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우수갤러리 소민 김영희 X 투명  


구현서가



기간 : 2026.07.01-07.13

장소 : 무우수갤러리 / 인사동길 19-2 와담빌딩 3F

시간 : 매일 10:00 - 18:00 | 금요일 11:00 - 18:00 무료관람

*전시 마지막날은 오후 12:00까지 관람 가능

 




책거리가 살아 있다!


책거리는 글로벌한 관심을 끄는 조선시대의 독특한 정물화다. 책을 중심 소재로 삼은 정물화라는 점에서, 책을 유난히 중시한 조선의 특색을 보여준다. 책거리에 보이는 책과 사물이 이루는 구조적 짜임은 현대적인 구성미를 드러낸다. 조선시대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고리타분하지 않고 현대인의 감성을 자극한다. 뿐만 아니라 화면 안에 배치된 책과 문방구, 도자기, 화병, 과일, 기물 등의 사물 역시 동아시아적 취향과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2008년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미와 학문‘이란 전시를 시작으로 책거리가 전세계에 알려졌다. 필자 역시 2016–2017년 미국 순회전, 2022년 오스트리아 벨트뮤지엄 Weltmuseum Wien의 책거리 전시, 2025년 카자흐스탄국립박물관 책거리 전시 등 해외 전시를 기획한 바 있다. 소민 김영희 작가는 벨트뮤지엄 책거리 전시에 참여한 작가다. 이 전시를 계기로 오스트리아의 전통 있는 홈데코 업체인 LEITNER LEINEN의 객원 디자이너로 초대받아 ‘minhwa’라는 작품을 선보였다. 또한 워너브라더스의 포스터, 대한민국 헌법재판소의 이미지 작품 등에 선정되었으며, 그의 대표작 〈꽃책〉, 〈새책〉은 중고등학교 미술교과서에 수록된 바 있다.


소민의 남편인 투명은 디자이너 토이와 오브제를 중심으로 익숙한 이미지와 기억을 새롭게 조합해 온 작가다. SK텔레콤 ‘June’ 광고 마스코트, 국내 최초 공식 건담 웹사이트 디자인 등 대중문화의 현장에서 활동해 왔으며, BeBeams·Banaduck·Dunkeys 같은 시리즈를 통해 친숙함과 낯섦이 공존하는 캐릭터 세계를 구축했다. 한국적인 그림으로 평가받는 책거리의 연원은 의외로 글로벌하다. 책거리의 구조는 대항해시대 유럽의 ‘cabinet of curiosities’, 즉 장식장 문화와 관련이 있다. 당시 유럽에서는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 등지에서 가져온 진기하고 이국적인 사물을 진열하는 장식장이 유행했다. 이 문화는 중국으로 전해져 다보격多寶格으로 변신했고, 조선에서는 책거리로 발전했다. 장식장에 배열된 사물 역시 각 나라의 취향에 따라 달라졌다. 유럽에서는 세계 각지의 진기한 물건이, 중국에서는 도자기와 차도구를 비롯한 보배로운 기물이, 조선에서는 책과 문방 사물이 중심이 되었다. 그래서 조선의 책거리에는 무엇보다 책이 중심에 놓였고, 그 이름도 ‘책가도冊架圖’ 혹은 ‘책거리冊巨里’로 불리게 되었다. 


