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우수갤러리 기획초대전

Lee Youngsil Solo Exhibition


靈鷲 빛 


일시 : 2025.11.26-12.08

장소 : 무우수갤러리 / 인사동길 19-2 와담빌딩 3-4F

시간 : 10:00 - 18:00 무료관람




 전시서문



이영실의 회화세계 : 옻칠의 숨결로 피워낸 영축의 빛



수행의 길, 예술의 여정


부산 해운대에서 통도사까지 매일같이 오가는 이영실 작가의 하루는 하나의 ‘수행의 여정’이다. 도시의 바다와 산사의 고요, 세속과 성스러움의 거리를 왕복하며 그는 그 길 위에서 그림을 그린다. 약사(藥師)로 출발했던 그의 삶은 인간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길로 향했다가, 이제는 예술이라는 또 다른 치유의 영역으로 확장되었다.


이번 개인 초대전 <영축>은 단순한 회화 전시가 아니라, 작가가 지난 세월을 통해 체득한 삶과 수행, 예술의 일치를 증명하는 장이다. 전시 제목인 ‘영축(靈鷲)’은 부처님이 법화경을 설법하던 인도 영축산(靈鷲山, Gṛdhrakūṭa)의 이름이자, 통도사가 자리한 산의 이름이기도 하다. 작가에게 영축은 단순한 지리적 장소가 아니라, 예술적 근원이며 마음의 고향이다.


그는 통도사 아래의 작업실에서, 매일 해운대에서 산사로 향하는 길을 오가며 그림을 그린다. 그 행위는 단순한 출퇴근이 아니라 일종의 ‘순례’이다. 스승인 조계종 종정 성파 큰스님의 가르침 아래에서 그는 ‘선예(禪藝)’의 철학을 배웠다. 붓을 드는 일은 수행의 한 과정이요, 옻칠을 입히는 일은 마음의 번뇌를 덮어내는 행위이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그의 작품들은 그 수행의 결과이자 기록이다.

 

이번 전시에는 두 개의 주제를 가진 전시가 펼쳐진다. ‘영축’을 주제로 한 불교적 회화 세계, 그리고 ‘책가도’를 중심으로 한 현대적 상징의 공간이다. 두 공간은 마치 ‘산문(山門)’을 넘어 마음의 길을 걷는 여정처럼 이어진다. ‘영축’이 깨달음의 공간이라면, ‘책가도’는 그 깨달음을 일상 속에 되새기는 공간이다.

 

 

옻칠민화의 미학과 선예의 정신


이영실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려면 먼저 ‘옻칠민화’라는 독자적 영역을 살펴야 한다. 옻칠은 우리 전통 공예의 정수이자, 수천 년 동안 한국인의 삶과 함께한 재료다. 옻나무에서 얻은 천연 수액은 스스로 응고하며 단단한 보호막을 만든다. 이 물성은 작가에게 깊은 상징으로 다가온다. 약사로서 인체의 회복을 도왔던 그는, 이제 옻칠을 통해 화면을 치유하고, 나아가 인간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옻칠 회화작업은 인내와 집중, 반복의 미학이다. 긴 시간에 걸쳐 재료를 준비하고, 한 겹의 칠을 입히고, 건조시키는 과정을 수십 차례 반복해야 비로소 하나의 깊은 색이 완성된다. 그 느린 시간 속에서 작가는 자신을 비우고, 자연의 호흡과 하나가 된다. 옻칠의 투명한 막은 단순히 색을 덮는 층이 아니라, 세속의 먼지를 덮어내고 본질을 드러내는 ‘수행의 막’이다.

 

이영실의 옻칠민화는 전통 민화의 기법을 바탕으로 하지만, 그 표현은 훨씬 더 현대적이다. 민화의 해학과 자유로움 위에 옻칠의 중층적 투명감이 더해지면서, 화면은 일종의 ‘빛의 깊이’를 갖는다. 옻칠이 반사하는 은은한 광택은 마치 불상의 금빛처럼 신성하고, 그 안에는 작가의 사유와 마음의 흔적이 함께 비친다.

