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우수갤러리 기획전 K-ART Ⅳ


한국의 가정신앙, 

부루단지




2022.9.7 - 9.27  무우수갤러리 3,4F






부루단지 신화소는 말한다


부루단지는 신줏단지 조왕단지 제석단지 조상단지 할망단지 등으로 오랜 옛날부터 지역마다 달리 불려왔다. 흡사 조선 시대 농민의 메구굿이 풍물 풍장 굿 뜰밟이 진신밟이 두레 등 지역마다 용도마다 다르게 불리어온 것과 같은 이치다. 조금씩 다른 특징을 갖추고 있지만 비슷한 민속문화이다. 굿은 다양한 부족의 문화로 알타이 바이칼 요하 강 주변에서 만주와 아무르 연해주, 운남 라오스 티벳 네팔 베트남 한반도에 이르기까지 대동소이한 샤먼 문화이 다. 씨앗을 단지에 넣어 조상신과 토지신이 깃든 영혼단지는 샤머니즘 문화로 유사한 신화의 벨트를 이루고 있다. 이 부루단지 신앙을 이야기해보자는 요청을 받았다. 무우수갤러리가 이 주제로 전시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가 정신앙, 부루단지>전을 한다니 미술계에선 없던 일을 벌여서 반갑기도 하거니와 아무도 건들지 못한 낯선 기획전 시라 궁굼하다. 문화창의력이 경쟁력인 시대에 전통의 창조적 비전 찾기가 세계 한류 흐름을 더욱더 풍요롭고 깊 이 있게 하리라 본다. 창작은 늘 고통스럽지만 신선하다. 무우수갤러리의 도전적 창작예술기획 <한국의 가정신앙, 부루단지> 전이 성공적이길 바란다. 

‘부루단지’는 아주 오래된 신화적 상징이다. 전해지기로, 고조선 단군왕검이 아들 ‘부루태자’가 치수와 농사에 탁월 하여 그를 양자강 유역 도산까지 파견하여 오행치수의 법을 가르쳤다(BC2267년)고 한다. 부여의 해부루왕에게 서 부루단지 명칭이 전해왔다는 설도 있다. 부여는 고조선을 계승한 나라이니 그럴 것이다. 이런 설명은 문헌 고고 학적 설명이고 그 이전 신석기시대 농경문화가 시작되면서부터 형성된 신화의례에서부터 왔다는 추론도 가능하 다. 나는 두 가지가 다 일리가 있다고 보지만 후자에 좀 더 무게를 더 둔다. 연구학문은 무엇에 주목하는지 각도에 따라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문헌 인류 고고학적 관점에서라면 다른 문헌 자료는 거의 없으니 전자가 더 이해되겠 고, 유물 인류 고고학적 관점이라면 후자가 더 이해된다. 신석기시대 동북아 곳곳에서 출토된 빗살무늬 토기와 무 문토기가 자꾸만 눈길이 간다.

신화학은 한 발 더 들어간다. 신화학은 고대문화 해석력을 더 깊게 했으니 그것이 20세기 후반부터 형성된 융합적 인문학이다. 신화학은 서구중심 세계관으로 보는 근대인문학을 너머서 문화 다원주의로 세계문화를 보는 지평을 확 열어젖혔다. 인류학 고고학 민속학 어문학 기호학 미술사학 종교학 언어학 문학 미학 정신분석학 유전자 인종학 등 다양한 학문이 종합하면서 신화학이 형성된다. 그래서 신화학을 인류의 마지막 인문학이라고 부른다. 어쨌 든 신화학적 관점으로 풀어보려면 부루단지를 신화소로 놓고 다각도로 접근하는 연구자료를 두면서 신화적 해독 을 해 들어가야 할 것이다. 신화응 전설의 시대(철기시대) 이전이고 신성한 이야기이다. 종족의 정체성을 품은 종 족의 뿌리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신화소는 신화 이야기의 기본구조로 형태소나 음원소로 나뉜다. 부루단지는 우리 ‘씨앗 단지 신화’를 찾아서 뒤지고 들어가다 보면 만날 수 있는 귀중한 신화소이다. 다행히 이것이라도 있어서 씨앗 단지신화와 의례가 한반도 집안 곳곳에 남아서 비밀의 문을 어렴풋이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부루단지 앞에서 ‘멍 때리’고 선 우리 문화연구의 현주소다. 씨앗 단지의 신화학적 학문성과가 거의 없다. 이럴수록 예술이 멈추고 있을 때가 아니다. 요즘은 예술이 학문보다 훨씬 빠른 경향이 있다. 예술의 직 관 세계가 먼저 가서 꽂힌다. 직관적 해석과 판단도 인식론과 같이 중요한 인류의 지각 능력이다. 직관론으로 말 하고 행동하고 표현하는 것이 예술이다. 다행히 신화학이 도와줄 것이다. 예술적 직관과 신화학적 상상력으로 막 힌 겨레의 원형문화와 한국학의 어두운 장벽을 넘어 보자. 생각건대, 인문예술의 학예일치 정신으로 찾아가 보자 는 것이 이번 기획전의 의도 같다. 

