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석 위의 生
- 고구려에서 아프리카까지 -


문활람 초대전

2021.11.05~11.16  무우수갤러리 3-4F









지상과 천상의 눈맞춤

- 생의 의문에서 그 해답까지 


무우수갤러리 학예실장 양효주



Ⅰ. 고통의 문제 

현재의 자신을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 받아들일 수 없어 괴로운 사람, 자기 보존을 못 할까 봐 전전긍긍하는 사람, 불안의 가능성을 뒤쫓으며 공상하고 방황하는 사람, 이들은 표면적으론 다른 양상을 보이나 자기 상실감으로 끊임없이 고통받는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같다. 

자기 자신에게서 멀리 떨어져 나간 자아는 자기 과잉과 자기 결핍 사이를 오가며 깊은 절망에 빠진다. 키에르케고르(덴마크의 실존주의 철학자)가 주지한 대로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려들고 만다.

사실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다.”(요한복음 11:4) 그러나 이 병에 걸린 “나사로는 죽었다.”(요한복음 11:14) 절망으로부터 헤어 나오지 못한 인간은 정신적인 의미에서 자기 자신을 거세해버리는 것이다. 유독 자기 반성적이고 진리를 추구하는 정신성의 인간일수록 이 병으로 고통받는다. 

이 영혼의 죽음 앞에서, 생의 필연적 의문이 고개를 든다. 

왜 인간은 반드시 죽어야만 하는가? 우리는 어디에서부터 추방되어 이리도 외롭게 유리하는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본향을 그리워하고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본래의 나를 갈망하는 이 심정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Ⅱ. 본향의 희구와 근원 탐구

문활람의 작품은 이 본향에 대한 그리움과 근원에 관한 탐구로부터 비롯됐다고 본다.

오랫동안 고구려벽화의 독특한 감수성에 대해 묵상해온 작가는 “오래전 선조들이 남긴 벽화는 자신과의 전쟁이자 역사를 위한 투혼이며, 근원을 만날 수 있는 죽음 이후의 삶을 그려낸 작품이자 간절한 기도였을 것”이라고 말한다. 

작업하는 동안 그는 시대를 거슬러 안드레아스 에카르트1) 신부를 만났다. 에카르트는 20세기 초 일본인 관학파 학자들과 함께 고구려 고분을 실견하고 연구하였다. 특히 강서대묘의 현무를 중점적으로 논하였는데, 동양에서는 용과 거북이가 길조의 상징이며 뱀은 항상 불길한 악령으로 여겨진 것을 설명하면서 현무도를 ‘선과 악’, ‘영혼과 몸의 싸움’으로 해석하였다. 

일각에서는 현무도를 거북과 뱀이 교미하는 장면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문활람에게 에카르트의 해석이 반가운 건 작가의 기독교 신앙관과 상통한 까닭이다. 작가는 말한다. “거북의 고통이 내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 보아하니 내 안에 남은 선과 악의 싸움과 똑같은 모습이다” 일순간 죽음의 공포는 놀라운 전율로 바뀐다. 죽음은 모든 고통의 시간을 닫아버리는 동시에 영원한 생명의 문을 활짝 열어주는 것이다. 작가의 말대로 “죽음이라는 것은 곧 영생을 향한 깨끗한 시작”이다. 마치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독일의 대표적인 낭만주의 화가)가 보편적인 죽음의 의미를 예수의 죽음과 같은 의미로 확장한 것처럼, 죽음은 인간이 새 생명을 얻고 근원에 이르기 위해선 반드시 지나야 할 관문이 된다. 곧 죽음은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질서임을 넘어서 육체와 영혼, 지상과 지상 밖, 인간과 신을 이어주는 매개가 된다. 

그러니 무덤 속 네 면의 돌벽에 대한 작가의 이끌림은 생의 근원을 향한 타는 목마름인 것이다. 죽은 자를 수호하고 안내하는 사신辭神은 기독교의 성령처럼 근원의 정점으로 안내하는 영적 존재이고 말이다. 



Ⅲ. 마침내 회복 

작가의 고구려벽화를 통해 살펴본 근원에 관한 탐구는 아프리카로 이어진다. 

