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dian Summer
김연수 / 채복기
2021.11.19~11.29 무우수갤러리 3-4F
늦가을에 만난 아련한 그리움과 사랑의 온기 무우수갤러리 학예실장 양효주 인디언 썸머(Indian Summer)는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발생하는 이상 기상 현상을 일컫는 것으로, 늦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기 직전 일주일 정도 따뜻한 날이 지속되는 것을 말한다. 종종 서리가 내린 후에도 이런 현상이 생기기도 하여 ‘절망 가운데에 뜻밖에 마주한 희망’, ‘겨울 앞에서 다시 한번 뜨거운 여름이 찾아와 주길 소망하는 사람에게 신이 선물한 짧은 기적’이라 비유하기도 한다. 쓸쓸한 찬 바람이 부는 계절, 지나간 여름의 열기와 아련한 추억, 그리고 사랑의 온기를 다시 한번 느끼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무우수갤러리에서 가을 기획전을 마련했다. 스쳐 지나간, 스쳐 보낼 수 없는 김연수의 풍경화는 흘러가다 문득 정지한 어느 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바람결에 흔들리는 갈대, 호수 표면 위로 어른거리는 빛…… 달리는 버스 차창 밖으로 바라본 풍경이 그냥 스쳐 지나가지 않고 작가의 마음속 깊숙이 들어와 그대로 화폭에 실렸다. 흐릿한 윤곽에 마치 물에 번지는 듯 서로 넘나드는 색감과 무심한 터치는 몽환적이면서 초현실주의적인 공간감을 자아낸다. 대상은 손아귀에 잡히는가 싶으면 어느새 모래알처럼 스르륵 자취를 감춘다. 포토 리얼리즘의 선명한 리얼리티를 배제한 채 흐릿하게 화면을 뭉개버리거나 흘려버리는 화법은 언뜻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회화 양식을 떠올리게 한다. 일그러진 형상과 질감의 효과를 살려 주관적인 표현을 강조한 점은 앵포르멜 양식인가 하면 색면추상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한편 수묵화의 묘미라 할 수 있는 깊고 묵직한 맛이 그의 그림에도 녹아있다. 한국에서 동양화를 공부하고 독일에서 서양화를 공부한 화가가 터득한 ‘유화로 그린 수묵 기법’의 멋이다. 이처럼 동·서양 미학의 요체가 고루 심긴 것이 김연수 그림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자연에 자신의 심상을 투영한 점 또한 서양의 추상표현주의 특징이자 동양의 수묵 미학이기도 하거니와. 바라는 마음, 보내지 못한 마음 채복기의 그림은 조선 초기 꽃 그림으로 유명한 신사임당과 조선 후기 민화의 조형 감각과 미의식을 계승하고 접목한 창작 민화이다. 이웃이나 인척간의 ‘정을 그리워하며’ 이 그리워하는 마음을 초충을 빌어 표현한 신사임당과 가족의 수복강녕을 ‘염원’ 하는 민화의 감성을 그림에 담았다. 부드러우면서도 순도 높은 채색의 그림은 전체적으로 밝고 명랑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화훼, 초충, 인물의 모습은 친근하고 생동감 있다. 그림마다 등장하는 고양이는 쥐띠인 작가가 자신의 천적과 조화롭게 살고 싶은 마음이, 들쥐와 사이좋게 여름 수박을 나눠 먹고 복숭아를 타고 하늘을 날며 노니는 아이의 모습에선 아이가 이웃과 더불어 살며 건강히 잘 자라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이 서려 있다. 한편 작가는 우리 전통미의 일면을 보여주면서도 본인의 심상과 개성을 가미하여 현대적인 감각과 개성을 잃지 않았다. 특히 신사임당의 작품 <맨드라미와 쇠똥벌레>를 모본으로 한 <가족의 초상>은 마치 숨은그림찾기처럼 모본과 다른 점을 찾아보는 절묘한 재미가 있다. 