신석기시대 농경문화가 시작하면서 인류는 씨앗을 구하기와 보존하기를 목숨처럼 중요시했다. 종자씨 보존 없이 씨족의 생존은 기약할 수 없었다. 숲에서 씨앗을 채취하고 밭에 심은 햇곡을 받아 보아서 보관해야 다음 해에 농사 를 기약할 수 있다. 이런 실용적 목적을 위해서도 종자 씨를 보관하는 풍습은 이어졌다. 처음에는 갈대로 만든 광 주리나 가죽 주머니에 씨앗을 보관하였을 것이다. 

토기로 단지를 만들면서 그 의미도 달라졌다. 씨앗 단지는 실용적인 의미 외에도 가족들의 목숨을 지켜주고 농사 의 결실을 잘 보게 도와주는 의미가 있게 되었다. 대지를 은유하는 신화가 생기면서 상징과 의례가 생긴 것이다. 의례와 상징이 생기면서 대지 신화의 서사가 만들어졌다고 본다. 지금 남아 있는 ‘씨앗 단지’신화소는 두 가지 버전 으로 전해진다. 하나는 환단고기의 고조선 이야기에 있다. 단군왕검의 아들 ‘부루단군’이 돌아가실 적에 나라 사람 들이 그의 치적을 추모하는 제사를 갖추어 집 안에 터를 잡고 제단을 설치하고 토기에 곡식을 채워 제단 위에 놓고 부루단지라 불렀다는 것이다. 북방계 동이족은 부모 조부모가 돌아가시면 집 마당에 가묘와 제단을 만들어 모셨다가 날이 풀리는 날 유골을 추슬러 뒷산 들녘으로 나가서 2차장계(풍장 조장 골자)를 지내기도 한다. 

또 하나는 집을 지키는 가신 중 조왕신의 영혼을 집에 성주신과 함께 모시게 되는 의례가 최근까지 지신밟기에서 나오는데 거기 조왕신이나 성주신의 상징이 조왕단지 성주단지이다. 고대 동이족들은 동쪽에서 뜨는 밝은 해를 숭상하는 인류족들이다. 고조선이 단군왕 좌우로 풍백과 우사를 두어 바람과 비의 흐름을 미리 파악하여 농사에 대비하는 왕정을 한 것만 보아도 나라에서나 가족에서도 농사의 기본인 씨앗을 섬기는 농경문화가 형성되고 있었 다. 나라 이전 민간문화로 형성되면서 나라의 문화가 된 것이 부루단지 신앙 같다. 신석기 농경시대부터 이미 농사 천하지대본(農事天下之大本)이었을 것이다.

