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우수갤러리 기획초대전 Ⅺ 


취향의 카르텔



2023.10.25-11.19  무우수갤러리 3,4F











취향의 카르텔, 계급의 카르텔, 문화의 카르텔.



일반적으로 ‘카르텔’은 경제 분야에서 쓰이는 용어로 우리말로 “담합”이라 번역되며, 기득권 세력의 공동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하나의 ‘연합’을 의미한다. 한국 미술계에도 보이지 않는 카르텔이 존재했다. 과거, 특히 1970년대~1980년대 미술에서는 소위 “단색화”라 불리는 형식이 대학의 학연을 바탕으로 화단에 공고하게 존재했던 일종의 카르텔을 상징하기도 했다. 이는 특히 교육계와 공모전 등을 포함한 미술계의 제도권에서 두드러졌으며, 일종의 "사단"을 형성하며 헤게모니를 지켰다.

반면에 1980년대는 '민주화'라는 시대정신 하에 민중미술의 양식이 이에 대항한다. 특히 시위 현장에서 걸개그림이 적극적으로 활용되면서, 미술은 정치적 투쟁의 주요도구가 되기도 했다. 80년대 말에서 90년대에 들어오면서 동서독 통일, 소련 해체, 동구 사회주의 몰락으로 한국의 진보세력은 서구의 포스트 모더니즘에서 활로를 찾으려 했고 이에 따라 구조주의, 후기 구조주의를 기본 프레임으로 한 담론이 미술계를 풍미했다.

정치적 지형의 변화에 따라 미술과 정치를 동일시했던 활동가들은 미술 무대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고, 정규 미술대학 교육을 받은 초기 민중미술 작가들과 포스트 모더니즘의 세례를 받은 후속세대들이 이러한 담론의 틀 안에 미술계의 또 다른 카르텔을 형성한다.

한국 사회가 산업화, 민주화와 더불어 어느 정도의 물질적 풍요를 갖추고, 사회 제도적 측면에서 선진화가 이루어지면서 이어 탈이념적 후속세대가 등장한다. 한국의 팝아트는 이러한 과정에서 등장한다. 1994년 문민정부 탄생을 기점으로 불게 된 ‘세계화’의 열풍과 더불어 보편화된 서구 유학의 결과로 한국의 미술은 당대 서구 주류 미술과 개념과 양식을 공유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21세기에 들어서는 한국이 선진국의 궤도에 진입하면서 어떠한 이념이나 개념보다도 미술시장이 미술의 향배를 결정하는 경향이 더 강해진다. 이 과정에서 IT 기업이나 K-pop, 영화 등을 포함한 연예산업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만큼 융성하면서, 젊은 층의 부의 축적이 늘어가고 이들의 기호와 취향이 미술시장에 반영된다. 특히 SNS를 기반으로 한 소통 플랫폼의 변화로 특정 연예인이나 유명인사, 인플루언서들의 취향이 대중에 직접 노출되면서 이들이 선택한 미술품이 대중의 관심사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미술시장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이제 거대 자본과 갤러리의 ‘마케팅’이 작가와 작품 프로모션에 있어서 전과는 다른 차원의 결정력을 가지게 되고, 이들의 이해관계가 또 다른 카르텔로 등장한다.

 


이번 갤러리 무우수에서 소개되는 5인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들 그 양식적 측면에서 주로 팝(pop)적 속성이 강하면서도 일부는 전통 기법, 색상과 소재를 택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아울러 이들 작가는 각각 자신의 방식대로 기존 카르텔에 대응하는 방식을 제시한다.

박종희 작가는 그가 어렸을 적부터 친숙했고 좋아했던 만화영화 속 로봇 캐릭터를 전통적 단청무늬를 배경으로 그려낸다. 마징가, 그레이트 마징가, 건담, 그리고 태권브이라는 소재는 과거 남자 어린이들의 가장 좋아했던 만화 주인공들이다. 그런데, 그는 그토록 좋아했던 로봇 캐릭터들이 예외 없이 일본 만화 주인공이라는 사실, 그리고 자랑스러운 “무적의 우리 친구 태권브이”가 일본 만화 캐릭터를 표절한 것이라는 일각의 주장을 접하고는 충격을 받는다. 과거 불행했던 역사에서 유래한 대중의 강력한 반일정서 카르텔은 그가 즐기며 자랐던 만화의 캐릭터마저 부정하게 한다. 따라서 그는 작품 속에 한국의 전통 단청 문양 속에 일본 로봇 캐릭터를 위장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다.

