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우수갤러리 기획초대전 XIV 


고구려, 신화의 시대

: 돌에 새긴 고분벽화


2023.12.13 - 12.28 무우수갤러리 3,4F




* 전각은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오래전부터 한 번 배워보고 싶었어요. 글자를 돌에 새긴다는 거, 내 이름을 한 번 새겨볼까? 했죠. 서예, 전각 다 한다는 학원에 갔더니, 전각하기 전에 전서 쓰기부터 배우라고 해서 서예를 시작했어요. 전각이란 게 서예의 전서체로 나무나 돌에 새기는 거거든요. 중국 도교나 민간에서는 전서를 변형해서 부적 문자도 만들고 그래요.

그런데 서예한지 몇 달 지나도 전각 가르쳐줄 것 같지는 않더라고요. 다시 전각하는 데를 찾아 바로 등록하고 배우기 시작했죠. 디자인 전각도 해보라고 해서 했더니, 정기적인 회원전 참가를 권유하더군요. 그러고 3년쯤 흘렀을까? 갑자기 개인전 해보지 않겠냐는, 사실은 해달라는 일종의 초대를 받았어요. 인사동 무우수갤러리 이연숙 대표와 문활람 작가로부터요. 2년쯤 뒤 은퇴기념전으로 생각하겠다고 했더니, 바로 올해 말이 빈다고 부탁 비슷하게 해서 그럼 그러자고 했어요.

 

* 왜 고구려 신화를 주제로 택하셨어요?

고분벽화에 그런 게 많고, 제 관심이 역사보다는 신화적 사유나 스토리텔링에 가 있어요. 고구려 역사도 시작은 신화잖아요? 해신 해모수, 큰 강 청하의 신 하백의 딸 유화. 이런 신화 주인공을 논문으로도 몇 편 썼어요. 이 기회에 신화를 돌에 옮기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었어요. 신화의 주인공들, 신선이며 기이한 새와 짐승, 고구려 벽화고분 무덤칸 천장고임에 주로 그려진 것들을 돌에 새기기로 한 거예요.

 

* 힘들지 않으셨어요? 보통 사람에겐 잘 보이지도 않는데, 벽화 말이에요.

사실 그게 문제이기도 했어요. 벽화로는 얼굴 세부가 보이지 않거나, 옷이나 악기의 디테일이 생략된 상태인 게 많거든요. 오히려 온전한 게 드물죠. 그렇다고 남거나 보이는 대로 새기면 전각 작품으로는 보기 흉하고, 또 보는 이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거든요. 뭐가 이래? 얼굴이 없잖아. 손가락도 없고! 한마디로 불친절하다고 여길 수도 있지. 고구려 고분벽화를 오해할 수도 있고요. 작품이 좋지 않다고요.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 말이죠. 이런저런 고민 끝에 눈이 없으면 눈을 넣고, 발이 보이지 않는 건 발을 넣는 식으로 세부적으로는 손보면서 새긴 게 적지 않습니다. 이렇게 새겨도 문제고, 저렇게 새기면 이상한, 참 모호해서 그때, 그때 판단하면서 새겨 넣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반은 창작, 반은 모사라고 할 수 있죠.

 

* 새기면서 어떤 생각이 들으셨어요? 개인적으로는 어떤 게 성과라고 느끼시나요?

고분벽화를 연구하면서 언젠가는 고구려 화가의 마음으로 한 번 그려보고 싶었어요. 벽화를 주문한 사람의 입장에서 이해하며 글을 쓰려 애쓰다보니까, 그리는 사람의 마음, 생각은 어땠을까 싶었거든요. 자기 그림에 대한 자부심이나 감각 같은 것도 있겠지만, 그리는 과정을 통해 그려진 것, 머릿속에 구상한 것 사이의 차이도 느꼈을 거고, 제 그림에서 감동도 받지 않았을까? 예를 들어 이런 그림과 같은 내세 삶을 누리고 싶다든가, 특정한 내세 공간의 주인공이 되어 살고 싶다든가. 신선이 되고 싶다든가, 그런 거 말이에요. 실제 그리면서 보고 느끼는 걸 나도 느끼고 싶다고 생각했거든요. 돌에 새기면서 세부적인 데서 고구려사람, 고구려 화가, 고구려 벽화고분의 주인공이 되는 그런 느낌도 좀 받았어요.