부루는 해부루, 밝은 햇빛의 왕이란 뜻이다. 북녘에서는 지금도 하얀 말을 부루라고 한다. 천손(天孫)신화지대의 해 달 별 숭배는 조상의 뿌리와 연관되는 창세신화가 많다. 고대 동이족 왕은 시조 왕들의 이름을 밝음, 빛, 해를 상 징하는 경우가 많았다. 환인 환웅 단군 탱그르 박혁거세 해모수가 다 밝은 해를 뜻하는 왕명이다. 북방계 동이족은 농사도 안되는 땅에서 채집 수렵과 목축을 하며 살아왔다. 순록의 가죽을 덮은 춤 집에서는 언제나 불화덕을 가운 데 두고 불을 꺼뜨리지 않게 보존하는 풍습이 있다. 이 임무는 며느리에게 주어진다. 부엌은 부녀가 일하는 곳으로 화덕 불을 피우는 일이 살림에서 제일 중하다. 지금도 몽골에 가면 게르(몽골 초원의 집) 가운데에 철로 화덕 난로 를 만들어 놓았지만, 철기시대에는 돌로 둘레를 쌓고 숯불단지를 두었다. 바이칼호수 곁에 이루쿠츠크 민속박물 관에 가면 화덕에 의인화해서 만든 불의 신상을 놓아둔 것을 여럿이 볼 수 있다. 이 화덕은 불의 신이 좌정한 신성 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불단지와 씨앗 단지는 둘 다 생명의 근원을 모시는 단지다. 생명의 원형을 모시는 단지란 것 을 알 수 있다. 목숨을 부지하게 하는 생명단지로 ‘생명의 신성한 힘’을 신앙으로 모시게 된다. 유라시아의 고대족 은 조로아스터교를 믿던 서아시아 사람들만이 아니라 대부분 불의 신을 숭상했다. 불씨와 씨앗의 생명단지는 모 두 생명의 원형을 상징한다. 살림살이는 불과 씨앗으로 명줄을 이어가기 때문이다. 목숨줄을 담는 단지, 즉 목숨단 지가 신줏단지 조왕단지 할망단지 부루단지라 할 수 있다. 지역마다 다 다르므로 이 글에서는 그중 하나를 대표로 해서 부루단지로 또는 씨앗 단지라고 부르겠다. 부루단지 신화소는 수렵목축문화를 지닌 종족이나 농경문화를 가 진 종족이나 있었다고 본다면, 굳이 청동기 시대 국가 발생기 고조선으로 상한선을 긋고 국가 이전 단계에는 존재 하지 않았을 것이라 단정 지을 필요가 없다. 구석기시대 동굴에서 불을 피우기 시작했고 동물은 잡아 굽고 씨앗으 로 배를 채우면서부터 생명 주머니 또는 생명단지를 소중히 생각하는 문화가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 원형 의 물성(물, 불, 씨앗)의 영혼을 경배하는 신화와 의례도 이미 있었다고 본다. 

신석기시대를 신화시대라 부른다. 철기시대 신과 인간이 분리되면서 신인간(神人間) 개념이 점차 사라지고 남권 주의 철기 국가의 전설의 시대가 된다. 모든 만물에 영혼이 깃들고 있다고 믿는 만물 신령의 범신문화는 왕권의 영 혼 위계로 재편되었고, 산업화를 추구한 근대주의로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물질에는 마음이 없다고 믿는 현대인과 만물신령관을 믿었던 고대인은 다르므로 신화시대는 오늘의 소설 시대와 세계관이 다르다. 레비스트로 스는 이를 ‘야생의 사고’라 했다.     

농경작을 대대로 이어가기 시작한 신석기시대 씨앗을 담는 장독은 토기가 만들어지면서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빗살무늬 토기도 일종의 장독 항아리 같은 기능을 하는 것이다. 강가 모래톱에 불을 피우고 흙에다 꽂아서 보존 하던 음식물저장 토기가 있었다. 더 고온으로 구워진 도기 항아리가 나오면서 본격적인 장독대를 만든다. 항아리를 올려놓게 되면서 우리 겨레의 장독문화가 진화했다. 이 중 가장 귀한 종자 단지 꿀단지는 혈거움막에서 가옥으 로 이동했다. 의식공간이 발전하면서 보다 안전한 가옥의 실내로 들여왔다. 그것도 아이들 손 안 타게 맨 위 시렁 에 보존했다. 같은 음식물저장 항아리라도 바깥 장독과 분리해서 보관하는 것이 더 안전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부루단지 신줏단지 조왕단지 할망단지는 다 장독문화의 일부분으로 볼 수 있다. 허니 부루단지 신화소는 장독 신 화 전체 속에서 보아야 타당하다. 지역마다 달리 불리는 단지 이름은 그 나름 서로 다른 씨족 부족사회 정체성을 내세우는 단지 명칭이라 이해된다. 오늘날까지도 다른 이름으로 씨앗 단지를 부르는 것은 한반도에 서로 다른 부 족 정체성을 갖은 씨족들이 많이 모여 살게 된 것을 말한다. 한반도는 단일 종족으로 형성된 민족문화가 아니다. 나는 삼십여 년 전 남도 민속지를 여행하다가 제주도까지 간 적이 있다. 거기서 민속박물관을 관람했는데 그곳에 서 낡고 오랜 흑백사진 하나를 발견했다. 오래된 장독대다. 장독들은 없이 텅 비어 있었는데 희한한 것은 집 집마 다 두었다는 장독대가 마을이나 집 안에 있는 것이 아니고 바다를 배경으로 한 해안절벽 끝에 있었고 뒤로는 푸른 바다가 보였다.