신을 만나고자 하는 사람들에겐 종교의 근원지요 모험가들에겐 생명이 태동한 곳이자 상처받은 영혼들에겐 영혼의 안식처인 아프리카 땅에서 그는 근원의 한 자락을 찾았다. 그곳의 강렬하고 원시적인 색감과 역동하는 생명력... 짐작건대 그것은 날 것 그대로의 순수함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프리카인들! 혹 천지를 창조한 신이 진토로 빚어 만든 태초의 인간이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문득 고갱과 피카소의 그림이 떠오른다. 검고 윤기 나는 피부에 탄탄한 팔뚝과 허벅지를 자랑하는 아프리카 여인의 싱싱하고 섹슈얼한 모습. 한편으론 이집트의 여사제와 같이 당당하고 우아한 위엄이 서려 있기도 한...  그러나 여기에 포착된 두 화가의 시선은 원시의 순수성을 동경하면서도 문명인으로서 자기 우월성을 잃지 않았다.

반면 문활람의 그림은 사뭇 다르다. 그의 아프리카 그림은 사견의 주입이 없으며 어떠한 미화의 흔적도 없다. 다만 ‘있는 그대로의 절대적 존재’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뿐이다.

그리고 눈빛, 신과 눈맞춤 해 본 자만이 가졌음직한 눈빛.

이들의 가공되지 않은 말간 아름다움 앞에서 나는 몹시 당황스러워진다. 나는 함부로 그들을 동정할 수 없을뿐더러 도리어 부끄러워지는 것이다. 한껏 치장한 여인이 나부 앞에서 느끼는 곤혹스러운 남루함 같달까? 

그림 앞에서 “고루한 절망의 상태는 원시성의 결핍”이라고 주지한 키에르케고르의 말을 상기해본다. 그리고 나의 절망과 나의 근원에 대해 묵상해 본다. 과연 나는 이 음침한 사망의 골짜기에서 벗어나 무사히 회복에 이를 수 있을까? 

그리하여 마침내 내 진정한 얼굴을 찾을 수 있을까. 



Ⅳ. 반석 위의 생

전시를 준비할 때마다 쓰는 평문이라 예사로울 것도 없지만, 이도 사람의 일인지라 더러는 하기 싫고 귀찮은 대상도 있다. 작품은 좋아하지만 별로 언급할 것이 없어 곤혹스러울 때도 심심치 않게 있다. 

그런 나에게 문활람의 작품을 논하는 일은 다른 의미에서 곤혹스러웠다. 작품의 의미와 조형 목표를 내 글로 잘 전달할 수 있을는지, 도리어 평문이 사족처럼 느껴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그 모든 우려와 어려움을 차치하고서도 나는 그의 작품세계를 논하고 싶었다.

고구려 고분벽화와 아프리카에서 그동안 잊고 있었던 원시의 힘을 경험한 후 오랫동안 붙들려 있었던 자기 권태와 삶의 공허로부터 해방된 작가의 행보를 뒤쫓고 그의 예술세계와 신앙 여정에 동참하고 싶었다.

전시 제목인 <반석 위의 생>은 오랜 고심 끝에 얻은 것이다. 문활람의 작품을 통해 우리의 고통의 문제를 직면하고, 잃어버린 본질을 찾고, 마침내 본래의 자기 자신으로 단단하게 서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었다. 여기엔 문 작가의 앞으로의 행보가 보다 탄탄대로 이길 바라는 나의 사적인 소망도 서렸다.

사정이 이러하니 내가 문 작가를 편애한다는 혐의를 받아도 무리가 아닐 게다. 큐레이터의 관점이 아닌 한 사람의 관객으로서 쓴 벅찬 감상으로 봐달라고 하면 너무 구차한 변명일까?

그러나 설혹 눈총을 받는다고 해도 그의 그림에 쏟는 나의 애정과 감동을 굳이 숨기고 싶지 않다. 그림이 담고 있는 고통의 문제며, 존재의 불안이며, 회복의 전율이며, 모두 나의 내밀한 고백이자 기도이기도 하거니와.




1) 안드레아스 에카르트(Andreas Eckardt)는 독일인 천주교 신부이나  고고학과 미술사학 분야를 연구할 수 있는 자격(그는 신학 이외에 미술사, 고고학, 철학, 종교학과 문화과학을 공부하였다)을 인정받아 20세기 초, 일본인 관학파 학자들과 함께 고구려 고분을 연구하였다. 그가 1926년에 강서대묘를 집중적으로 조명한 논문 「위대한 양원왕의 묘: 한국미술사에 대한 공헌 Das goße Königsgrab Yangwon’s: Ein Beitrag zur Koreanischen Kunstgeschichte」이 독일 동아시아학술지인 『동아시아학술지 Ostasiaticshe Zeitschrift』에 실리고 독일과 영국에서 동시에 출판되었다. 한국어판으로는 2003년 권영필이 번역하여 『에카르트의 조선미술사』로 출판되었다. 

