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우수갤러리 김봉준 기획초대전 

고난의 포월 - 평화의 품, 생명의 마당



기간 : 2026.04.29-05.18

장소 : 무우수갤러리 / 인사동길 19-2 와담빌딩 3,4F

시간 : 매일 10:00 - 18:00 | 금요일 11:00 - 18:00 무료관람

*전시 마지막날은 오후 12:00까지 관람 가능






“지구에 꽃피운 수많은 삶꽃 무늬를 한 자리에서 이었다. 그는 이것을 신령한 ‘영성靈性’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 잇기는 ‘삶-무늬’를 뒤범벅으로 섞은 게 아니다. 인간이 잃어버린 세계를 잇고 이어서 다시 회 복하려는 살풀이다.” 


김종길 미술평론, 전 경기도미술관 학예실장



그의 그림은 통념화된 기존 화단의 상투적 구도와 색채, 소재, 주제를 벗어나 한국화의 새지평을 개척 하는 가운데 자기만의 독창성을 획득한다. 따라서 한번이라도 작가의 그림을 제대로 본사람은 언제 어 디서 그의 그림을 다시 보더라도 ‘이것은 김봉준 작품이구나’ 하고 알아차릴 수 있다. 알아차림이 진 전되면 고도화된 기술문명 속에서 영혼을 잃어가는 생명력을 일깨워 잠든 신명을 요동치게 하는 역동적 힘을 공감할 것이다. 


임재해 민속학자, 안동대 명예교수 



그가 제시하는 ‘마당의 미학’과 ‘토착적 미래’의 세계 시민 각각의 정체성은 세계를 재미지고 매력적인 평화의 품으로 안내한다. 그가 이루고 있는 국제적 성과는 단지 글로벌 시장에서 소비되는 K-이미지 의 차원을 전환하여 현지적 시민의 힘으로 작용한다. 인류가 함께 살아가는 보편적 ‘생명의 마당’으로 서 K아트 한류를 이야기한다. 창조적 예술은 새로운 기준을 갱신한다. 


박성현 박피디 Renewal & Life 대표, 아트디렉터


 

작가노트



고난의 포월匍越, ‘평화의 품, 생명의 마당’ 미술 전시를 준비하며 


너그네는 내가 사는 땅 원주 문막 건등산자락에 펼쳐진 너른 땅 이름입니다. 고려 건국 전에 견훤과 궁예가 건등산에 올라서 산성을 차지하려고 사생결단의 전쟁을 벌린 것은 이 너그네를 차지하기 위해서 였답니다. 지금은 아무도 돌보지 않는 유적지만 아직 너그네 당산목이 구럭바위 위에 떡 버티고 서 있습니다. 9개 검은 바 위가 있었는데 장수설화가 깃들어 있고 배달국 치우천왕을 모시는 굿이 1970년대까지만 해도 있었다고 향토 사는 전합니다. 문막에 산지 33년이 되어서야 어리석게도 이 설화를 주목하며 이번 전시 주 그림을 그립니다. 


여기서 치룬 사당의 주신이 치우천왕이라니, 또 한번 놀랍니다. 문막 일대는 고려의 역사 흔적이 살아 있는 사지가 많은 곳입니다. 흥법사지, 법천사지, 거돈사지 등 고려 고찰이 있는 곳이고 섬강 일대에는 석기시대부 터 살아온 강변살이 씨족 공동체 살림살이 유적이 많이 발견된 곳입니다. 무문토기, 낙시바늘, 돌도끼, 혈거지 등이 강변에서 발굴되었지요. 섬강 하류인 이곳에서 조금 더 강이 흘러 남한강과 합류하는 곳이 문막입니다. 본래 지명 이름은 물막으로, “원주는 몰라도 물막은 안다”는 조선 속담이 전해집니다. 여기서부터 강원도 물 산은 나루터에서 배에 실려 남한강 한강을 타고 한양까지 갔습니다. 