또, 아무래도 돌에 새기는 게 힘도 들고, 시간도 많이 걸리니까, 제대로 보지 못했던 고분벽화의 세부까지 상세히 알게 된 건 개인적인 성과라고 할 수 있어요. 다른 분들과 달리 수십 년 동안 벽화 보면서 글 쓴 까닭에 벽화를 세부적으로도 상당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작업을 통해 선의 미묘한 흐름, 색의 세부적인 변화까지 눈길을 줄 수 있어서 참 좋았어요. 앞으로 작업을 더 하게 된다면 그런 면도 고려해서 실제 벽화처럼 그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 그린다고요? 이제 돌에 새기는 건 그만하고 그리실 건가요? 고구려 화가처럼?

네. 전각도 조금씩 하겠지만, 그리는 작업도 해보려고 해요. 미술사에선 고구려 고분벽화를 한국의 민화, 산수화, 풍경화의 출발점으로 여겨요. 암각화도 있지만, 회화라는 미술의 세부 장르에선 고구려 고분벽화가 한국화의 시작이라는 시각이 있거든요. 저도 그런 생각에 대체적으로 동의하는 편인데, 한 번 그런 출발점에 서 보는 것도 좋겠다 싶어요. 채색이 더해진다는 점에서 돌에 새기는 것만큼 힘들겠지만, 도전해보려고 해요. 붓으로 그리면 돌에 새기는 것보다 세부적인 작업도 가능하니까요.

고분벽화는 보존이 힘들어 시간이 흘러가면서 세부적인 변화가 계속 이루어져요. 인물의 코끝이 뭉그러지고, 눈썹이 희미해지고, 입술 끝이 보이지 않게 되고, 손발의 선이나 짐승 몸의 무늬 같은 게 지워지기도 하거든요. 북한 화가나 중국 화가의 작품 가운데는 이런 세부적이고 미묘한 부분을 놓친 것도 있어요. 저는 오랜 시간 신경 써서 세부까지 봤기 때문인지, 이런 게 잘 보이는 편이라 그런 부분까지 살린 작품을 다시 그려보려고요. 물론 이 경우에도 결국은 모사와 창작 사이 어느 시점의 작품으로 재탄생하게 되는 거지요. 그런 일을 한 번 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 앞으로의 일도 말씀하셨는데, 다른 계획도 있으신가요? 서예도 하셨다면서요? 서예 쪽으로는 고구려, 혹은 고분벽화 관련 구상이나 계획이 있는지요? 이런 다양한 작업의 의의도 함께 말씀해주세요.

서예도 공부한지 4년쯤 되었는데, 여러 가지 서체를 골고루 익혔어요. 고구려, 발해와 관련한 역사기록이나 금석문을 여러 서체로 쓰면서 역사적 경험을 해볼까, 일종의 시간여행 같은 걸 경험해볼까 싶어요. 여러 가지 서체로 광개토왕비문은 몇 차례 써 보았어요. 고분벽화는 미술의 여러 장르로 다 작업해 보고 싶고, 부분적으로 복원, 창작도 시도해보려고 해요. 할 수 있는 한 말이에요.

연구자가 이런 데 손대느니, 연구를 더 심화시키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제가 하는 일종의 복원, 창작도 연구의 한 분야가 아닐까 싶기도 해요. 아마 제 작업의 성과물은 한국 미술의 여러 분야 창작자들에게도 자극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고, K-콘텐츠를 풍부하게 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사실 고구려 문화의 여러 산물은 K-콘텐츠, 한류의 출발점이기도 하니까요.

 

*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요, 도록이 좀 특이한데요. 도록이기보다는 단행본 같은 느낌이 들어요. 이 책의 형식을 사진시에세이 스타일로 만드신 건 어떤 의도가 있어서인가요? 좀 특이하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보통 전시도록은 이렇지 않아서요. 특히 갤러리 전시에서는.

