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우수갤러리 기획초대전


A Hopeful Journey 희망항해



기간 : 2026.03.04-03.16 / 인사동길 19-2 와담빌딩 3, 4F

시간 : 매일 10:00 - 18:00 무료관람

*전시 마지막날은 오후 12:00까지 관람 가능




 전시서문




실재實在 : 여정으로 드러내기



향기를 찾아 떠나는 여정

작가에게 있어서 전시는 완결된 결과물을 펼치기보다는, 완성을 준비하는 시간과 그 과정 전체를 일련의 수행적 사유로 제시하는 장이라 할 수 있다. 작업은 이미 정해진 결론을 향해 나아가기보다, 오랜 시간 축적된 질문과 아직 언어로 포획되지 않은 감각, 내면의 미세한 떨림들을 조형적 상징으로 천천히 응축하는 과정 속에서 생성된다. 이때 작품은 고립된 대상이 아니다. 작가가 관계 맺어온 타자들, 그리고 함께 살아온 시간의 흔적들이 교차하며 형성된 삶의 궤적을 담아내는 매개라 할 수 있다. 민은희 작가의 이번 전시는 그러한 삶과 예술의 여정이 시각적 형상으로 잠시 모습을 드러내는 하나의 장면이자, 사유의 흔적을 기록한 아카이브라 볼 수 있다.

민은희 작가는 예술가로서의 존재를 우리에게 익숙한 동물의 형상을 통해 입체적 조형 언어로 풀어낸다. 그 중심에 놓인 고래는 작가 자신을 상징하는 존재이자, 사유의 주체로서 세계와 관계 맺는 자아의 형상이다. 깊은 심연을 유영하는 고래는 깊은 내면을 탐구하며 불확실한 세계를 항해하는 자신을 은유한다. 파도와 어둠, 성난 바람, 그리고 강렬한 햇살 속에서도 고래는 별자리를 따라 나아간다. 이는 가시적인 지표가 사라진 자리에서도 감각과 기억을 신뢰하며 방향을 설정하는 예술가의 태도를 드러내며, 보이지 않는 것을 근거 삼아 세계를 통과하는 내적 나침반을 상징한다. 이번 전시의 서사는 ‘향기를 찾아 떠나는 여정’이라는 상징성으로 집약된다. 여기서 향기는 명확한 개념이나 대상으로 환원될 수 없는 무엇이며, 언어 이전의 감각이자 아직 도달하지 못한 의미를 찾고자 하는 가능성이기도 하다. 민은희 작가에게 예술은 분명한 답을 제시하는 행위라기보다, 불확실함을 견디고 머무르며 그 안에서 다시 길을 찾는 태도에 가깝다. 고래가 향기를 쫓아 항해하듯, 작가는 아직 이름 붙일 수 없는 무언가를 향해 작업을 지속한다. 그 여정에서 스쳐 지나간 감각과 만남들은 조형 언어로 응결되어 이 전시 공간 안에서 하나의 존재로 우리 앞에 마주한다.


희망호 : 나의 HERO, 우리의 HERO

이번 전시에서 눈에 띄는 또 하나의 특징은 다양한 캐릭터들의 등장이다. 그중에서도 ‘희망호’는 작가의 세계관을 가장 집약적으로 드러내는 상징적 장치이다. 희망호는 보물섬을 향해 항해하는 배이다. 그 위에는 꽃돼지 가족이 함께 타고 있다. 우리는 흔히 진리나 명확한 의미를 향해 직선적으로 나아가는 서사를 기대하지만, 희망호의 항해는 그러한 목적론적 구조를 거부한다. 이 배가 향하는 곳은 분명하지 않으며, 오히려 낯설고 규정 불가능한 세계이다.

희망호는 무우수MOOWOOSOO 갤러리라는 공간 안에서 작가의 사유를 읽어내는 핵심적인 메타포로 기능한다. 예술이란 본래 비존재적인 것이자 개념화 이전의 감각을 다루는 영역이라면, 희망호의 항해 또한 그러한 예술의 본질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이 배가 찾아 나서는 것은 명확한 목적지가 아니라, 어쩌면 ‘향기’와 같은 것이다. 실체는 없으나 분명히 감지되는 가능성, 아직 도달하지 않았지만 이미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어떤 힘이다. 희망호는 망망대해를 건너는 작가 자신의 삶을 상징함과 동시에, 불확실한 현실 속에서도 나아가게 하는 내적 동력을 표상한다.

예술가의 작업 과정은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였던 경제적 합리성의 논리와는 쉽게 조응하지 않는다. 전시를 위한 반복적인 제작, 물질에 대한 탐구, 실패와 소진의 시간은 효율과 생산성의 관점에서 보면 비현실적인 행위로 보일 수 있다. 프랑스 철학자 조르쥬 바타이유는 예술가를 스스로를 소진 시키는 태양에 비유했듯, 예술은 근본적으로 소모와 불확실성을 내포한다. 그럼에도 예술가가 항해를 멈추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민은희 작가의 희망호, 그리고 그 위에 함께한 꽃돼지 가족은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사유적 응답으로 볼 수 있다.

