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우수갤러리 2024 

From Korea With Love_장생


단청장 최문정 개인전




일시 : 2024.10.16 - 10.22

장소 : 무우수갤러리 / 인사동길 19-2  와담빌딩 3,4F

시간 : 10:00 - 18:00 / 무료전시




건물을 나온 단청, 삶을 노래하다 

최문정 작가의 <장생>전에 부쳐



단청은 목조 전통건축의 부재를 오방색을 이용하여 꾸미는 그림을 말한다. 이러한 단청을 통해 건축은 마치 루미나리에 조명을 비춘 듯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다만 단청은 건축부재에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특성상 일정한 모양과 틀에 갇혀있을 수밖에 없다. 물론 그림도 사각형의 프레임이라는 제한된 영역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프레임 안에 작가가 펼쳐놓을수 있는 세상과 서까래나 추녀 같은 둥글고 휘어진 공간에 기하학적인 패턴으로 표현할 수있는 세상은 당연히 차이와 제약이 존재하는 것이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단청임에도 늘 건축 안에 묶여 있어야 할 운명인 것인가?

또 단청은 추상적인 기하학적 패턴으로만 그려져야 할까?

 단청작가들은 늘 단청의 해방을 꿈꾼다. 단청이 지닌 무한한 표현의 가능성을 알고 있기때문이다.

 최문정 작가도 그러한 고민을 했었고, 그 결과는 그야말로 파격, 즉 기존의 틀을깨는 것이 되었다. 

우선 단청이 그려지는 곳은 건축이고, 그 건축에 사용된 나무들은 모두죽은 나무들이다. 하지만 만약 단청으로 채색된 나무가 살아있다면 어떤모습일까?

이번 전시의 제목이기도 한 <장생> 시리즈는 그런 상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십장생을 구성하는 소나무, 학, 거북 등의 생명은 단청의 모티브로 스며든 소재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단청의 장식적인 목적 때문에 다소 도안화된 형태로 표현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장생> 에서는 그러한 모티브들이 마치 단청 속에서 생명을 얻은 듯 슬그머니 빠져나와 자유로이 노닌다. 하지만 자유롭더라도 거대한 나무 주변을 감싸고 있다.

 마치 서까래라는 죽은 나무 부재에 단청이 그려졌던 것처럼 여기서도 구성요소들이 나무 주변을 맴돌고 있다. 다만 그나무가 이제는 죽은 나무가 아니라 살아있는 나무라는 차이가 있다. 어쩌면 우리가 보지 않는 어두운 밤에는 단청에 그려진 많은 동물과 식물들, 그리고 물결이 이렇게 살아 움직이다가 새벽이 되면 다시금 고요한 틀 안에 숨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상상하게 된다.

 제목인 <장생>이 시사하는 바도 크다. 결국 단청은 그것이 칠해진 건축물이 영원하기를 염원하며 그리는 것이다. 이제 그 건축물의 영원함을 노래하던 단청이 건물을 벗어나 우리모두의 영원함을 기원하고 있다. 어쩌면 전통의 단청장들도 그러한 마음이었으리라. 건축의 영원함으로 그 안에 머무는 부처님이나 왕이나 중생들도 모두 영원하기를 염원했으리라. 

그러한 연장선상에서 <K-wave> 시리즈는 또다른 세계를 보여준다. 한류(韓流)라는 의미를 지닌 이들 작품들의 제목을 굳이 wave라고 표현한 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한류’의 ‘류’가 파동이고 

물결이라는 것을 간과하고 그저 ‘한국 스타일의 인기’ 정도로만 생각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류’의 ‘물흐를 유’는 곧 ‘유행’의 ‘유’이기도 하다. 무엇인가 퍼져나간다는 의미다. 그 퍼져나감을 파동으로, 물결로 비유한 것이다.

연못에 돌을 던지면 한 지점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것, 그것이 유행이다. 누군가 만들고, 누군가 보여주고, 누군가 보고 경험하면서 그것은 확산된다.

 최문정 작가의 <K-wave>는 그러한 유행의 속성을 함축적으로 담아냈다. 단청의 오방색 물결을 따라 어떤 존재들이 격렬한 몸짓으로 흐르고 있다.

 이 오방색의 물결은 K 드라마라면 스토리가 될 것이고, K 팝이라면 음악이 될 것이다. K 푸드라면 여러 식재료가 조화를 이루는 레시피라고 해도 좋다. 

우리의 문화인 K를 전통적인 오방색으로 암시하고, 그것이 이루는 다양한 조화를 파동으로 표현하면서 그 확산과 확장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작품을 통해 오히려 단청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된다는 점이다. 과연 단청은 한 건축물의 영원함만을 기원하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더 나아가 그 건물이 궁극적으로 존재하는 이유, 그 건축이 품고 있는 이야기가 영원하기를 바랄 것이다. 불교사찰이라면 부처님의 말씀이 영원히 퍼저나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을 것이다.

단청의 물결모양이나 휘와 같은 요소들이 결국은 ‘퍼져나감’, 즉 ‘유’를 의미하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 부처님의 말씀이 널리 퍼져나가기를 의도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최문정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B(Buddha)- wave를 표현한 셈이다. 최문정 작가는 그러한 부분을 보다 보편적인 K의 감성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K-wave>가 은은한 물결이라면 <Korea_the land of the Free>에서는 큰 파도가 된 것 같다. 마치 누군가의 머리 속에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앞서의 여러 모티브들을 종합적으로 

구성하여 시각화한 것처럼 다가온다. 이들 모티브들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만들어져 나가는 것을 마치 생각의 파도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다.

제목에서 ‘Free’를 강조한 것은 어쩌면 생각의 자유와 동시에 ‘단청의 틀에서 벗어난 단청’의 자유야말로 작가의 창작의 원천이었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흥미롭게도 <K-wave> 시리즈에서와 같은 표현은 실제로 사찰 단청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불단 장엄을 보면 그 안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는데,

별주부전에 나오는 거북과 토끼, 천진난만하게 호랑이와 놀고 있는 동자, 깨달음을 물어다 주는 파랑새 등은 모두 과거 사람들이 즐겨 사용한 스토리텔링의 소재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 사이로 넝쿨문이 엉켜있는 것을 보면 영락없는 <K-wave>의 기원이 이러한 K 단청에 있음을 알 수 있다. 

화려한 금박을 바탕으로 한 <생로병사> 시리즈는 우물반자 단청 모티브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과감한 금박 바탕으로 화려함을 더했다.

어떤 것은 평평한, 어떤 것은 소용돌이치는 듯한 바탕에 인간의 다양한 군상이 하나씩 들어가 있다. 마치 인생의 어느 순간은 화려하고, 어느 순간은 고요하고, 어느 순간은 평범하지만, 결국 삶은 모두 찬란한 금빛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우물반자는 마치 불교가 제시하는 다세계, 혹은 멀티 유니버스를 보여주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왔는데, 이 <생로병사> 시리즈는 우리 삶 자체가 곧 축소된 다세계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최문정 작가의 작품은 이처럼 단청의 다양한 가능성을 기존의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 새로운 공간에 펼쳐놓았지만, 

단청 작가로서의 본능적인 예술적 감각은 늘 창작의 중심이 되었다. 나아가 이러한 새로운 시도를 통해 전통 단청이 품고 있던 숨은 의미가 더 잘 이해되며, 

이를 바탕으로 단청이 틀에 박힌 장식을 단순히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드러내려고 하는 목적을 지닐 때 더 빛날 수 있음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


주 수 완 (우석대 예술경영전공 교수, 미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