앗, 장독이 신단 같으네! 

장독이 한 집 장독이 아니고 마을 공동의 장독이네! 바다를 향해, 하늘을 향해있네!

이 세 가지 직관이 나의 장독문화의 관점을 더 아득한 고대 장독문화를 보게 했다. 이제는 장독 신화는 사라지고 장독대만 남고, 단지 신화는 없어지고 단지만 남았다. 우리는 이 빈 단지 앞에서 인문예술의 또 하나 모험을 펼치 고 있다. 깜깜한 과거에 기원하지만 어떻게 보고 행하느냐에 따라 우리 민족문화의 '오래된 미래' 문화를 읽어 낼 수 있으니 말이다. 

씨앗 단지는 국가형성 이전에 생긴 신화와 상징과 의례가 깃들고 있다. 그 중 의례와 상징만 남고 신화는 사라진 근 대주의 오늘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나 <오랜미래신화미술관> 학예실에서 우리 대지 신화 연구를 하다가 관련 지신 밟기 신화를 드디어 찾았다. 지신밟기는 대지신화의례인데 장독굿 조왕굿 성주굿 마당굿을 연구할 적에 그 뒷배가 되는 신화를 못 찾다가 육지에서 사라진 지신밟기 신화를 드디어 제주 신화에서 찾게 된 것이다. 제주 본풀 이 굿에서 문전본풀이 신화에는 지신밟기 의례의 연원이 되는 신화가 있었다. 진신발이 의례는 마을 신화지대를 다니며 경배하는 순례행위이다. 가신이 깃든 가정에 들어서서 성주신, 조왕신, 장독신, 측간신, 마당신, 문전신에게 고사반으로 절을 올린다. “오방신장 합다리굿에 명가복가로 굿을 치소~” 하는 의례 불림은 육지 남도 풍물에도 남 아 있는데 오방신장의 신화소가 문전본풀이에 있었다. 이 가신들은 우여곡절 끝에 몰락할 집을 부흥하고 지키는 가신들이 되었다는 신화가 문전본풀이다. 여기에 조왕신도 있고 측간신도 있고 성주신도 나온다.

씨앗 단지는 조왕신(조상 할망신이나 부루신)을 상징한다. 지신밟기(호남은 뜰 밟기, 중부지방은 마당 밟기, 영남 은 지신밟이라 한다) 전체는 집 밖으로 자연신(당산목, 마을 우물, 산신, 논밭, 마을 한마당 등)을 모시며 문안을 먼 저 드리고 집안으로 들어서는 집 곳곳에 가신을 모시는 풍물굿 의례를 말한다. 집 밖이라고 무조건 자연신을 섬기는 것이 아니다. 당 숲, 그 당산나무에는 조상의 영혼이 깃들고 있는 신화소를 품고 있다. 마을에서 자연살이를 조 상 대대로 해왔으므로 마을과 자연을 모두 성지로 보는 성지순례가 지신밟기 신화의례의 본질이다. 

