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우수갤러리 한불수교 140주년 기념
2026 재불청년작가협회 AJAC 단체기획전
Absent mais pourtant là
여기없는, 그러나 이어지는
기간 : 2026.02.11-03.02
장소 : 무우수갤러리 / 인사동길 19-2 와담빌딩 3F
시간 : 매일 10:00 - 18:00 무료관람
*전시 마지막일 오후 12시까지
파리와 서울의 하늘 아래
올해 2026년은 한국 프랑스 수교 140주년이 되는 해이다. 하여 잠시 한국과 프랑스 수교의 장면들을 짚어보았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1888년 고종 황제의 사진을 맨 먼저 찍었다고 알려져있는 프랑스 민속학자 샤를 바라(Charles Louis Varat)이다. 바라는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조선 민예품을 내보이는데 일조했으나, 우리에겐 김수영의 시로 유명한 이사벨라 버드 비숍(Isabella Bird Bishop, 1831-1904)여사처럼 조선인들에 대해 그다지 좋은 인상을 가지진 않았다.1) 두 번째로 내게 각인된 장면은 구한말 조선의 여러 면모에 관해 서술했던 조르주 뒤크로(Georges Ducroq) 그리고 그를 동반하여 조선 탐험을 나선, 묵직한 카메라를 들고 있는 루이 마랭(Rouis Marin)의 모습이다.2) 이어서 조선 탈과 민예품을 수집했던 프랑스 공사 빅토르 콜랭 드 플랭시(Victor Colin de Plancy)가 있다.3)
뒤크로가 묘사했듯 호롱불빛 속에 화려한 오렌지빛 의상을 입고 춤추었을 무희들중 가장 아름다웠을 리진의 모습은 알 수 없기에 되려 상상 속에 강렬하게 자리잡았다. 그러나 ‘반도의 무희’ 최승희와 대조되게 리진의 삶은 불행하게 끝난다. 프랑스에 끝내 적응하지 못한 리진은 홀로 조선 궁궐에 돌아왔고, 금침 수십개를 삼키고 자살한다(하필 금침일까, 너무 고통스러웠을 것 같다). 「브뤼메르 18일」의 테제처럼 역사가 처음에 비극으로 끝난다면, 유사한 사건이 다시 반복된다면 희극으로 끝맺을 수 있을까. 리진의 불우한 운명을 떠올릴 때마다 궁금해지곤 했다. 박봉에 불평하기도 했던 외교관 드 플랑시의 조선미술 수집의 흔적을 찾아 파리에 갈 때마다 기메 뮤지엄을 찾았다.
한편 한국과 프랑스 수교의 초기 장면부터 지금까지 반드시 상기할 수 밖에 없는 것은 한국과 프랑스의 수교는 시초부터 가톨릭 전파와 함께했고 특히 서강대를 통해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예수회 선교의 전통 안에 있다는 점이다. 수교 당시부터 조선에 파견되었던 그래서 마테오 리치(Mateo Ricci, 1552-1610)라든지 조선 후기에 북경에 외교관으로 파견되었던 실학자들과도 나란히 사유되는 가톨릭 신부님들을 빼놓을 수 없다. 달드베르(dalle de verre) 스테인드글라스로 유명한 루카 이남규(1931~1993), 김인중, 배요한을 비롯한 여러 ‘예술가’ 신부님들이 계시다.
보다 본격적인 한국미술의 장면으로는, 큰 획을 그은 작가들 몇이 먼저 떠오른다. 가장 먼저 프랑스에 유학한 구상화가 설초(雪蕉) 이종우(1899-1979), 비록 식민지 시대 일본의 그늘 아래였으나, 그의 단아한 아카데미즘 그림들은 근대미술답다. 다음으로 나혜석, 김환기, 이응노, 이성자, 최욱경, ‘에콜 드 서울(École de Seoul)’, 박서보 주도의 그룹전이다. 이후 ‘쉬포르 쉬르파스’와 연계된 작가군4)이 예시하듯, 프랑스는 매 시기 서울의 한계로부터 돌파구가 되어주었다. 특히 파리는 예나 지금이나 작가들, 비평가들이 자유를 향해 떠나곤 했던, 일종의 꿈의 장소이다. 1950-60년대의 장면에는 한국적 모더니즘 담론을 이끌었던, 파리에서 돌아온 멋진 비평가 이일의 모습이 있고, 그 장면은 80년대 이후 데리다의 독해를 미술비평에 접목했던 신방흔, 또 이일과 마찬가지로 홍익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던 유재길, 작가 이열, 김수자, 홍승혜 등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이번 《파리청년작가6인전》은 2025년 무우수에서 열린 《르 스펙트르 드 레트르Le Spectre de L’Être(Lettres)》 전의 후속전이라 할 수 있고, 때문에 그 여운을 간직한다. 