한국의 본격적인 근대화가 일본 제국주의의 강제 병합과 동시에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작가가 겪은 것과 같은 곤혹스러운 딜레마를 준다. 현대 한국의 법률, 행정, 교육, 의학 등의 학술 및 전문 용어의 상당 부분은 식민지 시기에 도입된 일본식 한자어다. 서양에서 시작된 ‘근대’의 보편적 제도가 이 시기에 비록 식민지 통치를 위해 선택적, 제한적으로 행해졌지만, 한반도에서 실행되었다는 것 또한 역사적 사실이다. 게다가 대한민국 정부 설립 이후에도 6,70년대 고도성장기에 자동차, 조선, 철강 등의 중화학 공업 발전 이면에 일본 대기업의 기술 및 자본의 협력이 있었다. 박종희의 가볍고 팝적인 작품 속에는 이러한 일본에 대한 복잡한, 역설적이고 양가적(ambivalent)인 사실과 정서가 함축되어 있다.

 

홍작가는 대중에게 친숙한 심슨이나 짱구 같은 만화 캐릭터, 그리고 전통적 민화와 불화의 디지털 버전을 제시한다. 전통 민화를 연상시키는 꽃, 동물 등의 소재를 활용하여 복을 기원하는 길상화(吉祥畵)를 그리기도 하고, 만화 캐릭터를 활용하여 불화를 패러디하곤 한다.

그가 구사하는 가볍고 위트 있는 팝아트의 어법은 진지하긴 하나 때로는 지나치게 전통의 틀에 갇혀 있는 불교미술에 21세기 자본주의 버전을 업데이트해 준다. 온갖 명품에 주얼리를 착용하고 “스웩”을 보여주는 심슨 불상에서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선진국 한국의 또 다른 모습을 읽을 수 있다. 본디 불교의 교리는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를 깨닫고 열반적정(涅槃寂靜)을 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본인과 가족의 세속적 성공을 기원하는 “기복적 요소가 사람들이 종교를 통해 가장 얻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질문을 제시하는 듯하다. 게다가 현실종교에 비판적인 이들은 “종교가 비즈니스화” 되었음을 지적한다. 그들에게 이러한 도상은 기존 종교와 물신숭배에 대한 통렬한 비판으로 읽힐 수 있다.

그는 디지털 매체를 사용함에 있어 기존 미술계의 우호적이지 않은 시선과 평가를 느끼며 일종의 카르텔을 느꼈다고 한다. 그러나, 현대 미술에서 뒤샹의 레디메이드, 앤디 워홀의 만화 캐릭터와 <브릴로 박스>,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그리고 제프 쿤스의 작품을 알고 있는 이들은 기존의 미술의 개념에서 벗어나 미술 자체를 새롭게 정의하는 것이 현대 미술의 한 경향임을 이해한다. 미국의 팝아트 뿐만 아니라 일본의 무라카미 다카시와 나라 요시토모 등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서브컬처 문화는 현대 미술에서 이미 확립된 경향으로 받아들여지는 이때, 주제적 측면이나 매체적 관점에서 디지털 미술을 평가절하하는 관점은 매우 시대착오적이다. 반면에 기성세대에게는 이러한 경향이 그들에게는 접근하기 힘든 젊은 작가들과 그 애호가들이 새로이 형성하는 대중성의 카르텔처럼 보일 수 있다.

 

심재담 작가는 전통 불교미술을 전공한 작가로서 최근 그가 기르던 고양이가 세상을 떠난 후 느낀 상실감과 고양이가 더 좋은 곳으로 가길 바라는 마음을 불화의 형식으로 표현한다. 특정한 종교적 목적을 가진 회화는 그 형식에 있어서 지켜야 하는 규범이 있기에 작가는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주제를 이러한 형식으로 작품화하는데 일종의 부담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19세기 쿠르베가 기독교 성서 속 한 장면이나 역사적 위인이 들어갈 화면에 돌 깨는 노인과 노동하는 소년을 그려 넣거나, 마네가 풀밭 위에 여신 대신 일상의 한 나부를 넣은 일은 대표적 도상파괴(iconoclastic) 행위로 미술사에서 흔히 언급되는 사례다.

