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우수갤러리 기획초대전


Sky Symphony 

하늘 교향곡


일시 : 2025.09.03-09.29

장소 : 무우수갤러리/인사동길 19-2 와담빌딩 3-4F

시간 : 10:00 - 18:00 무료관람




 

 작가노트




⚫ 작가노트 1

 

<Shamayim>                                                                                                                                             

Shamayim(솨마임) : שמים : 하늘


분주히, 아주 분주히 돌아가고 있는 이 땅보다도 더욱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것이 있다. 쉴 틈 없이, 정말 단 한숨도 돌릴 틈 없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보다도 더 쉼 없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 있다. 아주 고요하게, 그러나 아주 치밀하게 움직이고 있는 존재, 바로 ‘하늘(Shamayim)’이다.

맑은 날, 고요하고 평온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보면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는 하늘을 발견할 수 있다. 소리 없이 구름을 서서히 떠밀어 주기도 하고, 찬란한 노을의 색으로 물들이기도 하며, 바다를 거울삼아 눈 부신 빛을 선사한다. 그리고 하늘은 우리에게 다음 날을 선물해 주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변함없이 아침을 연다.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한 날에도 저 하늘은 우리 세상을 움직이기 위해 천천히, 그러나 힘 있게 스스로 움직이고 있는 중이다. 어쩌면 하늘은 이 땅의 세상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더 큰 힘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닐까.

거대한 이 세상을 움직이며 하루를 열어주는 광활한 하늘의 풍경 앞에 서서 우리를 위로해 주는 하늘을 두 눈에 담고, 구름의 향기(雲香)를 머금어 본다. 그리고 구름 사이로 떨어지는 하늘이 선사하는 빛을 마음 가득히 채운다. 찬란한 하늘의 색을 잠시 감추고, ‘우리만의 하늘색’으로 마음을 물들이며, 항상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우리를 위로해 주는 하늘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그래, 절대 우리만 힘든 것 아니야, 라고 위로해 보며.

 

※ ‘Shamayim(솨마임)’은 히브리어로 ‘하늘’이라는 뜻이다.

‘히브리어’는고대 이스라엘의 언어로 구약 성서의 대부분이 이 언어로 쓰였다.

고대에 유대인과 그리스도교도들은 히브리어가 ‘인류 언어의 기원’이라고 믿었고, 중세에도 이 언어는 ‘신성한 언어’로 간주되었다.










⚫ 작가노트 2

<하늘 풍경> 


하늘은 이 세상 어디에나 반드시 존재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당연한 하늘을 무심코 지나칠 때가 많다. 이렇듯 많은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하늘의 풍경’을 드로잉과 사진으로 기록하며, 그 시간의 감정을 화폭에 담는다. 하늘은 모든 사람들이 일상 안에서 바라보며 살아가기에 큰 가치를 두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보편성이 누구든지 하늘을 보며 자신만의 세계를 상상하고 생각을 풀어 놓을 수 있는 열린 해석의 장을 제공한다. 나는 끝을 알 수 없는 무한한 하늘과 시시각각 다른 표정을 보여주는 구름에 매료되어 삶과 감정을 구름의 형태에 담아 ‘하늘 풍경’을 풀어내고 있다.

 

풍경화에서 ‘하늘’은 가장 멀리, 뒤에 존재하여 배경으로만 표현되는 공간이다. 근경에 있는 자연물이나 소재들을 묘사 후에 원경에 하늘을 그려 넣는 방식의 작품은 고대 회화에서부터 현대 회화까지, 그리고 가깝게는 아이들의 그림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풍경에서도 ‘하늘’에 집중한다. 원경의 하늘이 있기에 우리가 바라볼 수 있는 자연 풍경이 존재하며 그 안에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하늘의 본질에 집중하며 하늘만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늘만을 그리던 작업에서 수평선과 지평선이 등장하며 ‘하늘을 통해 바라본 풍경 회화’를 작업하고 있다.

 

나는 작업을 하기 전에 항상 하늘의 기분을 살피며 시시각각 변화하는 하늘과 구름의 표정을 드로잉과 사진으로 담는 것이 일상이다. 그리고 수집한 그 자료들은 하늘이 주는 시각적 미(美)만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의 온도, 바람 등과 함께 나의 감정까지 오롯이 담아낸다. 즉 자연의 시각적, 촉각적 감각과 감정의 기억을 하늘의 풍경에 담아내는 것이다. 이러한 하늘의 풍경에는 당연히 하늘과 구름이 등장하지만, ‘하늘이 등장하지 않는 하늘의 풍경’도 표현한다.