씨앗 단지는 할망단지 조왕단지가 언표하듯 여조상님을 모신다. 모계사회의 흔적이 보인다. 여기에는 음식의 기 원 신화도 깃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제주 문전본풀이신화에는 조왕신과 더불어 또 하나의 가신이 있는데 측간신 이다. 성주의 첩이었던 노일제데귀일의 딸이 여산부인(성주부인)을 죽이고 집을 빼앗으려다가 일곱 아들에 의해 죽는다. 측간에 토막 살해가 되어서 버려지지만, 이 토막사체들에서 돼지먹통, 물고기, 해파래, 전복, 구데기 등이 나온다는 신화가 전해온다.  살해된 시신이 생물로 재탄생하는 신화는 아시아 남방계 신화에서 본다. 이것은 인도 네시아 몰루카 제도 세람섬에서 전해온 하이누웰레 여신 신화와 같은 희생과 부활의 신화구조로 되어 있다. 이 신 화를 신화학에 소개한 하이누웰레 신화를 간단히 살펴보자. 무성한 야자 숲에서 나온 여신은 부족의 축제에서 기 쁨과 선물을 주는 여신으로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이를 질투한 남자들이 살해하고 여신의 아버지는 시신을 조각 내어 숲에 버리니 여신의 몸을 닮은 구근작물 농작물이 계속 태어났다는 이야기다. 이와 같은 여신의 희생과 부활 의 신화소를 갖은 곳이 세계인류 곳곳에 나타난다. 아메리카 인디안의 옥수수신에서도 발견된다. 사냥이 안되서 굶어죽게 되자 아이들 어머니가 내가 죽을 터이니 내 시신을 끌고 다니면 몸이 흩어져 옥수수가 될 것이다 유언한 다. 어머니 시신이 옥수수로 환생했다는 신화다. 희생과 부활 여신신화의 세계적 보편성이 세계 곳곳에 있는 것이 다. 이를 하이누웰레 형 신화라는 학명이 붙게 되었다. 음식 기원 신화를 여신의 희생과 부활로 보았던 신화는 씨 앗 단지와 유사한 여신 신화소이지만, 하이누웰레 여신 신화는 죽어 다시 사는 생물의 죽음과 부활을 은유한 점에 서 씨앗 단지 신화소와 다르다. 이 둘은 다 신석기 농경문화의 시작과 관련 있다. 하이누웰레 신화는 죽임과 부활 의 구조로 구석기의 말기에서 신석기로 농경문화가 발생하던 시기, 숲을 파괴해서 밭을 만들던 농경 초기의 신화 이다. 반면 씨앗 단지는 모심과 보존을 중시한다. 토지신 조상신 대우를 받는 본격적인 농경이 시작되는 시대다. 이 신화는 본격적인 신석기 농경시대 어머니 대지 신화 유형이라 할 수 있다. 하이누벨레 유형 신화소와 씨앗 단지 유 형 신화소의 차이는 전자는 버려진 죽음 속에서 태어나는 부활을 신성한 힘으로 보았다면, 후자는 모심과 보존으 로 원형의 형태소를 유지하는 신성한 지킴의 힘을 은유하는 신화다. 여신, 그 포태(胞胎)의 성질은 희생과 부활의 포태성, 즉 여성성의 특징을 신성시하는 신화소이다. 인류문화는 철기 문명으로 신석기문화가 청산되어버린 것처 럼 보이지만 지금까지 우리 삶 속에 원형이 남아 전하고 있다. 씨앗단지 신화는 어머니 할머니로 이어온 모성 문화 로 장독비나리와 조상단지의 모심과 보존의 의례(손빔)로 이어왔다. 기록문화보다 구비문화로, 권력의 문화보다 야생의 문화로, 남권주의 문화보다 여성성의 문화로 씨앗 단지(부루단지) 신화가 전해왔다. 씨앗 단지는 생명의 원 천인 어머니 대지 신화 상징에 다름 아니다. 

정화수 떠 놓고 촛불 밝히던 우리 어머니 할머니의 문화 장독 신화의례와 부루단지 의례는 아주 오래된 것으로, 국 가 성립 이전에 신석기시대의 토템 신앙문화에서 시작하였다. 종족마다 특별히 혈연적 인연이 깊다고 믿는 동식 물에 대한 믿음이 토템이다. 인류의 음식문화는 토템 신앙과 깊은 관련이 있다. 살기 위해 생명을 죽여야만 하는 먹 이사슬이 원죄처럼 인류는 지금도 상흔처럼 각인되어 있다. 절하고 죽이고 모시면서 잡아먹는 ‘밥이 곧 제사’ ‘사냥 이 곧 굿’이었다. 인류의 식문화는 먹는 생물들과 피로 맺은 인연이 얽혀 있는 셈이고, 허기짐과 포만감, 고통과 흡 족의 이율배반적 모순이 깃든 것이 고대 식문화에는 숨은 채 드러나 있다. 도저히 인간이 외면할 수도 없고 해결도 