‘너그네’는 너그럽고 넓은 땅이란 뜻이고 한마당의 다른 이름입니다. 페북에 문막 너그네를 소개하니 우리동 네에도 너그네란 지명이 있다는 댓글을 올린 분이 있습니다. 남양주시 화도면 가독리 가는 길목에도 있고, 강 원도 홍천도 넓을 홍자 너른내입니다. 너그네는 넓은 땅을 개간하여 사람 살림에 이득이 되는 좋은 냇가 땅으 로 큰 마당이란 뜻이 있습니다. 내가 사오십대 동북아평화연대 시민활동으로 고려인 돕기로 연해주 다닐 적 에 우수리스크에 가면 답사 갔던 드넓은 수답지를 보는 데 그 곳은 고려인들이 구한말부터 북방으로 올라가 벼농사를 처음 지어 개간한 논입니다. 지평선이 보일 정도로 드넓은 땅을 벼농사 지을 옥토로 개간 하였는 데 그 개척지를 한마당이라고 불렀답니다. 독립운동가 이상설 기념비가 그곳에 세워져 있습니다. 


조선인에게 땅이란 무엇인가, 생각해보았습니다. 삼한시대 이후 거친 돌밭을 옥토로 가꾸어 농사를 짓던 한 겨레에게서 땅은 가족과 부족이 먹고 사는 식량을 만드는 곳이고 살집이 터를 잡는 곳입니다. 고조선 전후 천 지인이 조화롭게 살고 싶어서 시작한 땅의 삶이었습니다. 땅에서 시작한 농경문명의 출발이 지금까지 조선문 화의 원형을 형성합니다. 그래서 아직도 전승되는 농경문명의 흔적이 지신밟이 마당밟이, 들밟이, 당산굿, 서낭당, 장승, 진또배기, 너그네, 한마당 같은 이름으로 전해옵니다. 너그네와 비슷한 이름 한마당의 ‘마당’이 야생의 땅을 개간하고 살림살이 터로 만든다는 뜻입니다. 마당은 오천년 조선인들이 만든 땅의 문화입니다. 


땅의 문화는 천지인 조화사상에서도 보입니다. 고사문에서 “천지신명에게 고합니다~” 할 적에도 그렇고, 고 대 조선의 경전인 천부경에서도 그렇고, 동학에서도 모두 천지인 조화의 삶을 고대하였습니다. 하늘과 땅과 사람 생명이 너그럽고 풍요로운 너그네 삶이 되려면 무엇보다 땅을 개간하고 집을 짓고 자식 낳고 살림살이를 해야 합니다. 땅 없는 살림살이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 조선인은 땅을 매우 중시하고 땅에 먼저 정성 들였습니다. 땅에 정성들여 하늘과 조상을 모셔 고사상차림을 올리는 터는 마당이 됩니다. 터 의례고사로 시작해서 살집을 짓고 장독간과 샘과 측간을 만드는 살림살이 전체가 땅의 도움과 은혜 없이는 안되기에 지 신밟이를 하는 겁니다. 그리하여 땅은 단순히 야생 자연이 아니라 하늘을 섬기며 인간이 머물 터전으로 차원 전환을 해서 마당입니다. 마당 없이는 천지인의 조화를 상상하지 못하며 민간의 역사를 만들지 못하였습니다. 마당은 그냥 땅이 아니라 조선 문명의 상징입니다. 국사 이전에 석기시대 민간사부터 밝혀 보아야 우리 문화의 근원에 다가갑니다. 


‘너그네’를 화두 삼아 이번 전시를 기획합니다. 그렇다고 우리동네만 보는 공간 개념이 아니고 한겨레가 살 림 사는 땅과 아시아와 태평양 건너 서아메리카까지 넓은 공간 개념을 품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저 같은 시 각 작가는 공간개념 상정 없이 상상력을 키울 수 없습니다.  청년 장년 노년기를 거치며 내게 영향을 주고 있 는 조선땅과 아시아 아메리카를 다 보면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1987년 북미 아메리카 문화기행, 1995년 서 아시아ㅡ 이란 시리아 요르단 이집트 요르단 트루키에 문화기행, 2003~10 동북아일대 기행, 시베리아, 중앙 아시아 문화기행, 2023~ 다시 북아메리카 문화기행을 하면서 문화적 공간 개념을 넓혀 왔습니다. 짧게는 한 달 길게는 몇 년에 걸치며 답사 워크샵 축제 전시 관람을 하면서 삶으로 공부한 세월이 있어서 그런지 나의 예술적 상상력은 일국주의를 벗어나 탈국의 광의적 공간 개념을 갖게 되었습니다. 세계적이라고 하기에는 너 무 거창하고 국가적이라고 하기에는 작은 그로칼리즘-Grocalism입니다. 이 시각으로 출발해 저 아시아태평양의 문명을 새로 봅니다. 