 

민화는 오랜 세월 동안 서민들의 소망과 세계관을 담은 생활 그림이었다. 책가도, 화조도, 십장생도 등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복과 수명, 지혜와 조화의 상징이었다. 이영실 작가는 이 민화적 세계를 단순히 재현하지 않는다. 그는 민화의 ‘소망의 언어’를 현대인의 내면세계로 확장한다.

 

그의 책가도는 현대적이면서도 옻칠이 주는 깊이가 깊다. 화면 속에는 영축산과 통도사에서 만나는 꽃과 식물, 그리고 젊은 시절 약사로서의 기억이 상징처럼 배어 있다. 옻칠을 통해 표현된 붉은색과 청색의 대비, 투명하게 겹쳐지는 황금빛 광택은 전통 민화의 평면성을 넘어 공간적 깊이를 부여한다. 그것은 단순히 ‘기물이 있는 풍경’이 아니라, 사유와 명상의 장(場)이다.

 

이영실의 민화는 장식적 아름다움보다 ‘정신적 조형성’에 방점이 찍혀 있다. 전통의 상징이 현대인의 마음을 향한 언어로 다시 쓰이는 것이다. 책가도 속의 ‘책’은 학문적 앎보다는 ‘깨달음의 계단’을, ‘기물’은 소유의 욕망보다 ‘비움의 도구’를 상징한다. 작가의 붓끝에서 민화는 단순한 전통 회화가 아니라, 현대인의 내면을 비추는 ‘명상의 창’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 정신적 근원에는 스승 성파 큰스님의 영향이 자리한다. 성파 스님은 불교와 예술의 일치를 몸소 보여준 인물로, ‘예술은 곧 수행’이라는 선예(禪藝)의 철학을 펼쳐왔다. 그의 제자인 이영실은 이러한 가르침을 예술의 중심에 두고, 옻칠의 투명함과 절제된 색, 단정한 화면 구성을 통해 선의 정신을 시각화한다. 군더더기 없는 구도와 느린 호흡의 리듬은 불교 수행자의 호흡처럼 느껴진다.

 

그는 그림을 그리는 동안 욕심을 덜어내고, 스승이 말한 “예술은 수행자의 자취”라는 진리를 실천한다. 작품이 완성될수록 색은 짙어지지만, 그 짙음 속에는 오히려 더 깊은 고요가 깃든다. 그것은 평상심이 곧 도(平常心是道)라는 스승의 가르침을 예술로 구현한 결과이기도 하다.

 

 

영축의 빛 _ 이영실

 

이번 전시는 ‘영축’과 ‘책가도’, 두 세계로 구성되어 있다. ‘영축’ 연작은 불교적 상징과 통도사의 자연이 담겨 있다. 통도사 극락보전 벽면의 반야용선, 극락암 여여문 등의 불교적 형상들, 통도사와 서운암의 고요한 순간들이 소나무나 꽃의 형상으로 피어난다. 그녀에게 영축산은 외부의 풍경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깨달음이 자리한 상징적 공간이다.

 

이에 비해 ‘책가도’ 시리즈는 현실과 이상, 세속과 초월의 경계를 허문다. 조선의 선비들이 꿈꾸던 학문의 방은 이제 수행의 공간으로 확장된다. 작가의 책가도에는 삶의 기억과 수행의 흔적이 상징처럼 놓여 있고, 옻칠의 빛은 향연처럼 공간을 물들인다. ‘영축’이 깨달음의 순간이라면, ‘책가도’는 깨달음 이후의 삶, 곧 ‘살아 있는 수행’의 풍경이다.

 

이영실의 회화는 ‘삶과 예술의 일치’를 보여준다. 그는 옻칠의 느린 시간 속에서 삶을 숙성시키고, 민화의 상징 속에서 마음의 이야기를 꺼낸다. 약사로서의 치유, 불자로서의 수행, 그리고 화가로서의 탐구가 하나의 선으로 이어진다.