꽃돼지 가족은 방향타를 쥔 작가에게 힘을 건네는 존재이며, 삶을 지속하게 하는 실제적이면서도 상징적인 타자이다. ‘보물섬을 찾아 떠나는 배’는 단순한 환상이 아니라, 희망의 모티브이자 삶을 견인하는 안내자이다. 이번 전시는 우리가 일상 속에서 무심히 지나쳐왔던 존재들인 가족, 친구, 관계 등을 환영(illusion)의 형식으로 다시 표상한다. 이 환영은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오히려 현실을 다시 사유하게 만드는 장치인 것이다.

우리는 전시를 통해 익숙한 일상의 풍경을 낯선 미지의 얼굴로 다시 마주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잊고 있던 관계를 떠올려 본다면,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지만, 분명히 우리를 지탱해 온 영웅과 같은 존재들을 감각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민은희 작가의 작업은 이러한 이해 불가능한 존재들을 조형적 상징으로 드러내며, 예술이 삶의 결핍을 어떻게 감각과 사유의 층위에 메워가는지를 조용히 증언한다.


관계 속에서 빛나는 존재들

전시에 등장하는 고래와 꽃돼지, 그리고 희망호는 작가의 내면적 서사에서 출발하지만, 특정한 개인의 이야기로 한정되지 않는다. 이들은 멀리 있는 환상 속의 존재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삶 속에서 관계를 맺고 이동하는 존재들이다. 이들과 함께 지나온 시간들, 함께 울고 웃었던 기억들, 말없이 내밀었던 손길들은 단순한 회상의 파편으로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들은 감각이나 정서와 함께 켜켜이 쌓여 하나의 존재로 축적되며, 작가의 작업 안에서 ‘향기’라는 비물질적 개념으로 전환된다.

여기서 향기는 규정된 형태로 제시되기보다는 관계 속에서 발견되고 생성되는 감각이다. 고래와 꽃돼지가 향기를 찾아 항해하는 서사는 작가의 삶과 분리되지 않은 채 이어지며, 작가가 세계를 인식하고 관계를 맺는 방식 그 자체를 드러낸다. 이는 작가가 삶을 완결된 서사가 아닌, 끊임없이 열려 있는 과정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이번 전시는 하나의 결과물이라기보다, 향기를 찾아 나서는 항해 기록이자 질문의 공간에 가깝다. 작품 속 고래, 꽃돼지, 나비, 희망호 등은 작가의 세계관에 일부로 기능하며, 각각은 고정된 상징이기보다는 감정과 기억, 그리고 관계의 상태를 대변하는 유동적인 기호들이 된다. 이 세계관은 닫혀 있는 서사가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확장될 수 있는 구조를 지닌다. 이후의 작업 속에서 더 많은 동물들과 존재들이 등장할 것이며, 우리는 그 세계관을 통해 민은희 작가의 또 다른 ‘히어로들’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상징적 조형 언어들은 일본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에서 주인공이 다양한 존재들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여정을 완성해 가는 구조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민은희 작가의 작품 역시 관람자와 조우하는 순간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며, 작가의 삶과 세계관을 다시 한번 환기시키는 상징적 매개로 작동한다.

전시를 통해 민은희 작가를 빛나게 하는 이 상징물들의 향연은 그의 예술 세계를 펼쳐 보이는 시간이 될 것이며, 앞으로 작가의 여정 속에서 새롭게 등장할 상징들과 존재들은 또 다른 향기를 품고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다. 그 향기를 따라가는 일은 곧 민은희 작가의 예술 세계를 따라 항해하는 일이자, 동시에 우리 각자의 삶과 감각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과정이 될 것이다.



아인 아트컴퍼니 이봉욱 예술학박사





작가노트




향기를 따라 항해하는 세계,

그리고 지금의 우리

나의 작업은 하나의 세계에서 시작되지만, 결코 현실과 분리된 이야기는 아닙니다.

나의 작품의 세상은 바다와 육지가 나뉘고, 태어날 때부터 알 수 없는 존재들이 살아가는, 지금 우리 현실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바다에는 향기가 존재하지 않고, 고래는 꽃향기를 알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꽃향기가 세상

에서 가장 향기롭다는 소문은 깊은 바다까지 전해집니다. 