못 하는 신의 영역이 토템 문화에는 있다. 토테미즘은 먹이사슬로 얽힌 동식물과 인간의 관계를 타부와 숭고의 신 앙으로 만든 고대문화다. 동학의 이천식천(以天食天), 즉 “하늘이 하늘을 먹는다.” 이 모순적 진리는 생명 영위의 지 엄한 질서를 지키며 섬기고 따르는 타부와 믿음의 문화가 식문화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토템 문화를 인간중심주 의 사상으로 생각 없이 파괴하고 잊어버림으로써 금도가 깨진 지금은 지구자원의 남획 시대를 기어이 열렸다. 타 부의 사슬은 미신이란 이름으로 다 타파되고 생물의 모심은 인간의 탐욕이면 무조건 용인되는 자본 천하지대본의 ‘자유의 시대’가 열려 오늘날 지구자원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글을 마무리하며 다시 정리하자면, 부루단지는 신석기 농경문화 시대부터 나온 신령한 씨앗 단지였다. 부루단지 에 얽힌 신화소가 형태소와 의례로 남아 전해오고 있어서 신화학으로 풀어 볼 수 있게 되었다. “어두운 밤 보이지 않은 별은 자신을 들여다보는 눈을 가진 자만이 그 별이 보인다.”라고 정희성 시인은 노래한다. 평범한 의식주 살 림 문화에는 생명을 지키고 살리는 문화가 속 깊이 담겨 있음을 부루단지는 말하고 있다. 너무나 평범해서 무심히 지나쳐버린 ‘애물단지’가 생명의 씨앗을 상징하는 ‘목숨단지’이고 생명 문화의 그릇임을 깨닫게 한다. 참 이상도 하 지, 바리데기 신화에서도 병든 아버지의 약을 구하러 서천 서역 지옥까지 가서 약수와 살살이 꽃을 갖고 와서 아버 지에게 저승 가서 길러온 물을 먹이고 꽃향기를 들이쉬게 하니 죽을병이 나았다니! 그 평범한 물이 생명의 약수이 고, 녹색의 숨살이꽃이었다. 평범한 물과 공기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다는 진리의 평범성, 또 역설의 진리를 말하 고 있다. 우리네 살림살이에 이어온 씨앗 단지가 생명의 근원을 지키는 ‘목숨단지’라니! 이 역설의 진리를 부루단 지 신화소는 감춘 채 들어내고 있었다. 

21세기는 남권주의 철기문명이 종언을 고하고 녹색문명을 갈망하는 현대 인류는 문명전환이 가능할 것인가. 우리 네 일상 속에서 평범한 살림문화로 남아 있는 세계 속 ‘어머니 대지 여신 신화’를 다시 주목한다. 모계사회가 사회 의 중심을 이루면서 포태문화를 사랑과 평화의 신성 문화로 전했다는 BC 6000년~1500년 저 다뉴브강 젖줄 발 칸지역의 ‘여신 문명’을 새삼 다시 보게 한다. 어디 발칸지역뿐이겠나, 세계 인류는 AD 시대 철기 문명 역사만 배우 고 50만 년의 인류족사를 외면했기 때문에 지금 우리는 ‘씨앗단지’의 신화조차 낯설게 보게 되었다. 

오늘날 생물과 무생물에도 마음이 있음을 외면하고 있는 인간중심주의 세계관으로는 지구환경위기를 벗어날 길 이 보이지 않는다. 코로나바이러스 창궐로 지구촌이 펜더믹에 빠지고 기후위기에 직면한 지구촌 인류는 미래가 어둡다. 인류는 다시 새 출발 하는 마음으로 지구위기 앞에 섰다. 원형문화에서 무엇을 찾아서 어떻게 해석할 것 인가? 문명전환시대에 이번 무우수갤러리 기획 <한국의 가정신앙, 부루단지>전은 한국발 여신 문명의 도래를 꿈 꾸고 있나 보다.


- 김봉준(화가, 오랜미래신화미술관장)



시간이 지나면서 어제의 일들이 잊혀져가고 또 다른 새로운 일들을 경험하고 그렇게 인생 을 켜이 쌓아간다. 그림은 오랜 시간 가슴 한편에 붙잡아 온 유년의 기억들로 그 기억의 미 로를 하나씩 찾아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작품은  포괄적으로 우리네 삶과 예술이 일원의 진리 그 자체와 동일한 것임을 가리킨다. 성주단지.