에카르트는 논문과 저서를 통해 고구려인들이 고분 건축의 재료로 화강암을 사용한 것과 연계하여 한국은 화강암이 풍부한 나라인 것을 알렸다. 더불어 고분벽화의 색감과 변화에 사용된 안료도 분석했다. 벽화는 한국의 황토 색상과 식물에서 추출된 색상 등이 이용되었고. 특히 강서대묘 벽화에서 특이한 파란 회색. 이 색은 수 세기 동안에 걸쳐 색깔이 짙어진 인디고 색깔인 청색으로 추정하였다.

1950년에는 『조선, 지극히 아름다운 나라 Wie ich Korea erlebte』란 책을, 1958년에는 낙랑과 고구려 고분 발굴에 참여하였던 정황과 당시 발굴의 현장 상황에 대한 상세한 기록을 담은 『제2의 조국 한국이여 빛나라!』 라는 기고문을 쓰며 한국미술을 중국미술의 영향을 넘어 중앙아시아와 유럽미술까지 확장시켜 연결하려는 노력을 하였다. 

홍미숙, 「안드레아스 에카르트의 고구려 고분 연구와 성과: 강서대묘와 쌍영총을 중심으로」, 2019, 60~66쪽 참고.





고구려 벽화



서언

묵묵히 고구려 강서대묘의 벽화를 바라보고 있다. 이번 전시는 연구주제의 예술적 본질을 마주하며 그 안에 담긴 깊이와 만났던 시간들의 이야기이다. 벽화는 연구의 대상이기 전부터 조형적 언어를 가진 작품이었다. 벽화가 품은 인간과 예술의 유전자를 확인하기 위해 복원을 시도한 것인데, 이에 미술사적 연구가 필요했다. 끝나지 않은 이 과정들 속에서 내게 전달된 만큼의 감동을 그려본다.



이끌림

오랫동안 고구려벽화의 독특한 감수성에 대해 묵상해왔다. 왜 이 벽화에 끌렸을까, 의문은 늘 따라붙었다. 고달픈 인생을 반복하는 동안 그것이 정체성에 대한 물음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탐구심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깨닫고 보니 근원의 자리를 잊음으로 나의 정체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살아왔더랬다. 이제 근원을 향한 추적 사이로 기도하며 감동을 그리는 시간에 터를 내어준다.

지리한 방황을 어떻게든 정리하고픈 마음으로 아프리카로 떠난 적이 있다. 뜨거운 태양 아래 여실히 드러나는 원시색을 그렸을 때, 의문의 실마리 하나를 찾았다는 큰 기쁨이 있었다. 정체성... 어떠한 형태로도 그려낼 수 없는 이 실체를,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빠져들고 머리로 인식하고 손으로 공감하며 표현할 수 있는 길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오랜 시간을 품은 암석과 그것이 품고 있는 원시적 색상에서 근원의 한 자락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강렬하지만 화려하지 않은 원석의 색과 거칠지만 온순한 화강암의 물리. 색 뿐만 아니라 죽은자를 수호하는 네 면의 돌벽이 근원을 드러내는 아우라를 내품는다. 어쩌면 아프리카와 고구려는 서로에게 가장 가까운 존재들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끌림에 대한 결론은 아직 없다. 유한한 인생 안에서 우리가 옳고 그름의 얼마를 논할 수 있을까. 학문은 빼어난 분석력과 용모를 지니지만 한계와 속박을 수반한다. 내게 갇힌 명석함은 없으나, 자유로운 은혜가 있다. 화면 안의 무한함 속에서 깊은 진리에 이끌려 맘껏 탐구하고 또 공유해 보고 싶다. 