 

그의 작품을 마주한 관람자는 단순히 아름다운 색과 형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깃든 ‘시간’과 ‘마음’을 본다. 옻칠의 표면 아래 겹겹이 쌓인 색은 작가의 호흡이며, 붓질은 명상이다. <영축>은 단지 전시의 이름이 아니라, 작가가 오랜 세월 걸어온 내면의 산행의 이름이다.

 

이번 전시는 그 산행의 결과이자, 또 다른 시작이다. 옻칠의 깊은 빛이 어둠 속에서도 스스로를 밝혀내듯, 이영실의 회화는 고요하지만 강한 생명력을 품고 있다. 전통과 현대, 신앙과 예술, 물질과 정신의 경계가 허물어진 그 자리에서 우리는 ‘영축의 빛’을 만난다. 그것은 작가의 빛이자, 우리 모두의 내면에 깃든 깨달음의 빛이다.


광주시립미술관 하정웅미술관 관장

변길현






 작가노트





“영축”은 주로 영축산을 의미하는데, 불교에서는 중요한 수행처이자 깨달음과 해탈의 상징으로 인식된다. 이 영축산은 나의 작업장이 있는 곳이기도 하고 많은 영감을 주고 있다.

 

통도사가 있는 영축산 아래에서 작업한 지 10년이 넘었다.

집이 있는 부산에서 거의 매일 작업실로 출퇴근하느라 ‘딸의 아이 키우기’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필자의 3년 된 자동차는 주행거리가 16만 킬로미터를 돌파했다.

 

평소에 나는 영축산의 도움으로 통도사 앞마을에서 작업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살고 있다. 영축산은 양산시 하북면, 원동면과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남면, 상북면에 걸쳐 있고 높이는 1,081m이다. 몇 년 전 필자가 영축산 꼭대기에 올랐을 때는 지산마을을 지나 축서암 옆길로 오르는 길을 선택했었다. 비로암 방향으로 걷다가 중간쯤에서 산을 오르기 시작하는 코스이다. 며칠 전에는 서울에서 온 선배와 함께 영축산을 올랐는데, 이제 내게는 불가능한 일임을 온몸으로 느끼며 포기하고 비로암까지만 다녀왔다.

 

날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영축산이 안고 있는 통도사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다. 그래서 통도사 대웅전에는 부처님을 모시지 않고 금강계단을 쌓아 유리로 보이도록 해놓았다. 통도사란 이름은 영축산의 모습이 부처님이 설법하셨던 인도 영축산의 모습과 통하므로 통도라 했고, 또 승려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이 계단(戒壇)을 통과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통도이며, 모든 진리를 회통(會通)하여 일체중생을 제도한다는 뜻에서 통도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통도사는 신라시대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불법을 배우고 돌아와 선덕여왕의 명에 따라 창건하였다. 이때부터 통도사는 계율의 근본도량이 되었고, 신라의 승단을 체계화하는 중심지가 되었다.

 

나는 신라시대 우리들의 할머니는 무엇을 기도하기 위해 통도사에 왔을까 생각해 보았다.

가까운 시간 전, 나의 할머니, 어머니는 또 어땠을까.

 

1400여 년 동안 그 많은 기도들이 모여 있는 곳—통도사에서 필자는 오늘도 나의 기도가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나의 기도가 나의 할머니와 어머니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나이 들어서야 알게 되었고, 비로소 나의 작업은 그것에 주목하고 있다.

 

50년도 더 전에 필자의 외할머니는 ‘우리 영실이 좋아 한다’면서 포도 한 상자(그때는 나무상자였다)를 영천에서 대구 오는 시외버스를 타고, 집 근처까지 시내버스로 움직여, 버스에서 내려서는 머리에 이고 집까지 오셨다. 외가 집에서 영천 시외버스 정류장까지는 또 얼마나 멀었겠는가.

 

나는 나의 할머니가 내게 주신 사랑의 반의 반, 반의 반반반도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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