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우수갤러리 초대개인전
2300시간, 붓 끝에서 탄생한 세계
일시 : 2025.0409 - 0428
장소 : 무우수갤러리 / 인사동길 19-2 와담빌딩 4F
시간 : 10:00 - 18:00 / 무료전시
축 사
학교에서 강사와 제자로 만난 2022년 봄, 그렇게 1년간 성문 작가와의 그림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어떤 학생들보다도 작품에 대한 열의가 가득했던 친구가 졸업 작품을 거쳐 본인의 작품 앞에서 고민했던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며 어엿한 작가로서의 첫 발걸음을 내딛는 것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어느 미대생의 2300시간 졸업 작품’ 이라는 쇼츠가 유튜브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알고리즘을 거칠 때, 동국대학교 불교미술 전공 출신 동문으로서, 성문 작가가 거쳐온 수많은 교강사 선생님들 중 한 사람으로서, 또 불화를 그리는 사람으로서 제 일처럼 기뻐했던 것이 생각납니다.
불화는 시간으로 이야기한다고 생각합니다. 잘 보이지도 않는 옛 불화를 재해석하며 온전한 형태를 빚어내고 갖은 묘사를 위한 스케치 작업부터, 같은 선을 몇 번이나 긋고, 배접과 교반수 작업 등 작가의 개인적인 역량과 기술과 별개로 불화는 많은 시간들이 소요되는,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절대적인 과정들이 존재합니다. 그제서야 드디어 하나의 선, 하나의 색을 천천히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본인의 역량을 펼쳐보일 수 있습니다.
작가의 숨결을 불어넣은 시간들은 그 자체로 정답이 되어 관람객에게 작가의 진심이 닿는다고 믿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관람자는 작품이 가진 긴 호흡의 과정보다 완성품만을 찰나의 순간으로 접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김성문 작가는 그러한 불화가 가진 과정적 한계점을 돌파해 더 많은 일반인들이 불화를 깊이 들여다볼 수 있게 함으로써 호기심을 증폭시키며 불화가 더 대중적으로 다가설 수 있도록 해주었음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
김성문 작가는 높은 탐구성과 뛰어난 관찰력으로 원본 작품을 마주합니다. 고려불화에서 보이는 고도의 섬세함과 실제와 같은 묘사, 그리고 적당한 바림과 준법을 이용해 입체감이 느껴지게 하는 것은 작가의 작품 특징입니다.
이번 전시에 내보이는 대표작 <미륵하생경변상도>는 1350년에 그려진 일본 신노인(新王院) 소장본을 원본으로 하는데 원본에 비하여 고채도로 채색하여 각 인물과 장식요소들을 돋보이게 하고, 바닥 타일이나 물결의 투시를 원만하게 조정하여 보다 안정적으로 조성한 작품입니다. 부처님 대의에 은은한 음영을 비롯하여 그윽한 불보살의 상호, 고려불화의 가장 큰 특징인 화려한 금문 또한 치밀하게 묘사하여, 원본 고려불화에 충실하면서도 작가만의 미감을 덧입혀 재탄생시킨 수작입니다.
작가의 <사천왕 신수도> 시리즈는 작가의 무한한 창의력과 표현력을 엿볼 수 있는데 기존의 사천왕 도상에 한국 단청에서 나타나는 오행사상에 빗대어 해당하는 신수를 그려내었습니다. 보통의 도상에서는 각 사천왕이 들고 있는 지물 즉, 칼이나 비파, 여의, 탑 혹은 나아가 피부색을 통해 각 방위를 알아챌 수 있지만 작가는 남방증장천왕에 주작을, 동방지국천왕에 청룡을, 서방광목천왕에 백호를, 북방다문천왕에는 현무를 각 사천왕과 어우러지게 배치함으로써 한국의 오랜 전통사상을 접목시킨 작가만의 독자적인 불화로 완성하였습니다. 살아 움직일 것만 같은 역동적인 각 개체들의 표현과 화염과 물이 솟구치고 구름이 바람에 넘실대는 듯한 배경의 처리가 역시 돋보입니다.
본디 불화는 부처님의 말씀을 담은 경전의 내용을 더욱 더 이해하기 쉽게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또 사찰을 장엄하는 역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불화는 더 이상 종교화만으로 사찰의 장엄을 위한 것 뿐 아니라 뿌리깊은 전통미술의 상징이자 개개인 마음에 평안을 발원하는 매개체로써의 역할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모든 문화들이 빠르게 변화해가는 시기입니다. 긴 시간, 홀로 인내를 감내하며 현대인들에게 불화를 선보이는 열린 방법을 제시함과 동시에 전통 불교미술을 초석 삼아 이를 딛고 작가만의 독창적 불화 세계를 내보이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 많은 이들이 김성문 작가의 작품을 통해 불화에 대한 아름다움을 마주하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정영 동국대학교 강사
어린 시절부터 나에게 있어 그림은 일상의 일부이자 가장 자연스러운 표현 방식이다. 기억이 흐릿한 유년기부터 이미 그림을 그리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으며, 그 순간이 무엇보다도 즐겁고 행복했다. 즐거움과 행복함에서 출발한 창작이 점차 나만의 그림 세계가 확립되었게 해주었고, 다양한 일러스트와 창작물을 그려내며 특정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미술 전반을 폭넓게 탐구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과정 속에서 나만의 작품 세계가 굳혀졌고, 특히 극도로 섬세하고 완벽을 추구하는 성향을 지닌 자신이 불교미술과 깊이 맞닿아 있음을 발견했다. 불교미술은 흔히 접하기 어려운 분야이지만, 그 독창적인 색채와 정교한 표현 방식은 나의 조형적 감각과 이상을 실현하기에 최적의 매체였다. 작품을 통해 불교미술을 배우고 탐구하는 과정은 단순한 창작을 넘어 깊은 깨달음과 내면의 성찰을 가져다주었으며, 이는 나에게 가장 소중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다.
이에 따라, 인생에 단 한 번뿐인 졸업작품을 시작으로 나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 그리고 가장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이 곧 불교미술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연구와 창작을 통해 불교미술의 가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그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는 작가로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작가는 전통을 계승하며 불교미술을 보다 현대적이고 입체적으로 표현하여, 지금까지 접근성이 낮았던 불교미술에 대한 쉬운 이해와 접근을 이끄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어느 시대든 그 시대에 따른 그림과 화풍이 있는 법이다.
현대적인 기법과 표현을 통해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은 뒤 불교미술의 디테일과 설화를 전수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불교미술을 널리 알리고자 한다.
따라서 그림과 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듯한 그림이, 사람들의 불교미술에 대한 호기심과 어려움 그 벽의 경계를 허물어줌을 의미하기도 한다.
작가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