신앙적 상충

연구가 작품 속으로 들어오는 동안 신앙적인 면에서 상충되는 부분 또한 항상 있었다. 근원에 대한 탐구라지만 또 다른 신앙을 그린 형체들이 나의 고백에 있어 합당한 수단이 될 수 있을까. 그저 나의 지적 욕구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이런 율법적인 틀에 갖혀갈 때 즘, 시대를 거슬러 안드레아스 에카르트 신부님을 만났다. 고구려벽화의 색과 형체들을 향한 그의 감동과 나의 신앙적 고백이 상통하며 그간의 고민들이 시원하게 해결되었다. 그는 벽화에 그려진 현무도를 선과 악의 싸움으로 보았던 것이다. 보아하니 내 안에 남은 선과 악의 싸움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거북의 고통이 내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무덤 속의 죽음이라는 것은 곧 영생을 향한 깨끗한 시작이다. 그것을 수호하고 안내하는 사자는 근원의 정점으로 안내하는 무형의 영적 존재가 될 수 있다.

오래 전 선조들이 남긴 벽화는 자신과의 전쟁이자 역사를 위한 투혼이며, 근원을 만날 수 있는 죽음 이후의 삶을 그려낸 작품이자 간절한 기도였을 것이다. 



회복의 길

선악과 이후 선과 악은 나누어졌다. 둘로 뗄 수 없는 구조를 떼어내야 하는 몸부림은 ‘깨닫는 자’들이 어김없이 마주해야 할 고통이다. 선악과 이전과 이후 모두가 나의 정체성이다.  그래서 나의 작은 위선에도 괴로움을 느끼고 미세한 바람에도 파르르 떨며 아파하던 시인의 고백을 깊이 공감한다. 

그간의 연구 당위성에 대한 고민을 이 전시를 통해 풀어갈 수 있어서 정말 기쁘다. 앞으로 그 내제된 기억을 하나씩 복원해 가고자 한다. 복원이란 연구의 과정은 단순한 모사가 아닌 정체성의 이식이다. 과거에 입력된 정보를 그대로 밝혀내고 또한 이해하는 작업이다. 작품으로서의 복원과정이 내게는 기도일 수밖에 없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사이 흘러갔던 모든 것을 기억하는 것. 그 안에서 나의 존재를 찾고 나의 생김새를 찾고 나의 위치를 찾아 일그러진 모습을 다시 회복시키는 것. 무시할 수 없는 재료의 물성과 대상의 형체를 탐구해 가다보면 언젠가 나의 근원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1500년 전 선조들의 염원과 기도를, 전쟁과 희생과 사랑을, 슬픈 눈망울의 유한한 삶과 무한한 정체성을,

묵상해 본다. 


- 문활람 작가노트






아프리카



기근 때문에 너무도 가슴이 아리던 지난 몇 년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 기근은 여전하지만 기쁨이 없어 힘들 때조차 사랑의 의지를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지독해진 이 토질에 대한 각성을 요구하는 신의 감사한 선물이 아닐까. 

영적 기근은 매번 채워지지 않는 개인적 영성의 항아리에서 출발하여 이젠 모든 사람들의 기근으로 확장되어 있다. 정의 안에서 가슴이 따가와 질 때란 주로 그런 것들을 보고 접해야만 할 때였다. 분노라는 기근, 무자격이라는 기근, 우울이라는 기근, 뇌의 기근, 너무도 가난한 기근, 그리고 고개만 들면 보아야 하는 인간의 지긋지긋한 범죄와 이기라는 기근, 기근들...


이 세상은 호화롭지 않으면 박해 수해를 피할 수 없거나 상대적 거절감을 미리 두려워해야만 한다. 그러기를 반복하며 점점 우리의 자아는 위축으로 견고해져 간다. 더 이상 노할 줄도 모르는 영적 뇌사가 오고 마는 것이다. 죄성들은 바로 이러한 상태 속에서 가장 성장하길 빨리 한다. 그곳을 사는 우리들은 내 생각과 부딪히는 존재를 수근거림의 입김 속에서 곱하고 그것들은 상호작용되는 가운데 산성화된 노폐물이 되고 만다. 당신이 나를 입에 담을 때, 내가 너를 입으로 뱉을 때, 그리고 뒤죽박죽된 그 뜨거운 열기가 한 마리 괴물이 되어 우리를 삼키려 할 때가 있다. 아무런 가치도 아무런 생명도 없는 어둠의 일들. 그러나 사랑의 바늘은 그런 순간에 남다른 에너지를 발휘한다. 미동조차 없을 만큼 딱딱해진 상처들을 어느새 녹이고 있을테니까. 사랑의 스토리는, 가능해 보이지 않는 이 현실의 짠 내 나는 역사의 시간에서 이미 승리의 기사를 쓰고 있다. 