이것은 10월 상달 이면 정성을 다해  감사함을 전하는 행사다. 기원을 담고, 기대고 싶었던 마음, 그리고 앞서 가신 어머님을 향한 그리움이 올곧이 담기고 시간을 배회하는 마음이 담 긴다. 언뜻 보기에 우리네 기억의 일부지만 실상은 "마음의 진경'이면서  질박한 삶의 온도 가 감동을 만든다. 그곳에 영혼의 촉수가 머물 길 바라며, 작품을 통해 작은 감동이 일길 바 라고 궁극적으론 소리가 되고 공명이 되어 퍼져나가길 소원 한다.

공(空)은 모든 것에 대한 비움의 드러남이요, 반대로는 체움의 여백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그렇게 되기 위해선 결국 자신 스스로가 모두 비워지는 공(空)이 되어야 함을 믿는다. 나 자신을 찾아서 마음 한 자리를 태우고 태우듯 화면을 태워서 비워본다. 어느덧 작업은 나 를 표현하고 나는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것은 곧 기다림이고 외로움이며 사랑이다.

- 김경현 작가노트



정화수 떠 놓고 촛불 밝히던 우리 어머니 할머니의 문화 장독 신화의례와 ‘씨앗단지’ ‘부루 단지’ 의례는 신석기 농경시대 어머니 대지 신화 유형으로 생명의 원천인 어머니 대지 신 화 상징한다.

씨앗단지 신화는 어머니와 할머니로 이어온 모성 문화로, 장독비나리와 조상단지의 모심과 보존의 의례(손빔)로 이어왔다. 기록문화보다 구비문화로, 권력의 문화보다 야생의 문화로, 남권주의 문화보다 여성성의 문화로 씨앗 단지(부루단지) 신화가 전해왔다. 

오늘날 우리네 일상 속에서 평범한 살림 문화로 남아 있는 세계 속 ‘어머니 대지 여신 신화’ 를 다시 주목해 보고자 한다. 남권주의 철기 문명이 종언을 고하고 녹색 문명을 갈망하는 현 대 인류사에 과연 문명전환이 가능할 것인가? 이번 무우수갤러리 기획 <한국의 가정신앙, 부루단지>전은 바로 한국발 여신 문명의 도래를 꿈꾸고 있는 것이 아닐까? 

- 김봉준 작가노트



“사랑합니다”는 호랑이를 의인화한 가족간의 사랑을 모티브로 구상되어진 작품으로 석채 (자수정)를 사용해 거칠고 투박한 표면에 독특한 마티에르를 강조한 표현기법으로 호랑이 를 소재로 따뜻하고 정감있는 화면을 그려 순박하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랑, 그 리움과 같은 인간사의 단편을 해학적으로 풀어내어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은근한 서정으 로 담아내 잃어버린 동심과 감성을 표현하여 현대인들의 상처와 고된 일상에서 잊고있던 주위의 작은 행복을 일깨워주고 우리네 삶의 행복한 기운과 이야기를 전달해 주고자한다. 

- 모용수 작가노트



素祭, grain offering

지난 여름,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아우들과 함께 우리 곡식 잘 자라게 해달라고 마음으 로 빌며 모냈다. 

두 손 모아 기도드린다.

오리들은 뜨거운 태양 아래 열심히 논물을 헤엄치며 벼를 지키고, 여름밤 귀뚜라미들도 통 성으로 잘 자라라 곡식아 비는 우리들 바램을 대변한다. 

제법 가을이 익고 누우런 금싸라기마냥 송글송글 알맹이들이 달렸다. 기도만큼 꽉 찬 열매 들. 감사하다 감사하다. 

이 마음들 모아 우리 살림 가장 깨끗한 질그릇 닦아, 그 안에 정성 담아 알곡들을 채웠다. 귀한 자리 찾아 올리는 제사, 그 항아리 참 작으나 어여쁘다.

어느 밤, 아버지도 어머니도 아우도 곤히 잠이 들 때, 잠잠히 기도를 들으시는 분 천사를 보 내왔다. 착하다 너희의 소박함아, 착하다 너희의 감사함아, 고운 마음 내가 소중히 받겠노라. 고요한 가을 밤 전령의 수고에 반딧불마저 춤을 춘다.

