우리 호랑이






무우수갤러리 학예실장 양효주



     “우리나라는 호담국(虎談國)이다. 범 이야기만을 모아 《천일야화》, 《데카메론》 등 이런 유의 책을 꾸미려는 나라는 세계가 넓다 해도 오직 조선이 있을 뿐이다. 범 이야기 하나만 가

     지고 안데르센, 그림형제 등 누구 노릇이든지 다할 것이다.”

- 육당 최남선


중국에는 용, 인도에는 코끼리, 이집트에는 사자가 있듯이 대한민국에는 호랑이가 있다. 산으로 둘러싸인 우리나라는 20세기 초반 일제의 대대적인 사냥 작전으로 사실상 멸종되기까지, 호랑이가 많이 서식한다 하여 일명 ‘호랑이 나라’로 불렸다.

호랑이가 이 땅에 정착한 시기는 대략 만 년 전으로 본다. 우리나라 건국신화인 단군왕검과 7천년 전에 그려진 울주 반구대 암각화에 등장한 호랑이가 이러한 추정에 신빙성을 더한다. 유구한세월 동안 우리 땅 전역을 무대로 활동한 호랑이는 우리 조상에게 때로는 공포의 대상으로 때로는 숭배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일례로 조선시대 대표 실학자 정약용이 쓴 《목민심서》에는 수령이 제거해야 할 세 가지 악으로 도적과 귀신무리와 함께 호랑이를 꼽으며 그것이 인간에게 끼치는 해악을 강조했다. 그런가 하면 민초들은 호랑이를 산군(山君), 산신(山神), 산중영웅(山中英雄)이라 부르며 사악한 기운을 막고 사람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받들기도 했다.


이러한 까닭으로 지명, 세시풍속, 설화, 속담, 문학, 예술 곳곳에 호랑이가 등장한다. 호랑이 부적, 호랑이가 등장하는 각종 산신도는 말할 것도 없고 “옛날 옛적에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에”로 시작되는 옛날 이야기하며 우는 아이를 달랠 때 할머니가 들먹이는 “문 밖에 호랑이가 왔다”라는 말은 호랑이가 우리 한민족의 삶에 얼마나 깊숙이 스며들어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우리 민족의 호랑이에 대한 사랑은 현대사회에서도 계속된다. 국제사회에 한국을 널리 알린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는 ‘호돌이’가 한국의 마스코트로, 2018년에 개최된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는 ‘수호랑’이 한국을 대표했다.

현대 미술에서도 호랑이는 단골 화제로 등장한다. 고구려 무용총 수렵도와 조선시대 민화에 등장한 호랑이가 현대 미술가들의 손끝에서 귀한 명맥을 이어가는가 하면 독창적이고도 재치 있게 재창조된다.


2022년 임인년(壬寅年)을 맞아 무우수갤러리에서 마련한 기획전 <大韓 호랑이: 호랑이 나라에서 만난 우리 호랑이>에서도 이러한 작품들을 볼 수 있어 반갑다. 조각가 고선례, 동양화 작가 리강, 미술사가로 요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문인 화가 이태호, 민화 작가 김연우, 문선영, 전지우, 지민선의 작품은 전통과 현대적 미감이 조화롭게 조응한다. 까치를 보며 짓는 표정하며 더덩실 춤추는 호랑이의 모습은 꼭 우리 민족의 흥과 익살스러움을 표현한 듯 친근하며, 산맥으로 이어지는 푸른 호랑이와 붉은 하늘 아래서 눈을 번뜩이는 호랑이는 신령스럽고 기백이 넘친다. 모란꽃 피어난 호피와 비단 자수처럼 표현된 호랑이 베갯모는 장식적이며 힙(hip)하다.

과연 호랑이 나라답게 호랑이가 갖는 문화·예술적 의미는 실로 크며 그것의 창조적 표현력 또한 감탄스럽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용맹한 수호 동물이자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벽사의 의미를 지닌 호랑이.

장기화되는 코로나19로 세상살이가 힘겨운 이때 많은 이들이 호랑이의 용기와 기백을 본받아 힘을 얻고 꿈을 펼치길 기대해본다.







고선례



우리 민족은 호랑이를 어떻게 생각하고 또 어떤 존재였을까?