 

그가 천도제를 지내는 마음으로 길렀던 고양이와 강아지를 극락으로 가는 배에 태워 보내는 장면을 그리는 것은 일견 불화의 정해진 어법에 어긋나는, 혹은 종교의 카르텔에 도전하는 것처럼 보이는 불경스러운 발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현대 미술의 틀 안에서는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며, 최근 사회의 주요 이슈 중의 하나인 동물권을 환기한다는 점에서 현 세태를 잘 반영한다 할 수 있다.

 

김세연 작가는 6살부터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교육을 받은 작가로서 그의 작품에는 그래피티나 일러스트레이션, 만화와 같은 요소가 보인다. 작품들 사이에 일견 형식상의 일관성이 덜해 보이는 것은 작가가 작업한 기간이 각각 다름에 기인한다.

그녀의 그림은 파티의 장면이 보여주는 것처럼 밝고, 명랑한 색깔과 분위기 속에 다른 한편으로는 ‘공허함’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미국에서 소수인종의 범주에 속하는 작가가 주류 백인사회가 가지는 일종의 카르텔의 밖에서 부지불식간에 느낄 수 있는 감정으로, 문화적으로 한국과 미국의 사이 그 어디엔가 존재하는 자신의 정체성의 문제와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짐에서 마스크를 끼고 운동하는 사람들을 그린 작품은 모두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없는 상태로 각자 자기 운동에 몰두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는 팬더믹 시기 일상의 모습을 풍자한 것일 뿐만 아니라, 현재의 ‘각자도생’의 시대를 상징하는 것 같다.

 

끝으로 이지훈 작가는 사진 이미지를 레퍼런스로 한 사실적 이미지를 조합한 풍경화를 그린다. 그는 달을 배경으로 도시와 다리 풍경을 그리고, 그 위로 날아가는 비행기 를 그려 넣는다. 그는 이러한 풍경에 인간과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를 그려 수평적 소통의 통로를 만들고자 했으며, 비행기는 마치 사람마다 가진 꿈을 상징하는 파랑새와 같다고 비교한다. 또한, 달 모양의 변화를 통해 시간성을 주려 했으며, 달은 마치 작가 자신처럼 변화하는 도시를 응시하는 듯 떠 있다고 설명한다.

단소 진지하고 무거운 개념 혹은 거창한 이념보다 작가는 도시의 풍경에 대한 소박한 개인의 감상을 친숙한 이미지로 표현한다. 이러한 접근법은 관람자의 접근을 편안하게 하며 미술은 어떠해야 한다고 규정하는 듯한 미술계의 보이지 않는 카르텔에 대하여 하나의 대안을 제시하는 듯하다.

 

 


“카르텔”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조명한 다섯 명의 젊은 작가들의 밝고 생기 넘치는 팝 아트와 한국의 전통에 바탕을 둔 접근법을 통해 이들 특유의 위트와 유머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팝아트가 가진 대중사회의 소비적 취향의 반영이라는 일반적이고 피상적인 평가를 넘어 한일간의 문화적 딜레마, 현대인의 물신숭배적 종교관에 대한 패러디, 전통에 바탕을 두면서도 맹목적인 인습에서 벗어나려는 다양한 새로운 시도와 동물권의 문제, 그리고 글로벌한 환경에서 개인이 갖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같은 요즘 젊은이들이 가지는 보편적 문제의식을 보여준다.

다섯 작가의 흥미로운 도전은 분명 한국 현대 미술 속에 논의되는 전통의 현대적 해석이라는 화두에 기존 단색화나 민중미술과는 다른 다양한 주제와 양식적 스펙트럼을 제공한다. 이는 분명 <카르텔>이라는 전시주제와는 달리 역설적으로 동시대에 세계와 같이 호흡하는 21세기 현대 한국 문화의 ‘다양성’과 ‘포용성’을 드러내는 한 징후일 것이다.



원제리(미술이론/회화, 미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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