향기를 알지 못하는 고래가 항해를 시작하는 이유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믿음 하나뿐입니다. 현실의 오늘에서는 답을 알 수 없고 방향이 흐릿한 채 하루하루를 건너가고 있지만, 파도처럼 밀려오는 삶 속에서도 질문을 멈추지 않는 고래는 곧 나의 모습이고, 우리의 모습입니다. 나의 작품에서 희망은 처음부터 밝은 빛으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고래는 높은 파도와 짙은 어둠 앞에서 방향을 잃고, 성난 바람과 강한 햇살 속에서 흔들립니다. 하지만 별빛은 늘 밤이 가장 깊을 때 나타나고, 태양은 어둠이 완전히 지나간 뒤에야 떠오릅니다. 희망은 어려움이 사라진 뒤에 주어지는 보상이 아니라, 어려움 속에서도 다시 나아가게 하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고래가 끝내 마주한 향기는 외부에서 주어진 해답이 아닙니다. 견디고, 흔들리고, 질문하며 지나온 시간 속에서 스스로에게서 피어

난 향기입니다. 이 순간 고래는 꽃고래로 변화합니다. 꽃고래는 성공의 표식이 아니라, 지나온 시간을 스스로 인정하게 된 존재의 모습입니다. 지금의 현실이 힘들수록, 우리가 찾고 있는 희망은 멀리 있지 않음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꽃돼지는 가장 현실적인 희망의 모티브입니다.

꽃을 들고 바다로 향하는 꽃돼지는 거대한 구원자가 아니라, 말없이 곁을 지켜온 가족과 관계, 그리고 반복되는 일상을 상징합니다. 우리가 붙잡을 수 있는 희망이란 거창한 변화가 아니라, 오늘을 견디게 해주는 사람과 관계, 그리고 계속 이어지는 사랑임을 꽃향기를 전해주는 꽃돼지의 모습으로 보여줍니다. 향기는 냄새가 아니라 기억이고, 감정이며, 관계의 온기입니다. 사라진 것 같아도 이미 우리 안에 남아 있는 감각입니다. 작품에서 만나게 되는 자연은 자신의 감정을 대입할 수 있는 풍경입니다.구름은 잠시 숨을 고르게 하는 순간이고, 바람은 멀리서 전해지는 소식과 위로이며, 나비는 잊고 있던 사랑과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계기입니다. 거친 파도와 비는 우리가 겪고 있는 불안과 좌절을 닮아 있습니다. 나의 작품은 이 모든 감정을 밀어내지 않습니다. 대신 그것들을 만나고 이해하고 극복하는 과정으로 이야기합니다. 희망은 피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이해하고 상황을 겪어내는 과정 속에서 발견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희망호’는 나의 작품의 세계에서 가장 직접적인 은유입니다.

이 배에는 특별한 영웅이 타고 있지 않습니다. 츄리닝을 입은 평범한 사람들은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희망호가 항해할 수 있는 이유는 완벽한 지도나 확실한 목적지가 있어서가 아니라, 같은 배를 타고 서로를 믿으며 노를 젓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현실이 힘들수록,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은 가장 현실적인 희망이 됩니다.


나의 희망의 이야기는 개념에 머무르지 않고, 손으로 빚는 과정 속에서 완성됩니다. 작품은 흙을 빚어 여러 차례 고온에서 소성하는 도자 방식으로 만들어집니다. 흙을 만지고 형태를 만들고, 충분한 시간을 들여 건조한 뒤, 1000도가 넘는 가마의 불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 안에서 색은 계산된 그대로 머무르지 않고, 불의 온도와 흐름에 따라 예상하지 못한 변화로 나타납니다. 


가마 속에서는 언제나 긴장이 함께합니다. 형태가 깨지거나, 원형이 일그러지거나, 생각하지 못한 결과를 마주하는 순간도 찾아옵니다. 그럴 때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흙을 빚고, 기다리고, 또 불 앞에 세웁니다. 이 반복되는 시간은 실패를 지우는 과정이 아니라, 시간을 견디는 법을 배우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작품 속 고래의 항해, 희망호의 느린 전진, 꽃돼지가 건너온 긴 여정과 닮아 있습니다. 같은 불 속에 들어가도 작품은 같은 색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꿈꾸는 희망의 색이 모두 다르듯, 흙을 빚고 채색한 작품 또한 각자의 색을 품고 있습니다. 작품 안에서 희망은 정해진 색이 아니라, 끝까지 견딘 시간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고유한 빛입니다.


작업에서 흙과 불, 기다림과 반복은 모두 이야기의 일부입니다. 계산되지 않은 결과를 받아들이고, 다시 시작하기로 선택하는 시간. 그 과정은 지금의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겹쳐 있습니다. 작품은 완성된 형태만을 보여주기보다, 그 안에 축적된 시간과 선택, 그리고 다시 믿어보기로 한 마음을 함께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의 작품의 희망은 가볍지 않습니다. 불을 통과했고, 시간을 견뎠고, 다시 빚어졌기 때문입니다. 희망은 쉽게 얻어지지 않았기에 더 단단하고, 더 오래 남아 있습니다. 꽃고래와 꽃돼지, 그리고 희망호의 세계는 멀리 있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건너고 있는 바다, 우리가 붙잡고 있는 관계, 아직 놓지 않은 마음과 겹쳐 있는 세계입니다. 나의 작품이 어둠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게 하는 작은 기준이 되기를 바랍니다. 각자의 현실에서, 다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도록 나의 작업의 항해는 계속될 것입니다.


작가 민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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