조선 고대문명의 상징 ‘너그네’에서 시작하여 아시아 태평양 문명을 봅니다. 지금 세계가 위기에 빠져 있습니 다. 전쟁, 기후, 식량, 에너지, 환경 위기의 근원은 다 서방제국주의 역사에서부터 기인했다고 할 순 없어도 절 반 이상의 책임은 서구문명 책임입니다. 인류사를 공부하면 할수록 어떻게 지구를 이지경이 되도록 망가뜨릴 수 있었을까 실망입니다. 이 의문에 답하려면 철기시대 전쟁문명을 지속적으로 유지 발전시키고 마침내 도시 산업문명과 1.2차세계대전으로 전지구적 위기의 책임은 서구문명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는 근대화 라며 전인류적 책임이 될 수밖에 없도록 모두 따라 갔으니 더는 할 말이 없습니다. 


그래도 예술의 자유로, 탈국가주의적 상상을 꿈꾸는 세계 시민의 한사람으로 여기 예술마당에서라도 발언 합니다. 그림이야기가 되든지, 이야기그림이 되든지, 신화적 예술이 되든지, 예술전시 공간에선 자유입니다. 여기 펼쳐 놓은 그림들에서 함께 느끼고 상상해봅시다. 나의 미술 읽기에 도움 주시는 인문예술인들께 감사 드립니다. 10여분을 모셨습니다. 35년전 첫 개인전 추천해 주셨던 윤범모 관장님, 무우수 갤러리를 추천해 주신 한국미술 사학자 이태호 교수님, 미대 동문인 동양미학자 이인범 교수님, 한국 최초로 설립된 신화미술 관 지도위원을 하시며 응원해 주신 임재해 민속학자님, 미술동인 두렁과 김봉준 미술운동 40년사를 정리하 신 김종길 선생님을 비롯하여 다양한 시각들로 전시의 이해를 돕고자 여러분 모셨습니다. 장미진 황대권 심 광섭 주홍 Che 서미라 후루카와미카 이재민 선생님들 옥고를 모시고 보니 전시의 인문적 이해가 더 풍부해 졌습니다. 너무 고맙습니다. 


끝으로 여기서 내놓은 제목 ‘고난의 포월’과 부제 `평화의 품, 생명의 마당`에 답하는 것으로 전시 취지문을 마치겠습니다.  요즘 매년 저는 미국 서부지역과 케네다를 답사 여행하고 축제 감독을 하고 전시와 워크샵을 하며 다녔습니다. 한번 가면 3~5달 정도 살면서 현지인들과 문화교류를 하는 중입니다. 거기서 전시도 하고 인디안 생활지 답사와 50여 인종이 사는 씨애틀에서 다민족 축제를 현지인 최세현Che Sehyun과 같이 감독 하고 출연도 하면서 현지에서 문화를 배우게 된 것이 있습니다. ‘토착적 미래’- IDIGENOUS FUTURE CULTURE 인데 이 개념은 ‘오래된 미래’ 개념과 비슷합니다. 후자는 스웨덴 인류학자 헨레나 로르베리 호지가 인도의 라 다크 지역을 답사하면서 현지인들의 오랜 전통적 삶의 양식에서 생태적 삶을 발견하고 여기에 인류의 미래 에도 살려야 하는 생태적 가치가 있다는 보고서를 책으로 낸 것입니다. 이 책은 이제는 현대 생태주의의 고 전 반열에 오릅니다. 그러나 전자 ‘토착적 미래’는 다른 곳에서 이주해서 다시 정착하며 새로운 삶을 꾸리면 서 자기 정체성을 되찾는 것입니다. 다시 삶을 이주해서 뿌리내린다는 점에서 디아스포라 문화와 비슷합니다. 거기 살아가는 다민족들이 어디선가 들어와 정착하면서 자기 나름의 주체적 삶을 살고자 자기 조상 대대로 이어온 문화 예술 언어 풍습 음식을 살리고 유지하면서도 다른 종족들과 어울려 평화롭게 사는 다시 토착하며 미래의 희망을 품은 삶입니다. 


