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우수갤러리 초대개인전
시간여행, 전호태 옻칠화 초대전
일시 : 2025.0409 - 0428
장소 : 무우수갤러리 / 인사동길 19-2 와담빌딩 3F
시간 : 10:00 - 18:00 / 무료전시
"옻칠화 전시를 열며"
2024년 3월 첫날, 통도사 서운암 옻칠방에 들어섰더니, 다짜고짜 자그맣고 검은 판과 민화 용머리 그림의 본을 주며 판박이 방식으로 본뜨기 하란다.
매주 하루 두 달 동안 가서 시키는 대로 했더니, 청룡 머리 옻칠화가 완성되었다. 조계종 종정 중봉 성파대종사가 주관하는 옻밭 아카데미 옻칠화 공부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5월부터는 내가 그리려던 첫 번째 그림 신라 금령총 출토 기마인물상 그리기에 들어갔다.
인연이란 게 있나 보다.
40년 고분벽화와 암각화 공부하면서 직접 그려보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림을 잘 들여다보면서 주변 상황도 고려한 ‘그림이 말하는 시대와 사람’을 글로 정리하는 게 직업이었으니까, 그림을 그릴 수 있을 정도로 꼼꼼하게 깊이 보고 생각하는 게 일과이긴 했다.
그러던 사람이 옻 물감으로 벽화와 암각화를 그리게 될 줄이야!
같은 울산대지만, 전공도 소속도 다른 디자인대 선배 교수 권유로 시작된 옻칠화의 주제가 ‘고분벽화’로 정해지면서- 물론 주제는 작가 본인이 정한 거지만- 은퇴 뒤, 제대로 매달려 볼 일거리가 주어졌다고 할까?
기마인물상 그리기를 마친 뒤, 고분벽화 가운데 애매한 상태로 남아 있는 장면을 하나씩 선택해 스케치 하고 그 위에 옻 물감을 입혀 나갔다.
중간, 중간 암각화와 같이 내게는 익숙한 조금은 다른 제재를 담은 그림도 그렸더니, 어느새 완성된 작품이 스무 점이 넘었다.
마침 무우수갤러리 대표의 제안도 있어 이 작품들 가운데 일부를 세상에 선보이기로 했다.
옻 물감은 그림 재료로는 좀 별난 것이다.
공예 작품 제작에 주로 사용되던 옻을 회화의 영역에 들여온 건 민화 그리는 작가들을 통해서였다.
내구성이 강한 옻 물감이 정물적인 느낌이 강한 민화 제재 표현에 적합해서였을 것이다.
실제 옻칠 공예의 칠화와 민화의 제재들은 서로 잘 통한다.
민화가 아닌 고분벽화를 옻 물감으로 그리기로 한 건 고분벽화가 작가에게 익숙한 주제여서였는데, 실제 작업에 들어가니 고분벽화와 옻 물감도 서로 궁합이 잘 들어맞는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세 겹 바탕칠을 하고 채색 역시 여러 차례 한 뒤, 거칠고 고운 사포로 두어 차례 채색층을 벗겨내니, 1500년이란 오랜 세월 동안 벗겨지고 지워져 반쯤 원형을 잃은 벽화 느낌이 너무 잘 살아나 작업한 작가 본인조차 놀랄 정도였다. 말 그대로 ‘어떻게 이럴 수가’였다.
암각화와 고분벽화는 세월의 손길을 받은 유적이다.
완성되었던 그때의 모습 그대로가 아니다.
돌이나 정, 붓을 대었던 그 자리가 비바람에 뭉그러지고, 흘러내리는 석회 녹은 물에 덮이고, 이끼가 더해졌다 말라 떨어지거나, 곰팡이가 피어나 번진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순간에도 이런 유적들이 받는 세월의 생채기는 계속되고 있다.
옻칠 작업으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까? 120여 년 전 벽화의 재발견이 시작되던 그 때, 암각화가 막 새겨지던 그 때의 풍경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옻 물감으로 벽화를 그리고, 옻 물감에 조개껍데기 가루를 섞거나, 계란 껍데기를 조각내어 하나씩 붙여 나가면서 벽화 흙벽이나 암각화가 새겨진 바위의 질감을 흉내 내 보면서 스스로에게 그런 질문을 던져 보았다.
전시된 이 그림들은 그런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만나는 이, 가는 곳에 좋은 소식이기를 바라는 희보 전호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