이와 같은 ‘하늘이 등장하지 않는 하늘 풍경’의 배경은 이러하다. 작품에 하늘을 담아내면서 하늘의 공간을 두 분류로 나누어 하늘의 존재를 확장하게 되었다. 첫째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가시적인 하늘’과 둘째는 항상 그 자리에 있는 불변적 존재인 ‘하늘의 본질’이다. 나는 하늘의 표정과 분위기를 살피며 위로와 감동 등 긍정적인 감정의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하늘 풍경 회화에 대한 작업의 초반에는 대기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기상 현상들로 인해 나타나는 일차원적인 하늘의 모습과 표정에만 집중했었다. 그러나 ‘하늘 풍경’의 작업을 거듭할수록 매 순간마다 같지 않은 가변의 하늘을 통해 그 너머 하늘의 본질을 바라보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렇듯 하늘을 통해 받는 긍정적인 감정 영향의 궁극적인 원인은 항상 그 자리에 있는 ‘불변의 하늘’이다. 이에 나는 하늘의 존재를 확장시켜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가 정의 내린 ‘하늘의 공간’은 하늘의 존재를 하늘이라고 일컫는 지표를 둘러싸고 있는 대기권뿐만 아니라 구름이 떠 있을 수 있는 곳, 구름이 안개가 되어 내려앉은 곳, 즉 공기가 존재하는 곳인 ‘이 땅의 모든 세상’을 포함한다. 그에 따라 작품에서는 수평선과 지평선이 등장하게 되었다. 특히 물결에 비치는 빛인 ‘윤슬’을 표현하기 시작했고, 이는 햇빛과 바람이 만들어내는 ‘하늘의 빛’을 표현하기 위해 물결의 풍경이 등장한 것이기 때문에 작품 속에 하늘이 등장하지 않더라도 ‘하늘 풍경’의 범주라고 여긴다.

 

이러한 하늘의 본질을 추구하는 하늘 풍경 속 공간의 확장은 내면의 주관적 감성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구름과 하늘의 색이 나타나는 대기권의 하늘, 하늘의 본질, 그리고 이 땅의 세상까지 확장된 하늘의 공간은 나의 삶 주변에서 평안함으로 이어지고 ‘마음의 안식처’를 제공한다. 그리고 하늘을 바라보며 ‘마음의 안식처’로 여기고 위로와 감동의 긍정적 영향을 받는 궁극적인 이유는 ‘천국’이라는 것으로 하늘 공간의 확장이 마무리된다. 이러한 ‘하늘 풍경’에 대한 작품은 작품 속에서 하늘이 일궈낸 자연을 표현함으로써, 나의 마음에 정신적 여유를 제공해 주는 ‘마음속에 일궈낸 하늘 풍경’이다.

그리고 ‘마음의 안식처’인 하늘을 회화 작업으로 풀어냄으로써 하늘을 통해 받은 위로와 감동 등 개인적인 감정과 정서적인 영향들을 보편적으로 끌어내기를 바란다. 또한 각기 다른 자아를 가지고 있는 감상자들에게 긍정적 감정의 공유와 다양한 해석을 유도하고, 정신적 여유를 제공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가끔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항상 그 자리에서 우리를 위로해 주는 하늘을 인지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그리고 더 나아가 예술이, 그리고 그중에서도 회화 작품이 선사하는 위로와 치유의 역할을 기대하며, ‘하늘 풍경’의 작품 연구를 계속 확장해 나아갈 것이다.

 

 

 

 

 

 

 

 

 


 


⚫ 작가노트 3

<수묵으로 수놓은 하늘 풍경>


이 세상의 모든 색(자연의 색과 인공적인 모든 것에서 볼 수 있는 색)은 하늘 안에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보통의 ‘하늘색’이란 일반적으로 하늘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연 파랑색’을 떠올린다. 그러나 하늘은 시시각각 변하며 무수히 많은 색을 보여준다.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무지개를 떠올려 보면 된다. 보통은 일곱 빛깔 무지개로 인지하지만, 아니다. 무지개의 그 스펙트럼 안에는 단정 지을 수 없는 무수히 많은 색의 조합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러한 스펙트럼은 ‘노을’에도 존재하며, 계절에 따라, 또 날씨와 시간에 따라 변하는 하늘의 색도 그 스펙트럼 안에 있다. 그리고 우리가 일상에서 보는 모든 것들도 다 ‘하늘의 색’의 스펙트럼 범주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색을 머금고 있고, 만물의 색이라고 일컬어지는 ‘묵색’이야말로 하늘을 표현하기에 적합하다고 여겼다. 또한 한지에서 이루어지는 먹의 농담과 번짐은 하늘이 가지고 있는 변화무쌍한 날씨와 빛과 음영을 묘사하는데 보다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뭉게뭉게 피어나는 구름, 또는 새털처럼 퍼져 있는 구름 등, 만질 수는 없지만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구름의 촉각적 미감을 시각화하는데에 한지가 주는 촉감이 적합하다고 여긴다.

