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용 개인전
온고지신
溫故知新
2023.6.29-7.9 무우수갤러리 3F
격려사
유정염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찬연한 전통 불교 문화의 계승과 보존에 치열한 열정과 신명을 가지고 매만져 온 김선용 불모의 전시회 개최를 진심으로 축하 드리며, 격려의 마음을 전합니다.
선조들의 지혜로운 미감과 삶의 철학이 녹아있는 전통 불교미술이 수천 년이 흐른 오늘날에도 깊은 울림으로 느껴지는 멋과 감동에 옷깃을 여미게 됩니다. 이는 불모의 끝없는 노력과 깊은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전통 불교 미술에 담긴 미감과 정신을 후대에도 영원히 전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의 것에 담긴 정신과 아름다움이 날이 갈수록 소중하게 생각되는 오늘, 이를 온전하게 계승하고 발전시켜 자신의 독창적인 미감으로 펼쳐낸
김선용 불모의 작품 전은 우리의 숨결로 존재하는 그 무엇으로도 견줄 수 없는 소중한 예술혼입니다.
이번 전시회를 통하여 전통과 현대를 관통하고, 유구한 역사와 미래의 비전을 잇는 튼튼한 다리를 놓은 사실에 전통문화 예술인의 한 사람으로서 다시 한번 깊은 격려의 마음을 전합니다. 많은 분의 관심과 사랑 속에 김선용 불모의 소중한 작품이 더욱더 널리 알려지고 야단법석의 바탕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오래돼서 새로운 김선용 작가의 벽화작업들
주수완
우석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예술경영전공
불교회화의 역사에서 보면 법당을 장엄하는 그림은 우선 벽체에 직접 그림을 그리는 벽화가 먼저 발달했다. 그러다 우리나라에서만 유독 불단 위에 걸리는 가장 중요한 그림인 후불탱화만큼은 비단 등의 바탕에 그려 걸고내릴 수 있도록 변화했다. 봉정사 대웅전이나 무위사 극락전의 후불벽화는 이러한 비단바탕 그림이 유행하기 전부터 사용되어 온 오래된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이나 일본은 사실상 후불탱화의 개념이 없기 때문에 비단에 그린 그림은 개인적인 용도로 집안의 기도처에 걸거나 혹은 사찰의 측벽 등에 걸어놓고 개인 기도실 정도의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벽화가 법당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후불탱화에 공력을 집중하고, 그 주변의 벽화에 대해서는 다소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후불탱화의 수준은 매우 높아졌지만, 법당 벽에 그려진 벽화는 기량이 다소 떨어지거나 혹은 현대적인 기법과 안료로 그려지는 경우도 많다. 전통건축의 온전한 품격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불화, 단청 뿐 아니라 이 벽화의 수준도 끌어올려야 한다.
김선용 작가는 다양한 이력을 지녔다. 서양화를 전공하고는 중국으로 건너가 벽화 전공자가 되었으며, 다시 한국에 돌아와 불화를 전공했다. 서양과 동양을 넘나들고, 재료의 경계도 뛰어넘었다. 그러한 작가의 이력이 그림에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다. 마치 벽화를 보는 듯한 작품들은 그 소재도 한국과 중국의 여러 불교벽화들에서 가져왔다. 마치 오래된 벽화들을 그대로 떼어다 놓은 것처럼 오래된 시간의 흔적이 느껴진다.
그중에 <연결> 시리즈는 마치 그 위를 덮고 있는 것을 와이퍼로 닦아낸 것처럼 거둬내니 그 아래에 벽화가 드러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원래 덮고 있던 그림은 디지털 글자 같기도 하고, 혈관이나 뉴런 신경망 같기도 하고, 혹은 지도나 지형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마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나아가 그 세상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번뇌와 고민처럼 이리저리 뒤얽힌 모습이다. 그것을 드러내니 아주 오래전부터 부처였던 우리의 자아가 드러나는 듯하다. 이 작품은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고, 속세와 정토가 연결되어 있음을 말해준다.