꽃잎이 꼭 닭 벼슬을 닮았다고 하여 한자로 계관(鷄冠)이라 불리는 맨드라미가 크고 붉은 꽃잎을 화려하게 뽐내는데 자세히 보면 고무장갑으로 둔갑 되었다. 땅 위로는 두 마리의 쇠똥구리가 힘을 모아 쇠똥을 굴리고 있다. 아빠 쇠똥구리가 뒷발로 엄마 쇠똥구리가 앞발로 쇠똥을 굴린다. 가사와 양육의 막중한 책임과 부담감을 자기 몸집보다 더 큰 쇠똥을 굴리는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 꽃 주위로는 나비가 아닌 나비 날개를 단 강아지가 날아든다. “오랜 시간 반려동물을 키우다가 떠나보낸 그리운 마음을 담았다”, 라는 작가의 말마따나 보냈으나 차마 보내지 못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이처럼 채복기의 그림은 동물과 꽃 인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재가 서로 조응하고 대조하면서 다채롭고도 균형있는 앙상블을 만든다. 달콤한 수박 내 풍기는 싱그러운 여름 향기와 노오란 국화가 불러오는 호젓한 가을 정취야 두말할 것 없고. |
김연수
스쳐지나간 풍경을 그렸었다. 돌이켜보면, 나만의 필터로 걸러져 머릿속에만 남아있는 스쳐지나가 버린, 무채색의 ‘형상’들만이 남은 건조한 풍경들이었다. 최근2년 지금은 머릿속의 풍경을 형상화하기 보다는 대상이 가지고 있는 색과 모습을 나의 붓질로 보고 느낀 그대로 표현하는데에 더욱 치중하고 있다. 솔직히 말해 내가 직접 본 대상중 아름다워 그리고 싶은 대상을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 고민을 많이 한다.
내가 보는 자연이라는 대상에는 모두 질감(Texture)이 있다. 나무도 종류에 따라 질감이 다르게 보여지고 그 나무들이 모여있는 산은 나무 하나하나의 질감이 모여 덩어리를 이루고 그 덩어리마다 또 다른 질감을 이룬다. 바다의 물결도 시간과 날씨와 계절에 따라 바람의 방향, 세기에 따라 그 질감은 달라진다. 이 질감들은 나의 시각을 거쳐 손에 들린 붓에 따라 다르게 움직이며 네모난 화면안에 만들어진다.
대상에 관해서는 정해진 주제도 없고 특별함도 없다. 하지만 한가지, 우연히 지나가던지 또는 목적지에 있었던지간에 내 마음을 울렁이게 했던(오로지 개인적인 취향) 자연풍경을 인간의 흔적을 제외하고 그린다. 나의 그림에는 집도, 가로등도 전봇대도 도로도 없다. 내가 그리는 인적이 없는 풍경을 실제로 상상해 본다면 실제 우리가 무인도에 홀로 남겨 있을때의 주변환경인 듯하다. 하지만 그 풍경이 네모 안에 들어가 그림이 되어져 있을때는 바라보는 시선과 느낌은 전혀 다르다. 마치 세트장에서 한부분만 찍었을때, 다른 세계나 공간에서 촬영한 것 처럼 보이듯이 말이다. 아마도 그림에서만큼은 그런 풍경들을 향유하고 동경하고 존경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다른이들이 놓친, 내가 본 아름다운 나무 산 바다를 그림으로 그리고 그들은 그저 본인들의 감성으로 다시 재해석하여 감상하기를 바란다.
- 김연수 작가노트
채복기
시대의 요구에 부합하는 새로운 민화 그림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공부했습니다.
물론 기존의 전해 내려오는 한국 전통 아름다운 민화 역시 많지만 현대적 미감을 갖춘 창작 민화에 대한 요구가 앞섰습니다.
제가 전공 공부에 열중하던 시기만 해도 민화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그리 높지 않던 시기였기에 현재 서점을 가득 메우고 있는 민화 실용서적이나 넘쳐나는 민화 취미 미술 강의를 보면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합니다.