그리고 수묵의 ‘흑백’이 선사해주는 ‘상상의 여지’의 매력에 빠져본다. 흑백의 하늘을 관람하는 이들마다 각자 다른 개인만의 ‘하늘색’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같은 공간 안에서 같은 이미지를 보아도 개인이 가진 각자의 기억과 연결되어 감동과 행복, 또는 위로와 평안 등,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하늘의 찬란한 색을 잠시 감추고 수묵으로 흑백의 하늘을 수놓으며 상상의 여지를 남겨, 작품을 보는 이들의 마음에 ‘그들만의 하늘의 색’으로 가득 채워졌으면 한다.

 

나는 수묵 작업에서의 흰 부분은 다른 흰색 안료를 더하지 않고 한지 그대로 두는 것을 고집한다. 그래서 한지 고유의 투명한 미색인 여백으로 흰 부분을 표현한다. 하늘이 등장하지 않는 물결에 비치는 빛(윤슬)의 작품에서도 보다 더 영롱한 빛을 표현하기 위해 빛 부분을 여백으로 처리한다. 여기에는 ‘마스킹 액’을 사용한다. 마스킹 액을 아교포수를 진하게 한 장지 위에 사용하고 뜯어내는 방법을 이용해서 물결 위의 빛 부분을 한지 그대로 남아있게 표현하고 있다.

또한 더 멀리 있는 아득한 하늘을 표현하기 위해 2장의 한지를 이용해 흐릿한 하늘을 표현하기도 한다. 장지 위에 진하게 하늘만 그리고, 순지를 한 장 덮어 씌워서 얇은 한지(순지)를 투과해 비쳐 나오는 하늘 밑에 바다를 그려서 완성한다. 투과해서 보이는 하늘은 붓 터치가 보이지 않지만 구름의 모양이 나타나는 효과를 보인다. 이는 한지의 흰색이 한 겹 덮여있어 흰색 안료를 사용했을 때와는 다른 느낌의 특유의 맑지만 아득하고 흐린 느낌을 선사한다.

오로지 한지 그대로의 흰 빛이 영롱한 햇빛이 되고, 그 영롱한 빛을 위한 먹빛이 일렁이는 파도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파도가 빛을 더욱 밝힌다. 정신없이 흘러가는 이 세상에서 한 줄기 빛이 여기 있다고 속삭이듯이.

 

 

 

 

 

 

 

 

 

 

 


⚫ 작가노트 4

<아득한 찬란>


우두커니 서서 저 멀리 끝없는 하늘을 바라본다. 단 한순간도 같지 않은 하늘의 무수한 표정을 바라보다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아득한 ‘선’에 시선이 멈춘다. 그리곤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곳’의 경계 너머를 바라본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가시적인 하늘을 넘어서 끝없이 무한한 세계를 품고 있는 것이 하늘이다. 그 무한한 하늘 아래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한치 앞만 생각하며 유한한 하늘만을 바라보며 살아간다. 반드시 항상 그 자리에서 무수히 많은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하늘을 우리는 무심코 지나간다. 그러나 어디인지 가늠할 수 없는 ‘수평선 너머의 하늘’은 우리를 위해 변함없이 아침을 열어주며 ‘아직은 세상이 따뜻하다고, 찬란하다고’ 끊임없이 속삭이고 있다.

그리고 내가 인지한 ‘하늘’은 흔히 하늘이라고 일컫는 지표를 둘러싸고 있는 공간뿐만 아니라, 구름이 떠 있을 수 있는 곳, 또는 공기가 존재하는 곳, 즉 이 땅의 모든 세상을 포함한다. 작품에서 등장하는 ‘하늘과 바다가 맞닿는 곳’은 정작 수평선이 지워져 그 끝을 알 수 없어 아득한, 더 먼 하늘과 바다를 담아낸다. 오직 아득한 하늘이 주는 정서적 환기와 변화무쌍한 구름의 표정을 살피며, 햇살과 물살이 서로 나누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본다.

유한한 이 세상에서 경계 너머의 무한한 저 세상을 가만히 바라보며, 무한한 존재의 하늘이 우리에게 경험시켜주는 다양한 하늘의 표정과 하늘의 빛을 차분하게, 그러나 담대하게 담아낸다. 찬란하게 빛날 아득한 저 너머를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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