민화작가 김영희와 오브제작가 투명은 이러한 책거리의 문화사적 맥락에 주목했다. 두 작가는 책거리에 나타나는 구조적 특성과 책과 사물이 지닌 물질적 매력을 오늘의 공간 속에 입체적으로 구현했다. 전시 제목이 ‘구현서가’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책거리가 그려낸 상상의 서가를 현실의 공간 안에 다시 세우려는 시도인 것이다. 김영희는 책거리의 매력적인 디테일을 추출하고, 그것을 빈티지한 서양 액자와 가구 안에 담아 입체적인 느낌과 옛스러운 분위기를 살렸다. 투명은 책거리에 등장하는 사물들을 미니어처 같은 오브제로 제작하여 평면 회화에 실제감을 더했다. 책거리 안에 진열되어 있던 책과 사물이 화면 밖에서 펼쳐지면서, 평면적인 민화에 입체적 생명력을 더한다. 2차원의 평면과 3차원의 오브제를 연결하면서, 환영은 실재로 확장되고, 실재는 다시 환영 속으로 스며든다. 여기에 참새라는 화자를 설정한 점도 흥미롭다. 참새는 책거리 사이를 오가며 사물과 사물, 그림과 그림을 연결하고, 정지된 화면에 이야기를 불어넣는다. 책거리에 생기를 부여하는 새로운 장치인셈이다. 덕분에 작품들은 하나의 독립된 화면에 머무르지 않고, 참새의 이동과 사물의 배치를 통해 서로 관계를 맺는다.


책가도 속 사물에 대한 작가의 해석도 흥미롭다. 조선시대 궁중 책가도에는 청나라에서 수입한 책과 사물이 가득 등장한다. 조선의 그림인데, 왜 중국 물건으로 채워졌는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이는 당시 청나라의 문물을 배우려는 북학사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런데 투명은 이 문제에 대해 중국식 책가도 병풍을 통해 학문적 이상과 물질적 욕망을 은근히 과시하려는 욕구가 있다고 보았다. “나에게는 이런 물건도 있다”는 메시지가 화면 안에 숨어 있다는 것이다.


조선인은 어려서부터 사물에 지나치게 마음을 빼앗기면 뜻을 잃는다는 ‘완물상지玩物喪志’의 경계를 배워왔다. 그러나 양난 이후 유교 이데올로기가 약화되고 물질적 욕망이 커지면서 사물에 대한 관심도 강해졌다. 책가도는 바로 그 지적 욕망과 물질적 욕망이 교차하는 화면이었다. ‘구현서가’는 그 욕망의 사물들을 오늘의 감각으로 다시 불러낸 작품들이다. 두 작가의 협업은 생뚱맞은 만남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조금만 들여다보면 오히려 자연스러운 연결고리를 발견하게 된다. 소민 김영희가 민화 속 책거리의 이미지를 오늘의 회화로 끌어왔다면, 투명은 그 안의 사물을 오브제와 캐릭터의 세계로 확장했다. 두 작가의 만남은 단순한 그림과 물건의 연결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조선시대의 매력적인 소재와 현대인의 인기가 높은 장르의 과감한 조합이기도 하다.


투명의 오브제 작업은 캐릭터 분야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지금까지 피규어 시장은 주로 미국과 일본의 애니메이션 및 게임 캐릭터들이 주도해 왔다. 그러던 중 케이 팝 데몬 헌터스가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키면서 민화 까치호랑이를 바탕으로 한 더피와 서시가 인기를 끌었다. 최근에는 외국 관광객에게 까치호랑이 관련 굿즈가 각광을 받았다. 이러한 사건은 우리에게 여러 시사점을 던져준다. 무엇보다 한국적 캐릭터로도 충분히 세계적인 관심을 끌 수 있다는 자신감과 민화의 여러 요소가 현대 캐릭터가 갖춰야 할 장점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적인 캐릭터가 세계적인 인기를 얻기 위해서는 그것을 뒷받침할 서사와 대중문화적 기반이 필요하다. 그 첫걸음은 민화 속에서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현대 캐릭터가 가져야 할 덕목인 귀엽고 유머러스하고 재미있는 인물이나 동물상이 민화에는 가득하기 때문이다. 민화의 캐릭터와 현대의 피규어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이번 협업 작업은 그 벽이 결코 고정되거나 단단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이벤트다.


‘구현서가’는 민화와 오브제, 책거리와 피규어, 평면과 입체가 만나는 아름다운 조화다. 이 전시회는 책거리가 더 이상 화면이란 프레임 속에 고정된 정물화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그것은 화면의 안팎을 넘나들고, 새로운 이야기를 엮어내는 서사적 존재다.

책거리가 살아있다.



정병모 미술평론가, 한국민화학교 교장, 전 경주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