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우수갤러리 남재현작가 기획초대전
달빛이 이끄는 곳
Where the Moonlight Leads
일시 : 2025.12.24-2026.01.12
장소 : 무우수갤러리 / 인사동길 19-2 와담빌딩 3-4F
시간 : 10:00 - 18:00 무료관람
전시서문
보이지 않는 길을 따라, 달빛이 이끄는 곳
동서양을 막론하고 달에 대한 서사는 참으로 많다. 호랑이의 공격을 피해 하늘로 도망쳐 해와 달이 되었다는 일월신화, 오빠 아폴로가 태양의 신, 여동생 아르테미스가 달의 신이 되어 만인에게 추앙을 받은 그리스-로마 신화와 달리, 보름달이 뜨면 늑대로 변하는 늑대인간의 전설이나 달이 어둠과 악의 화신으로 보름달 아래에서 제물을 받치는 유럽의 설화는 괴기하고 음산하다. 중동에선 깜깜한 어둠에서 다시 떠오른 초승달이 ‘부활’을 상징하고 우리나라에선 보름달이 풍요와 행운을 상징하기에 옛날부터 보름달을 향해 소원을 빌었다. 달은 그렇게 태초부터 밝음과 어둠, 선과 악, 길(吉)과 흉(凶)의 이분법의 양쪽을 아울러왔다.
남재현의 작품은 칠흑같은 배경과 화면의 대부분을 채운 커다란 달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펼친다. 비행기와 폭스바겐의 미니버스, 캠핑카가 휘영청 밝은 달빛을 받으며 어둠 속에서 환하게 빛난다. 그 탈 것들 안엔 비숑, 푸들 같은 반려동물과 판다 같은 귀여운 존재들이 담겨있다. 달의 크기에 비해 이 존재들을 터무니없이 작게 묘사했지만 이 드라마틱한 대조가 작고 귀여운 동물들의 존재감을 극대화시키는 작용을 한다. 커다란 달이 주인공이 아니라 달빛에 반사된 작은 존재들이 주인공인 아이러니. 달이 주는 에너지 덕택이다.
화면 안에서 달과 주인공은 상호적인 역할을 한다. 달과 어둠 – 이 두 키워드는 동일 선상에서 얼마든지 그로테스크함과 공포로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다. 그러나 작가가 우리와 친근한 동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움으로써 달이 가진 긍정적이고 선한 측면을 이야기하자는 의도가 자명하다. 행복한 표정의 주인공들, 비비드한 컬러의 앤틱 자동차와 경비행기는 달빛으로 인해 캄캄함 속에서도 생기가 충만하다. 흑암은 오히려 그들의 컬러를 더욱 두드러져 보이게 하는 좋은 장치가 되어준다.
그렇게 빛을 받은 존재들이 달을 향해 여행을 한다. 옛날 우리 조상들이 정화수를 떠놓고 소원을 빌며 어떤 신적인 존재가 도와주길 바랬던 것에 비해, 아예 달을 향해 날아가는 행동력은 뜻을 이루기 위한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표현이다. 그들의 여정을 환한 달이 밝혀준다. 어둠을 물리치는 빛은 가장 큰 도움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달빛이 이끄는 곳>은 꿈을 이루기 위한 의지와 노력을 판타지로 재해석한 동화이자 모두의 행보를 응원하는 메시지가 된다.
아트디렉터
엄윤선
작가노트
동아시아에서는 오랫동안 이상향을 그려온 작품들이 많이 존재해왔습니다. 그 중에서도 한나라 시대부터 미술에서 이상향을 표현한 작품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의 미술에서 특히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자연을 이상화하고, 이를 통해 인간의 갈망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산수화는 그 대표적인 예로, 그 안에서는 인간과 자연이 하나가 되어 이상적인 세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산수화 중에서도 특히 관념 산수화는 실제 자연을 그린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상적인 자연을 그린 작품들입니다. 이는 현실의 불만족을 해소하고, 인간이 꿈꾸는 이상적인 삶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 미술에서 이상향을 그린 작품 중 유명한 예시로는 소상팔경도가 있습니다. 소상강 주변의 여덟 경치를 그린 이 그림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통해 이상적인 세계를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소상강을 둘러싼 경치는 현실에서의 고통과 갈등을 잊게 해주는 장소로, 그곳에 있는 여덟 개의 경치는 사람들에게 평온함과 안식을 주는 이상적인 공간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이러한 그림들은 단순히 자연을 묘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자연을 통해 인간의 마음속 깊은 갈망과 이상향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처럼 동아시아 미술에서는 자연을 통한 심리적 해방과 이상적인 삶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납니다.
제 작품들도 이러한 과거의 이념을 현대에 맞게 재해석하고자 한 시도입니다. 물론 과거와 현재는 많이 달라졌고, 시대적인 배경도 변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현실에서 겪는 심리적 갈등을 자연을 통해 해소하고자 합니다. 현재를 살아가면서 느끼는 불만이나 갈망을 새로운 장소나 공간으로 이끌어내어, 그곳에서 행복과 평화를 찾으려는 욕망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에서 벗어나 새로운 공간을 창조하고, 그곳을 이상향으로 설정하는 발상은 과거와 변하지 않은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 작품에서는 이러한 맥락을 현대적인 시각으로 풀어내려고 했습니다.
과거부터 우리는 자연을 매우 중요한 존재로 여겨왔습니다. 자연은 단순히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꿈꾸는 이상향과 연결된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연을 통해 자신의 소망을 비는 행위를 많이 해왔고, 자연 속에서 이상향을 찾으려는 욕망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달은 많은 문화권에서 중요한 상징적 존재로 다뤄져 왔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추석이라는 명절에 사람들이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비는 전통이 있습니다. 이 달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사람들의 희망과 소망이 담긴 신성한 상징으로 여겨집니다. 달은 마치 사람들의 바람을 들어주는 존재처럼 인식되며, 사람들의 소망을 현실로 만들어줄 수 있는 공간으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이렇듯 달은 이상향을 대표하는 중요한 요소로,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달하는 역할을 합니다. 달을 바라보며 소원을 비는 행위는 사람들이 바라는 이상향을 떠올리고, 그곳에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달은 현실에서 벗어난 신비로운 세계로의 통로이자, 인간의 이상향을 표현하는 하나의 매개체로 작용합니다. 이러한 상징적 의미를 담아, 저는 제 작품에서 달을 포함한 다양한 자연물을 통해 저만의 이상향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저의 그림은 단순히 아름다운 자연을 그리는 것을 넘어서, 그 자연을 통해 사람들이 추구하는 이상향과 그리운 꿈을 찾아내고자 하는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자연 속에서 인간은 이상적인 공간을 상상하고, 그곳에서 안식과 평화를 찾고자 합니다. 저도 그와 같은 마음으로, 자연을 매개로 한 이상향을 표현함으로써 관람자들에게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갈망과 희망을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이처럼 자연과 인간, 그리고 이상향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깊은 의미를 지닌 존재로 작용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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