기획자 이혜원은 그 전시에 대해, 존재와 관계를 ‘스펙트럼’으로 보려 한다고 언급한다. 이 전시는 또한 레트르(lettres), 마음에 새겨지는 시원적 글쓰기의 자소(graphème)적 기입을 강조한 데리다 그리고 최근 빈번히 회자되는 라투르(Bruno Latour)의 비인간 행위자네트웍이론(non-human, ANT)으로 뒷받침되었다.5) 회화에 집중한 이번 전시와 달리, 앞의 전시에서는 다수의 사진이 제시되었다. 이혜원은 전류나 번개가 지나간 흔적을 따라 혹은 포말 이는 물결이 지나간 자국을 따라 색채감있는 추상을 제작한다. 색채 추상인 그의 그림에는 흔적과 균열이 만드는 미로같은 어떤 궤적이 드러난다. 그것은 프로이트가 「과학심리학초고」에서 감각지각과 의식의 관게를 설명하며 ‘길내기(Bahnung)’로 언급했던 신경생리학적 과정을 연상시킨다.6)
아크릴로 초현실적이면서도 사실적인 독특한 정서를 담아내왔던 양용현은 이번에는 하늘과 바다가 구분되지 않는 고적한 섬들 사이에 어른거리는 하얀 막같은 어떤 기운을 그려냈다. 버섯이 호흡할 때 혹은 전하를 띤 아주 작은 입자들(particles)이 옅은 막을 이룰 때 생겨나는 이런 막은 이를테면 포자나 바이러스처럼 활성적 유기체와 비활성적 무기물 사이에서 발생하는 반(半)생명체라 할 수 있다. 이혜원의 <감정의 흔적들Les traces des émotions>과 양용현의 <지나면서-N>연작뿐 아니라 지온의 <벽과 꽃> 또한 비인간 행위자에 주의를 기울이는 행위라 할 수 있다. 또한 이번 전시에는 이새흰의 개념적이면서 포스트미니멀한 섬세한 영상 작업과 조각이 설치되었다. 이새흰과 지온, 강서영의 작업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그러면서도 이미 일어나버린 듯한 어떤 사태의 ‘이전’과 ‘이후’를 동시에 포착한 듯한 느낌을 준다. 자그마한 검은 돌을 태우는 잔불은 어른거리는 잔영, 하얀 눈밭을 디디는 자박이는 희미한 발자국 소리, 멀리서 들렸다 사라지는 차의 시동 소리와 함께 주의를 기울일 때만 듣고 감지할 수 있는 섬세한 감각을 드러낸다.
강서영의 <당신의 양>#연작은 극적이다. 형태를 갖추기 이전 카오스 상태의 회색 구름같은 붓자국은 발생 중의 기이한 동물처럼 보이며, 격렬한 붓자국은 가즈오 시라가의 진흙과의 사투 혹은 1차 대전을 예감했던 프란츠 마르크(Franz Marc)의 추상화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 시리즈에서 회색의 먹구름같은 혼돈에 구멍이 뚫릴 때 분홍, 하늘색 등의 색채가 언뜻언뜻 드러나는 것은 동양 신화를 연상시키며 또한 유머러스하다. 한편 두 가지 색채로 이분된 화면 중앙에 놓인 하유미의 집은 이런 저런 형태들이 반은 무작위하게 반은 채곡채곡 쌓인듯한 볼륨으로 등장한다. 그것은 내부가 다 드러나보이면서, 기하학적 도형의 움직임의 궤적이라든지 사다리로 보이는 줄무늬들이 미로처럼 엉켜 있는 기이한 집이다. 이들의 모든 회화 작업은 프랑스적 에스프리를 지니면서도, 또한 감정이입의 깊이를 허락받지 못한, 혹은 전적으로 거부하는 동시대 한국 청년 작가들의 디지털적인 ‘플랫’한 경향을 공유한다.
프랑스 특히 파리는 한국 예술가들에겐 꿈꿀 수 있는 ‘다른 곳(elsewhere)’, 항시 당대의 제약으로 구속되었던 한국의 바깥, 숨쉴 수 있는 장소였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의 현재에서 ‘프랑스 미술’ 나아가 ‘프랑스 회화’라는 것이 따로 존재하는가 라는 것은 쉽지 않은 질문이다. 벵자맹 올리벤느(Benjamin Olivennes, 1990~)는 『또 다른 현대미술: 진짜 예술가와 가짜 가치들』에서, 그러저러한 프랑스 미술에 관한 질문에 성실하게 답변한다. 그는 명료함, 주장을 내세우기보다는 사실을 정확히 하려는 욕망, 단순함과 긴밀함을 바라는 의지, 정신적 진리에서 오는 차분함 등을 꼽는다. 특히 소재들의 목록으로부터, 프랑스 사유의 공통된 특징을 추출한다. 관찰된 세계의 기하학적 재구성, 이성과 감성 사이의, 이성과 감성 사이의, 데카르트주의와 에피쿠로스주의 사이의, 소묘와 색채 사이의 균형, 과장되거나 지나치지 않은 형태의 고전주의, 그리고 그로부터 나타나는 풍경과 지금 여기 이 세상 속의 삶, 여성과 음식, 현재를 향한 평온한 사랑 등이다. 그리고 그러한 특성은 한국과 프랑스라는 경계 너머 이번 전시의 청년작가들에게도 그대로 해당되는 것이기도 하다.