<반전벽화> 시리즈는 벽체 위에 투명한 캔버스가 있고 그 위에 그림이 그려진 듯한 독특한 기법을 보여준다. 벽화제작기법 중 하나인 프레스코는 석회가 마르기 전에 채색을 하여 안료가 석회 안에 스며들게 한 다음 석회가 굳으면서 안료가 석회 안에 고착되도록 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반전벽화> 시리즈에서는 이렇게 스며들었던 그림들이 다시 석회 표면으로 떠오르는 듯한 인상을 준다. 스며들기의 역이라고 할까. 그 독특한 기법도 인상적이지만, 전통벽화기법을 다시금 현대적으로 끌어올려 재해석하고자 하는 작가의 열정 또한 반영되어 있다. 이런 독특한 분위기로 인해 마치 벽화 속 인물들이 단지 그림이 아니라 생명을 얻어 벽을 뚫고 걸어나올 것만 같다. 작가는 아마도 전통이 이렇게 새로운 생명을 얻고 다양하게 활용되기를 바라며 이런 그림을 그렸는지도 모르겠다.
<기억과 흔적>은 추상적인 배경과 그 안에 마치 사진 한 장처럼 놓인 벽화가 신비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기억과 흔적은 둘 다 어떤 사건에 수반되는 것이다. 주로 기억은 정신적인, 흔적은 물질적인 것으로 남겨진다. 작품을 통해 보자면 무질서한 바탕은 어쩌면 액자 속의 구체적 형상을 현미경으로 자세히 들여다 본 모습일지도 모른다. 사진처럼 멀리서 보면 쉽게 형상을 알아볼 수 있지만, 우리가 자세히 알려고 가까이 가면 갈수록 그 형상은 모습을 잃고 무질서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기억은 흔적에 의미를 담으려고 하고, 흔적은 기억을 상기시키지만, 그 안에서 너무 고민하거나 후회하지 말고, 멀리서 보라고, 어서 표면으로 떠오르라고 우리에게 조언하는 듯하다.
이미 벽화라는 기법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오래된’ 시간성을 느끼게 한다. 여기에 더해진 추상적 표현들은 ‘지금’이라는 현재성을 느끼게 한다. 어쩌면 전통적인 벽화나 불화를 연구하면서 그것의 현대적 재해석을 끊임없이 시도해왔던 작가의 마음이 이렇게 작품 안에 투영된 것이 아닐까 한다. 언젠가는 이런 작품들이 실제 사찰 건축의 벽면을 장엄하는 날도 오지 않을까. 그렇다면 아마도 깨달음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더 풍성한 영감을 불어넣어줄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있다. 현재를 사는 사람들은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 경향이 보인다. 물론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양한 방면에서 과거의 방식을 사용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곧 그림이다. 그림은 지난 시대에 이미 이루어져 계통을 이루며 전해 내려오는 전통의 방식을 토대로 현재까지 여러 장르에서 사용되고, 변화하고 있다.
그림의 시초는 간단하게 시작되었다. 당시 사용된 기법이나, 재료는 극히 한정적이었다. 그럼에도 역사를 이어 차츰차츰 발달하면서 그 맥이 유지되고 있다. 그 중 불교회화[佛畫]는 우리의 전통을 담고 있다. 그러나 불교회화는 현재는 한정적으로 절을 비롯한 종교적인 현장에서만 보여지고 있지만, 그 기법이나 정신은 여전히 확고하다.
주지하듯이 현대의 불교회화는 다소 대중적이지는 않다. 종교의 색채가 강해서 대중들에게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고 생각된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 더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는 방식으로 여러 가지 현대적인 기법과 접목시켜 그림을 탄생시키고 있다. 불교회화가 전통적인 기법은 계승되면서 현대미술과의 어울림으로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정신을 가지고 이 그림이 조금은 편안함을 줄 수 있는 바람을 가지고 지속적인 작업을 하고자 한다.
- 김선용 작가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