오래전부터 호랑이는 산신으로 믿어온 숭배 대상이었다.<단군신화>의 곰과 호랑이는 좋은 예로서,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신(神)으로 숭배되었다. 또한 『삼국지』에는 지금의 함경도 지방인 예(濿)에서 호랑이를 신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는 대목이 있다. 이들 기록은 청동기시대 이전부터 우리 민족에게는 호랑이를 신성한 존재로 섬긴 토테미즘 역사가 이어져왔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토테미즘 역사에는 악귀를 쫓아주는 신성한 동물이자 수호신이라 여긴 호랑이를 통해 항상 우리의 안녕을 염원하는 뜻이 깃들여 있고, 새 소식을 전해주는 길조인 까치를 통해 좋은 소식을 기다리는 마음이 담겨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백호와 까치의 만남은 정서적으로 나약한 이들에게 잠시나마 마음의 위안을 주고, 내일의 밝은 희망을 가져다주는 희소식을 기원하는 작은 바람을 담았다. 그리고 해학적 백호의 형상은 난세에 어진 임금이 나타나 위기를 극복하고 태평성대를 이룬다는 옛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우리 선조들의 정서에 전해내려오는 토테미즘은 스스로 자아를 찾고 의지하려는 강한 자신의 내면세계인 것이다.


백호의 형상을 통해 정서적으로 나약한 인간의 비정한 삶 속에 대변인으로 나타나 벗이 되어 웃음을 주고, 때론 나약한 자아를 의지할 수 있는 신적 존재이자 수호신으로 우리의 정신세계에 살아 있게 만들었다. 이는 어찌 보면 우리 선조들과 같은 생각이라 하겠다.


치열한 자기와의 싸움을 통해서 온전한 자기만의 믿음이 만들어진다. 그 과정은 말로 표현하긴 쉽지만, 그 결과를 형상화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만큼 자기만의 믿음은 단순한 믿음이 아니라 절대적인 존재와 동일체인 것이다. 그러기에 작품 속 호랑이는 동물원에서 보는 호랑이를 단순 형상화한 것이 아니며 , 우리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하는 희망과 바람의 마스코트인 것이다.


- 고선례  작가노트





김연우



터널을 지나고 있어요.

곧 밝고 다양한 표정의 산들이 나타날 거예요.

잔뜩 허리에 눈을 짐어진 겨울산은 푹신푹신 솜사탕 같을 거예요.

이 어둠은 곧 사라질 거예요.

푸르고 시린 하늘이 기다릴 거예요.

반복되는 이 어둠은 그냥 아무것도 아니에요.

빛은 어둠을 언제나 이겨요.

아주 오래

반복적으로 마주한 이 어둠이 곧 끝날 거예요.

영화처럼 우린 행복할 거예요.

힘든 많은이들을 위하여 원만하고 가내평안하며 늘 건강하길 기도하며 이 부적을 그렸습니다.

물론 우리 호랑님이 또 나쁜것들은 단단히 막아주실 거고요.

모두가 행복한 날들을 꿈꾸며.


- 겸리 김연우  작가노트





리강



호랑이를 산군(山君)이라고 부른다. 산중의 왕이라는 의미로 예로부터 우리의 조상들은 호랑이를 성스러운 동물로 모셨다. 지금도 한국 사찰 산신각(山神閣)에는 산신령이 호랑이와 함께 모셔져 있거나 벽화로 그려져 있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거대한 몸집과 화려한 무늬가 있는 호랑이는 힘과 권력, 위엄과 용맹의 상징으로 고대부터 토템화되어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독거하는 맹수로서 수림과 산속에서 약 백 평방킬로미터 영역을 누비며 포식한다. 그러나 산업화 이후 공장시설 가동으로 다량의 오수배출, 대기오염, 생활 쓰레기로 인해 자연이 파괴되면서 수많은 동물들이 죽거나 멸종위기에 처하게 되었으며, 백수(百獸)의 왕으로 단독 생존력이 강한 호랑이도 점점 삶의 터전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이 작품은 남산을 배경으로 눈길을 밟으며 걸어 내려오는 산군을 표현하였다. 작품 속의 남산은 서울 회현동에 있는 현실적인 남산의 의미도 있지만 인류사에서 첫 “자연인” 선언을 한 도연명 시인(陶淵明)의 시 “동쪽 울 밑에서 국화를 꺾어 들고, 멀리 남산을 바라본다.(採菊東籬下悠然見南山)”의 상징적인 남산이기도 하다.

다른 작품은 화성-태양계에서 인간이 살기가 제일 적합할 것으로 추정되는 행성을 마주하고 서 있는 산군이, 관객을 향해 고개 돌리고 있는 모습을 표현하였다. 어찌 보면 파괴된 고향에 대한 미련과 새로운 개척지를 향해 떠나는 왕의 염원을 판타지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우리들은 과연 최적의 서식지인 지구를 훼손하면서 우주의 꿈을 키워야 할지에 대한 반문(反問)이기도 하다.

두 작품 모두 <세이프 홈>이라는 반어적인 제목으로 환경과 생존에 대한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 리강  작가노트




문선영



2022년 범의 해를 맞이하여 나는 두 가지의 작품을 선보인다.

하나는 민화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인 맹호도이고 (나의 작업은 범이라 이름 지었다) 하나는 창작 민화이면서 나의 시그니처 아이템인 베갯모이다.