나는 나의 그림이 강원도 산골에서 세운 정주형 ‘오랜 미래’를 너머 유목적 정주 토착적 미래의 문화로 관심 이 진전되고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현지에서 그린 그림도 이런 생각에 따라 변해갔습니다. 그래서 씨애틀에서 개인전에서도 너의 그림 소개를 IDIGENOUS FUTURE KOREAN POP ART라고 소개했더니 쉽게 이해합니다. 저는 한국성을 수용 하면도 너머서는 이중모순의 예술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모성의 포태로 태어나 생태지리 적 환경에서 자라 물성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내가 자란 평화의 품입니다. 그후 그로칼리스트 지역적 세계의 예술행동은 유목적 정주로 성장해 토착적 미래에 더 애착하는 예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기성세계가 주는 답에 의지만 하며 살기에는 너무 불완전한 시대입니다. 나에게서 그린다는 것은 내 인생이 던지는 물음에 솔직히 답하는 것입니다. 그 답도 제대로 완성되지도 않았으나 비록 낙서화가 되어도 새로 창작으로 답하고 싶습니다. 내가 사는 이 시대 끊이지 않는 전쟁으로 이 땅에서 불안전한 인간으로 사 는 것이 괴롭고 인류와 생명계에 미안합니다. 저질스런 탐욕을 숨긴 채 무기를 자랑하는 국가주의폭력이 인류적 재앙에까지 이르렀습니다. 평화의 품은 언제나 인류애를 담을 만큼 다시 소생할 수 있을까요. 여기 인류 마다 아롱진 평화의 품이 그리워 생명의 마당으로 그림 그립니다. 전시 제목은 고난의 초월이라 썼다가 고난의 포월匍越로 고칩니다. 내가 무슨 날개가 있다고 초인의 흉내를 내겠습니까. 나의 예술인생은  혼돈과 가화의 질서를 기어서 넘기입니다. 


전시를 초대해 주신 무우수 갤러리에게 감사드립니다. 특히 무우수 관장님이 요청하신 탈과 탈춤 그림을 그 리면서 문화 정체성과 정체성문화에 대해 다시 생각했습니다. 한국 탈에서 남다른 한국적 정체성을 재발견 하고 피해자 정체성을 주목한 것도 소득입니다. 한겨레는 고난의 시대 피해자 정체성- 어둠 한 증오를 극복 하고 어떻게 긍정의 문화를 만들고 한류문화로 문화선진국이 되었는지 탈과 탈춤에 답이 있는 거 같습니다.  


이번 전시를 마치고 바로 태평양 건너 내가 찾을 답이 있을지도 모르는 다민족사회로 또 갑니다. 아메리카 서부의 시민문화와 범신성 아시아문화와의 연대에 저는 희망을 봅니다. ‘평화의 품, 생명의 마당’을 아시아 태 평양의 영혼문화 잇기로 그려봅니다. 전시 마치고 잘 다녀오겠습니다. 



작가 김봉준






"A gathering of life-patterns that have blossomed across the Earth. He speaks of this as a divine 'Spirituality.' This connection is not a haphazard mixing of life-designs; it is a Salpuri—a ritual of release—intended to weave together the worlds humanity has lost and restore them once more."

— Kim Jong-gil, Art Critic, former Chief Curator of Gyeonggi Museum of Modern Art


"Breaking away from the conventional compositions, colors, subjects, and themes of the established art world, his work carves out a new horizon for Korean painting, achieving a singular originality. Anyone who has truly encountered his art will immediately recognize it anywhere: 'This is the work of Kim Bong-jun.' As this recognition deepens, one feels a dynamic resonance—a power that awakens the vitality and dormant spiritual energy (Sinmyeong) lost within our advanced technological civilization."

— Lim Jae-hae, Folklorist, Professor Emeritus at Andong National University


"The 'Aesthetics of the Madang' (Communal Yard) and the 'Indigenous Future' he presents offer a global citizenship identity that guides the world into a charming, peaceful embrace. His international achievements transcend the consumption of 'K-images' in the global market, instead acting as a force for local empowerment. He speaks of K-Art and the Hallyu wave as a universal 'Madang of Life' where humanity coexists. Creative art, in his hands, constantly renews the standard."