나는 작업을 통해 인간의 메마른 속성을 비판하며 그보다 더 깊은 내면에 있을 우물같이 순수하고 따듯한 사랑을 끄집어내고 싶다. 다만, 간혹 사랑을 표현하려는데 왜 하필 소재가 아프리카인이냐라는 질문을 받곤 한다.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뾰족한 이유는 모른다. 단지 근원을 찾아 떠났던 여행에서 그들의 환경과 눈망울에 끌렸던 기억이 나를 붙잡고 있을 뿐이다. 

나는 강렬한 색을 좋아한다. 언제나 기쁘지만은 않은 세상에서 피할 수 없는 좌절을 만날 때에도 늘 사랑으로 건강하고 싶기 때문이다. 강렬함은 열정의 색이다. 그 때문에 나는 매 년 아프리카를 찾는다. 그 곳의 모든 풍경이 원시적이고 인상적인 것도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한국의 건강함과 그 색감이 닮아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 색감들은 삶의 모든 오해와 갈등을 위로하고 풀어주는 사랑의 힘과도 같기 때문이다. 내가 아프리카를 그려가는 일은 어쩌면 그 눈망울에서 때 묻기 이전의 문명과 우리의 모습을 보았다는 이유일 것이다. 세상 어느 곳에서나 아이들의 눈망울은 순수하겠지만 경쟁사회 안에서 이미 이기적 계산에 익숙해진 너와 나, 그 ‘자란 아이들’의 눈망울을 누군가가 순수하다고 말해 주었던 때가 있기는 있었던가. 


나를 보는 그 아이. 나를 두고 낯설음을 보던 화면 속의 그 아이. 나는 한 아이의 시선을 통하여 인간의 내면적 타락으로 이 세상의 대부분이 순수하지 못한 것에 대한 비판, 아픔 등을 호소하고 있다. 그 아이에겐 진화된 욕심이 없다. 다만 애초에 인간에게 주어진 낙원에서 일상 되었었던 끼니, 아프리카의 아이에겐 고작 그것만이 최상의 관심이며 내면이 된다. 

나는 나와 모두에게 말하고 싶다. 순수한 눈을 가지라. 순수한 마음을 가지라. 


예술은 이 사회를 위해 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대의 동굴벽화가 사냥을 위해 일했고 혹은 서열이라는 자연섭리의 원칙을 위해서도 일했다면 마른 정서를 가진 오늘의 예술은 거짓된 세상을 향해 정의로 촉촉한 사랑의 드라마를 강조해야 할 것이다. 최근 힐링(healling 정신적 치유, 평강)이란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그만큼 지금의 우리에게 그것들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작품은 작가와 감상자 간, 혹은 인간 대 인간 사이의 대화와 소통, 해석을 필요로 한다. 작품 그 자체로서도 훌륭해야 하겠지만 그것을 듣고 풀고 혹은 참여하는 그 과정 속에서 작품의 의미는 더욱 높아진다고 할 수 있다. 


아프리카의 여행은 뒤늦게 재회한 나의 아버지께 받은 사랑과 깨우침에 보답하기 위해 실천하는 사랑으로 섬기기 위해 떠난 하나의 사역이었다. 또한 삶의 중심을 잃고 고단해진 나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떠났던 여정이었다. 정신적, 물질적으로 소외된 그들을 향해 도움을 준다고는 했지만 그것은 사실 내가 더 배우는 일이기도 했다. 이처럼 모든 선한 동기, 과정 자체가 공존을 위한 것임을 상기하며 우리는 살아가야 할 것이다. 


따라서 왜 굳이 아프리카이냐고 계수하는 것보다 그저 보고 느꼈을 때 내 마음이 따듯해지면 그걸로 만족하자. 아직도 나는 광고적인 측면에서 부족한 점이 많지만 계속해서 나의 깨달음을 표현하고 주장해 나갈 것이다. 그 연장으로 계획하고 발표하는 매번의 전시는 <렝기마의 우물>이라는 타이틀로 특별히 아프리카 캐냐의 북부에 위치한 Laisamis 지역의 한 촌락인 Lengima라는 마을에 집중적인 관심과 사랑을 나누기로 한다.  2013년 쓰다.


- 문활람 작가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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