민화를 뿌리를 두고 있는 작가로 전통과 현대민화를 함께 보여드리고 싶었다.

옛부터 호랑이는 액운을 막아주고 벽사의 의미가 있다. 호랑이는 작가를 만나 또 다른 의미로 재탄생을 한다.

전통의 호랑이는 나쁜 기운을 막아주지만 나의 창작 작품인 만복은 더 개인적인 의미를 가진다.

예부터 우리의 어머니들은 비단실로 모란꽃을 피우며 부귀영화와 장생을 기원하는 마음을 삼라만상을 빌어서 한땀 한땀 수를 놓았으며, 비단에 곱게 놓은 수를 베갯모로 쓰면서 가족의 건강과 평안을 기도했다.

베개라는 게 단순히 잠을 청하는 도구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자수가 가득 놓인 베개는 녹녹치 않은 현실을 벗어나 몸과 정신을 쉬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 세상 모든 생물들은 수면이라는 것을 통해 다음 삶을 살아갈 힘을 얻게 되는데 나 역시 꿈을 꾸면서 조금은 고된 삶을 살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그래서 베개는 어머니들의 염원과 함께 지금의 나에겐 휴식이자 엄마의 품처럼 따스하게 안아주는 것이다. 나의 아이와 내 작품을 보는 관객들이 꽃길만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담겼다. 거기에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는 숫자 9를 아홉 마리 범의 꼬리를 그려 넣었으니 이것보다 더 완벽한 부적 같은 그림이 어디 있겠는가.


- 문곡 문선영  작가노트




이태호



호랑이띠 해를 맞으며,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유난히 호랑이를 10마리 이상 그렸다. 아마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진정되기를 바라며 그러지 않았나 싶다. 그중에서 <호랑이와 까치>, <점백이 호랑이 위로 까치 날고>, <검은 호랑이 춤추고>를 출품하였다.


<호랑이와 까치>는 임인년 까망 호랑이 흑호(黑虎) 해를 맞으며, 조선 민화 까치 호랑이 부분을 따서 옮겨 보았다. 까망 호랑이 까치가 빨강 코로나 바이러스 퇴치시켜 주길 기대해본다.


<점백이 호랑이 위로 까치 날고>는 점백이 호랑이가 이를 앙 물고, 까치 한 마리가 곡예를 하듯 날아간다.


<검은 호랑이 춤추고>의 원화는 오윤의 무호도(舞虎圖)다. 목판화로 새긴 한 뼘짜리 호랑이다. 1986년 5월 초 인사동 그림 마당 민에서 오윤의 판화전 ‘칼 노래’ 전이 있은 지, 그리고 작가가 세상을 떠난 지 벌써 35년이 흘렀다. 그때 개막 잔치에서 흰 옷차림으로 덩덩실 춤추던 춤꾼 이애주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도 얼마 전에 들었다. 연희동 서실에서 그때 싸인 본 도록을 펼쳐 보며 춤꾼 이애주처럼 덩덩실 춤을 추는 호랑이를 그렸다.


- 이태호  작가노트




전지우



호피장막도

웅장하고 위엄 있는 호피 장막을 살짝 걷어 올려 무언가 호기심과 궁금증을 자아낸다.

넓게 펼쳐진 호피 속에 양반댁 서책과 진귀한 각종 기물들로 출세와 경사스러움을 바라고 그 시대가 소망하는 염원을 담아 더욱 정교하고 세밀하게 붓끝으로 표현해 보았다.


모란호피도

우리는 거침과 부드러움, 위엄 속에서의 달콤함, 무겁지만 고운 상대적인 이중성을 내재하고 또 희망한다.

민화에서 가장 억세고 웅장한 벽사의 소재인 호피와 또한 가장 아름답고 고운 모란으로 설렘과 어울림을 표현하고자 하였으며, 어려운 시간 속 마음만은 풍요롭고 행복함이 가득하기를 바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 전지우  작가노트




지민선



산수호도

다양한 곳에 서식하는 지의류를 공존과 상생의 의미로 봅니다.

주로 단독생활을 하는 호랑이에 지의류를 입혀 호랑이가 서로 어우러지며 태산 같은 견고한 신뢰를 이루는 것을 표현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의 삶 또한 다양한 공존과 상생의 관계가 이루어지기를 소망해 봅니다.


사즉필생

미래를 알 수 없는 삶의 불안함은 호랑이와 마주친듯한 공포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인생은 자포자기 할 수 없는 것이기에 삶은 살아낸다고도 말 할 수 있습니다.

매순간 삶과 마주하며 두려움을 극복하고 넘어선 뒤에는 선물 같은 복됨이 찾아올 것이라는 희망을 담았습니다.


- 지민선  작가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