— Park Sung-hyun (PD Park), CEO of Renewal & Life, Art Director


Artist’s Note

The Crawling Transcendence of Suffering: Preparing for the ‘Embrace of Peace, Madang of Life’


Neogene (너그네) is the name of the vast fields sprawling at the foot of Mt. Geondeung in Munmak, Wonju, where I live. History tells us that before the founding of the Goryeo Dynasty, the warlords Gyeon Hwon and Gung Ye fought a desperate battle to claim this very land. Though now a neglected heritage site, the ancient village guardian tree still stands firm upon the rocks. Local history speaks of nine black rocks steeped in legends of giants, where rituals honoring Chiwoo the Great were held until the 1970s. It took me 33 years of living in Munmak to finally pay heed to these tales and bring them to the center of this exhibition.

Munmak is a place where the traces of Goryeo and the lived history of riverside clans from the Stone Age coexist. From the ruins of ancient temples like Heungbeopsa and Geodonsa to the excavated prehistoric pottery and stone tools found along the Seom River, the land is thick with memory. The name Munmak originally meant "Mul-mak" (Water Barrier), and an old Joseon proverb says, "You might not know Wonju, but you know Mul-mak." This was the gateway where the riches of Gangwon Province were loaded onto boats to reach Hanyang (Seoul).

Neogene means "generous and wide land"—another name for Hanmadang (the Great Yard). To the Korean people, land was never just soil; it was where life was cultivated and where the harmony of Heaven, Earth, and Humanity (Cheon-Ji-In) was sought. This agricultural origin forms the archetype of Korean culture, surviving today in names like Gasin-balgi, Seonangdang, and Jangseung. The Madang is not merely a physical space; it is a symbolic transformation of wild nature into a sanctuary for human life.

For this exhibition, I used "Neogene" as my hwadu (zen koan). My imagination, however, is not confined to this local village. It spans from the Korean Peninsula across Asia and the Pacific to the Americas. My artistic journey has been shaped by decades of cultural pilgrimages—North America in 1987, West Asia and Egypt in 1995, Northeast Asia and Siberia throughout the 2000s, and my return to North America in 2023. These experiences led me to a concept I call "Grocalism"—a vision too vast to be merely national, yet too rooted to be vaguely global.

I look at the Pacific civilization through the lens of this ancient Korean "Neogene." Our world is currently in crisis—war, climate, food, and energy. While Western imperial history and industrial civilization bear a heavy responsibility for this state, we have all followed the path of modernization. As a global citizen dreaming of post-nationalist imagination, I speak through this artistic Madang. Whether it be story-paintings or mythic art, the exhibition space is a realm of freedom.

The title of this exhibition is "The Crawling Transcendence (Powol) of Suffering." I initially thought of "Transcending (Chowol)," but I changed it to "Crawling (Powol)." I have no wings to fly like a superhuman; my artistic life is a process of crawling through chaos to find a new order.

This journey explores the concept of the "Indigenous Future." While the "Old Future" (as coined by Helena Norberg-Hodge) looks for ecological values in ancient traditions, the "Indigenous Future" is about reclaiming identity while settling into new lands—much like the Diaspora. It is about maintaining one's ancestral culture while living in peaceful harmony with others. My art has evolved from the sedentary "Old Future" of the Gangwon mountains to a nomadic "Indigenous Future."

Painting is my way of answering the questions life throws at me. In an age of endless war and greed, I feel a deep sense of apology to humanity and the living world. I dream of a "Madang of Life" that can once again hold the weight of human love.

I extend my deepest gratitude to Moowoosoo Gallery for hosting this exhibition. In particular, painting the masks (Tal) requested by the Director allowed me to rediscover the unique resilience of Korean identity—how we overcome the darkness of "Han" (sorrow) to create a culture of affirmation and global resonance.

After this exhibition, I will cross the Pacific again to rejoin the multi-ethnic societies where I continue to seek answers. I find hope in the solidarity between the civic culture of the American West and the pan-spiritual culture of Asia. I paint "The Embrace of Peace, Madang of Life" as a way to connect the souls of the Asia-Pacific.

Artist Kim Bong-j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