전 늘 여러 가지 실험을 해요. 고분벽화 연구도, 암각화 연구도 실험성 짙은 연구로 시작한 거예요. 이번 것은 소설, 에세이, 연구, 어린이책 출간과 전시 등을 병행한 경험을 전시도록에 적용한 경우죠. 작품 사진에 시를 넣고, 간단한 에세이 스타일의 글을 덧붙여 전시에 오신 분들이 좀 편하게 고구려 신화의 주인공들과 감성적으로 만나게 하는 게 목표였어요. 이미 올해 초 이번 전시를 위한 교양서를 펴냈는데, 그것만으로는 도록 특유의 손쉬운 안내가 어렵지 않겠는가 생각했어요. 제가 요즘 시도, 에세이도 자주 써서 지인들과 공유하는데, 반응이 좋아요. 물론, 지인들과의 교류라서 객관성은 좀 부족하지만 말이에요. 어떠세요? 이런 전시도록도 펴낼 만 하지 않나요? 갤러리 전시도록 형식도 다양해지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 들어 변화를 시도해 본 거예요. 약간은 실험적 의도도 들어간 도록이에요. (전호태)

 

* 전시내용: 전각석(12X12cm, 녹석) 작품 40개, 탁본 액자( 11개: 4점 1편, 9개, 2점 1편 2개, 신: 자주색, 신선: 녹색, 기이한 새와 짐승들: 붉은색으로 탁본), 광개토왕비문 서예 족자 2점

작품1~8, 신(달신, 해신, 농사의 신, 불의 신, 쇠부리 신, 숫돌의 신, 수레바퀴의 신, 전쟁의 신)

작품9~22, 신선(거문고 타는 선인, 비파 타는 선인, 뿔나팔 부는 선인1, 뿔나팔 부는 선인2, 학을 타고 나는 선인, 하늘 기운 타고 나는 선인, 당을 든 선인, 번을 든 옥녀, 선계로 가는 선인, 천왕, 학을 탄 선인1, 학을 탄 선인2, 요고 연주하는 선인, 단약 사발을 든 선인)

작품23~40, 기이한 새와 짐승들(소머리 새, 짐승머리 새, 성성이, 토끼머리 새, 사람머리 짐승, 지축, 부귀, 비어, 천마, 천록, 만세, 천추1, 천추2, 천추3, 기린1, 기린2, 기린3, 기린4)

작품41. 광개토왕비문 1면 서두: 시조 주몽의 출생, 예서체 및 예서 금석문체 서예 족자.

 


 전호태는 한국미술사의 출발점인 암각화와 고분벽화가 독립적인 연구 장르로 자리 매김 되도록 기초 자료를 정리하고, 연구 시각과 방법을 정립한 연구자다. 한국 암각화의 정밀 실측 보고서를 발간하고, 고구려 고분벽화를 중심으로 삼국시대 벽화 현황을 정리하여 관련 연구의 기초 자료로 제공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낸 자료와 연구 성과는 국내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잘 알려져 미국과 유럽, 일본과 중국에서 교재와 연구 자료로 쓰인다. 그의 첫 번째 연구서 ‘고구려 고분벽화 연구’는 2001년 41회 백상출판문화상 인문분야 저작상 수상작이고, 2004년 한국의 책 100권 중 한 권으로 선정되어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 독립 부스로 전시된 작품이기도 하다. 그는 2010년 한국연구재단이 선정한 인문분야 최초의 우수연구자(석학)로도 잘 알려져 있다.

 전호태는 유적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고 분석한 다음 종합한다. 그림을 그리고 고고학 유적 발굴을 한 경험이 동영상 수준으로 고분벽화를 재구성하고, 무덤주인이 되어 무덤 안에, 구체적으로는 고분벽화 속으로 들어가 사는 듯 느낄 수 있게 된 것 아닐까 싶다. 그림으로 붙박인 상태의 사람과 짐승, 기물이 실제 살아있는 듯이, 사용되는 상태로 바꾸고, 고분벽화를 살아 숨 쉬는 생활공간으로 만들며, 그 안의 사람이나 짐승과 대화하거나 교감할 수 있는 특이한 인물이 전호태다.