동물, 꽃, 정물에 이르기까지 소재도 풍부하고 거침없고 자유로운 표현 방식, 그리고 전통을 이으면서도 모던함을 두루 갖춘 민화가 이제야 각광 받는 것이 의아할 정도로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이번 전시회에 순지라는 한지에 안채와 석채 전통 안료를 사용해 표현하고 그림의 내용 역시 옛그림에서 가져왔습니다. 민화의 장르 중 꽃과 새가 주가 되는 ‘화조도’와 곤충과 풀이 소재인 ‘초충도’를 집중하며 그렸는데 특히 신사임당의 <수박과 쥐>, <양귀비와 도마뱀>, <맨드라미와 쇠똥구리> 그림 형식을 빌려 새롭게 그렸습니다. 그 외 <소과도>로 유명한 석류 정물 민화나 복숭아, 바다, 학이 소재가 된 ‘해학반도도’의 형식도 빌려왔습니다. 그리고 중국 송나라의 임춘(林春)의 <포도초충도> 등 한국 뿐 아니라 아시아의 전통화로도 장르를 넓혔습니다. 제 인생의 가장 중요한 인물인 가족을신사임당의 그림 <맨드라미와 쇠똥구리>에 가장의 무게와 육아의 노고, 그리고 예쁘게 커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가족의 초상>을 그렸습니다.
그 외 그림에 등장하는 캐릭터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드리자면 제가 쥐띠라서 천적인 고양이와 조화롭게 살길 바라는 마음에 집쥐도 나오고, 어렸을 적 어른들이 모든 고양이를 나비라고 부르던 그 의문이 턱시도 고양이 나비도 탄생시켰습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 반려동물을 키우다가 떠나보낸 그리운 마음도 곳곳에 담았습니다.
어디선가 본 듯한 단발머리 볼이 통통한 소녀는 영원한 젊음을 바라는 마음에서 그렸습니다.
이번 무우수 갤러리의 사랑을 주제로 한 기획전 인디언 썸머에 어디서 본 듯한 옛그림에 이야기가 있는 제 그림이 좀 더 재미있게 그림을 감상하고 감상하시는 분들께 사랑으로 충만한 따뜻한 가을이 되시길 바랍니다.
- 채복기 작가노트
김연수 / 겨울호수, 150×110cm, 캔버스에 유화, 2014
김연수 / 스쳐지나간, 90×110cm, 캔버스에 유화, 2014
김연수 / 얼음호수, 170×140cm, 캔버스에 유화, 2014
김연수 / 스쳐지나간, 72×52cm, 캔버스에 유화, 2015
김연수 / 스쳐지나간, 72×52cm, 캔버스에 유화, 2015
김연수 / 스쳐지나간, 72×52cm, 캔버스에 유화, 2015
김연수 / 스쳐지나간, 72×52cm, 캔버스에 유화, 2015
김연수 / 잘,보이지않는, 90×72cm, 캔버스에 유화, 2018
김연수 / 잘,보이지않는, 90×72cm, 캔버스에 유화, 2018
김연수 / 잘,보이지않는, 90×72cm, 캔버스에 유화, 2018
김연수 / 잘,보이지않는, 90×72cm, 캔버스에 유화, 2018
김연수 / 낯선산책길, 72×90cm, 캔버스에 유화, 2021
김연수 / 친구에게가는길, 72×90cm, 캔버스에 유화, 2021
김연수 / 바람없는풍경, 106×140cm, 캔버스에 유화, 2020
채복기 / 화조화 (나팔꽃과 제비), 80×56cm, 순지에 채색, 2021
채복기 / 포도 초충도, 80×56cm, 순지에 채색, 2021
채복기 / 연화도, 90.9×72.7cm, 순지에 채색, 2021
채복기 / 수박 초충도, 80×56cm, 순지에 채색, 2021
채복기 / 해학반도도, 80×56cm, 순지에 채색, 2021
채복기 / 초충도 (양귀비와 도마뱀), 80×56cm, 순지에 채색, 2021
채복기 / 가족의 초상, 80×56cm, 순지에 채색, 2021
채복기 / 소과도, 80×56cm, 순지에 채색, 2021
채복기 / 화조도, 80×56cm, 순지에 채색, 2021
채복기 / 옛 그림의 향기 속으로, 90.9×72.7cm, 순지에 채색, 석채와 금박,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