최정은 미술사연구자·미술비평가
1) 샤를 루이 바라(1842-1893), 샤이에 롱 지음, 『조선기행 Deux Voyages en Corée(1892)』, 성귀수 옮김, 눈빛, 2001.
2) 조르주 뒤크로(1874-1927), 『가련하고 정다운 나라 조선 Pauvre et Douce Corée(Paris, 1904』), 최미경 옮김, 눈빛, 2006. 뒤크로는 여행가이자 시인, 외교관이었다. 후일 정치가, 교육자로 활약했던 루이 마랭(1871-1960)은 프랑스 사회학과 민속학에 있어
중요한 인물로 일본의 식민지배를 규탄했다. 그는 한국을 “극동의 프랑스”로 지칭하며 독립을 지원했다. 마랭은 1901~2년 당시 뒤크로를 동반하여 조선을 여행했고 이 책에 실린 삽화는 이때 찍은 스테레오스코프 유리원판 사진이다.
3) 드 플랑시와 리진의 일화는 제2대 조선 주재 프랑스 영사 및 전권공사 이폴리트 프랑댕(Ipolite Frandin)의 회고록 「한국에서」(1905)에 기록되었다.
4) 작년 2025년에 회고전 성격의 ‘쉬포르 쉬르파스’ 전시가 열렸다. 《쉬포르 쉬르파스》는 ‘지지체와 표면’이라는 뜻으로, 회화를 구성하는 가장 근본적 요소를 대상으로 삼았다. 《쉬포르/쉬르피스전Supports/Surfaces》 (대구보건대인당뮤지엄, 2025. 5.15-8.13) 미술
비평가 윤진섭외 작가 13인.
5) 이혜원, 김지나 기획, 《르 스펙트르 드 레트르Le Spectre de L’Etre(Lettres)》: 재불청년작가9인 기획전, 무우수 갤러리, 2025.3.5.~3.31, 이혜원, 김지나, 드미래, 우채연, 김하은, 김수경, 모준석, 손지영, 박소현 참여
6) 지그문트 프로이트, 「과학적 심리학 초고」(1895), 『정신분석의 탄생』, 임진수 옮김, 열린책들, 2005, pp.236-239.
전시서문
프랑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재불청년작가협회 소속 6인의 작업이 서울 인사동 무우수갤러리에 도착한다. 이번 전시는 작품만이 이동하고 작가는 현장에 부재한 상태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 물리적 부재는 오히려 이번 전시의 중요한 조건이 된다. 작가가 없는 자리에서 작품은 스스로의 시간과 흔적, 그리고 감각의 층위를 통해 관객과 조용히 마주한다.
본 전시는 회화 5인과 비디오 1인의 작업으로 구성되며, 각기 다른 매체와 방식 속에서도 공통적으로 시간의 축적, 흐름의 흔적, 사라짐 이후에 남는 것들을 탐구한다. 이새흰은 자연 원소가 개입한 조각적 현상을 영상으로 아카이빙하며, 통제 불가능한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기록한다. 그의 작업에서 조각은 고정된 대상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하나의 현상으로 존재한다.
회화 작업들은 보다 내밀한 시간의 층위를 드러낸다. 양용현은 초록의 풍경을 통해 삶 속에서 마주하는 감정과 인연, 그리고 ‘지나감’의 감각을 은유적으로 풀어낸다. 강서영은 경계와 세계화, 불확실한 사회적 조건을 가변적인 형식으로 제시하며, 가시성의 모호함과 불확실성은 관객의 상상 속에서 더욱 증폭되어, 무한한 해석과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이원의 작업은 번개의 프랙털 구조를 통해 개인의 삶과 감정이 어떻게 분기되고 다시 연결되며 하나의 지형을 이루는지를 시각화한다. 겹겹의 한지와 푸른 색면은 생명과 공동체, 그리고 근원적인 흐름을 상기시킨다.
지온은 일상의 감각이 시간 속에서 축적되는 과정을 회화와 드로잉의 레이어로 드러내며, 이미지가 고정되기 이전의 상태를 탐색한다. 하유미는 ‘집’이라는 공간을 통해 기억과 시간, 변화의 흔적을 그려내며 사라짐 속에서도 남겨지는 존재의 자취를 질문한다.
이 전시에 모인 작업들은 하나의 결론을 제시하기보다, 각자의 방식으로 흐르고 스며든다. 번쩍이며 사라지는 순간, 반복되는 일상, 겹쳐지는 기억과 감정, 그리고 보이지 않게 이어지는 관계들. 관객은 이 조용한 풍경 속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동시에 자신의 시간과 경험을 포개어 보게 된다.
작가들은 이 자리에 없지만 그들이 남긴 형상과 흔적은 여전히 살아 움직인다. 이번 전시는 지나간 것들, 사라진 것들, 그리고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것들에 대한 하나의 느린 응답이다.
윤미지 재불청년작가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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