 전호태는 문학적 글쓰기를 한다는 점에서 극히 건조한 글쓰기에 익숙한 역사학계의 다른 연구자들과 다르다. 전호태가 여러 다른 장르의 글쓰기를 넘나들 수 있는 것도 특유의 감성적이고 상상력이 가미된 글쓰기 능력 덕일 것이다. 실제 전호태는 소설과 시, 에세이와 논문 사이로 줄타기 하듯 글을 쓰기도 한다. 경계 위에 서기를 좋아하는, 주류도 아니고 비주류도 아닌, 독립적이고 개성적인 자신만의 글쓰기에 집중하는 그의 스타일이 역사학계의 보편적인 글쓰기에서 그가 멀어지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전호태는 거의 쉼 없이 글쓰기 훈련을 하면서 자신이 어디에 와 있는지 확인해 보는 사람이다. 그가 다양한 방식의 글쓰기를 시도하면서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평범한 시민부터 전문가까지 글로 만나는 것도 이런 과정이자 결과다. 실제 그의 처음 책은 유치원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 ‘고구려 나들이’고, 두 번째 책이 청소년과 시민을 위한 ‘고분벽화로 본 고구려 이야기’다. 그가 본격적으로 쓴 어린이 책 2권( 고구려 사람들은 왜 벽화를 그렸나요, 신라를 왜 황금의 나라라고 하나요)가 딸과 한 반 친구들을 위한 초등학교 1학년과 2학년 어린이 날 선물인 걸, 아는 사람은 안다. 그는 전문적인 내용을 쉽게 풀어 쓴 답사기나 소설을 여러 권 낸 별난 연구자이기도 하다.

전호태는 연구자이자 작가, 전시감독, 예술가이다. 그가 문학적 글쓰기에서 보인 소양이 시로, 에세이로 옮겨 가고, 초기의 논문에서 선보인 선 그림들, 비록 트레이싱 펜으로 일일이 옮긴 그림이지만, 가늘고 두꺼운 선을 적절하게 나누어 사용하는 그의 능력이 서예와 전각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했다. 정교하게 설계된 그의 글은 전시감독이라는 종합 예술 지휘자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

 전호태는 2006년부터 고구려, 혹은 고구려 고분벽화를 주제로 하는 전시를 기획, 감독하였다. 연합뉴스와 서울역사박물관이 공동 주최한 고구려 고분벽화 특별전을 시작으로 국립중앙박물관과 국제교류재단이 주관하는 고구려전을 독일 베를린 동아시아미술관에서, 동북아역사재단 주관 고구려 고분벽화전을 미국 LA한국문화원, 일본 벳부대학에서 개최하였다. 2009년부터는 일련의 순회전을 기획하여 동북아역사재단 및 외교통상부와 함께 투르크벨트 특별전이라는 큰 틀 안에서 몽골, 키르키즈스탄, 카자흐스탄, 터키로 이어지는 고구려전을 기획, 감독하면서 중국이 주장하는 고구려사는 중국사라는 주장과 개념을 무력화시키는 작업에 힘을 기울이기도 했다. 2012년에는 유네스코의 초청으로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고구려 고분벽화전 전시를 기획, 감독하면서 북한과 유네스코가 협력한 수산리벽화분 벽화 복원 10년의 성과를 국제적으로 알리는 데 기여하였다. 그는 이런 전시에서 늘 동영상과 유물, 패널이 입체적으로 어우러지게 배치해 보는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가 감독한 입체적인 전시, 멈춤과 움직임이 함께 하는 요즘 유행하는 고정된 전시물과 어우러진 실감동영상 전시의 시발점이 되었다.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와 같은 대학 대학원을 마쳤다. 문학박사.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 울산대학교 박물관장 및 대학기록관장, 미국 U.C.버클리대학교 및 하버드대학교 방문교수, 문화재청 문화재 감정위원과 전문위원, 한국암각화학회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교수 겸 반구대암각화유적보존연구소장으로 있다. 한국 고대문화사를 전공하였으며, 고구려 고분벽화 및 중국 고대미술에 관한 글을 다수 발표하였다. 고구려고분벽화를 주제로 한 특별전을 국내외 미술관 및 박물관에서 여러 차례 기획, 감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