보름달 너븐 품 안에 식구들 옹기종기, 은혜를 나누며 하하하 호호호.

- 문활람 작가노트




소반은 어머니의 마음 같다. 정성껏 차린 음식을 대접하고, 달 아래 정한수를 떠놓고 가족 의 건강과 복을 비는 어머니의 마음. 그래서 인지 투박하고 거친 소반에도 우리는 따뜻함 을 느끼나 보다.

이 작품은 우리의 추억과 정서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이런 상징성에 새로운 소원 하나 를 상상하며 소반 위에 얹었다. 코로나로 지치고, 만나서 정을 나누는 것도 제한된 요즘, 푸른 숲 속 물가에서 힘찬 날개 짓을 하는 물총새 한 쌍은  세상의 어떤 물질적 부귀영화보 다도 우리에게 행복감을 전한다.

진채화는 비단에 천연 재료를 써서 그린 그림이다. 비단 뒤에서 배채를 할 때, 중앙을 비워 원근감을 표현하였고 비단 앞면에서는 염료와 석채를 이용하여 여러 겹의 효과를 냈다. 과 거 궁중에서만 쓰던 귀한 붉은 소반은 주사를 여러 번 칠하고 금으로 포인트를 주었다. 대부 분의 채색은 석채를 써서 돌가루의 입자감과 반사되는 색채감을 느낄 수 있다.

- 박경화 작가노트




밥은 생명이며 삶이다. 한해의 농사를 지으며,자연의 순리에 따라 일하면서 가꾸고, 거두는 과정에서 수확의 산물로 곡식을 얻는다. 

감사한 마음으로 우리는 밥을 먹으며 건강하게 살아간다.

그만큼 밥에는 의미가 많다. 단지 한그릇의 밥이 아닌 사람들의 삶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밥 한 그릇을 먹으며 가족간 사랑을 나누어 먹고, 소중한 삶을 영위해 나간다.

그리하여 밥한그릇의 그림에는 이런 것들이 담겨 있다.

밥 한 그릇에 담긴 쌀알 하나하나가 꽃처럼 아름답고 의미가 있다는 생각으로 꽃밥을 그렸다. 수확한 곡식을 소중하게 부루단지에 담아두는 것처럼 ,좀더 가치있는 인생이 되기위해 매 일 먹는 밥한그릇에 진지한 생각을 하며 그린다.

김지하 시인은 ‘밥은 여럿이 같이 먹는 것,하늘을 몸에 모시는 것’ 이라고 하면서 서로 나눔 을 이야기 한다.

밥을 그리는 화가와 그림을 보는 사람과 함께 삶과 나눔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싶다.

- 설종보 작가노트



어머니에 대한 소고

어릴 적 어머니의 시렁에는 아롱다롱 단지들이 모여있었다. 그중 한 녀석은 머리에 흰 고깔을 쓰고 있었다.

시루에서 김이 모락모락 오를 때쯤 떡 익는 내음이 부엌을 타고 흘러나온다. 어머니는 소반에 팥시루를 얹으시고 淨寒水 한 사발 떠 장독대로 가신다.

머리 조아려 연신 허리를 굽히시는 어머니의 뒷모습 어린 마음에도 뭔가 모를 애잔함이 밀려오는 밤이었다.

- 임서령 작가노트




자식을 위해 정안수를 떠 놓고 기도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담아보았습니다.

집에서 늘쓰던 그릇이지만 깨끗한물을 떠서 정성을 다해 기도하는 어머님은 그릇에 비친 달과 해를 보며 낮에도 밤에도 정성을 다하여 자식과 가족의 안녕과 성공을 기원했지요. 일월오봉도는 해와달이 한께 그려져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궁중화입니다.

어머니는 나의자식이,가족이  왕의 부귀와 영화 그리고 권력을 바랬을수도 있고, 그 어떤 것 보다 내자식이나 가족이 소중한다는 마음이 담겼을수도 있습니다.

저는 민화와 옛것을 함께 그리거나 오브제로 놓아 새로운 가치로 접근하는 것을 추구합니 다.

그 옛것은 자수일수도 있고 나무일수도 있고 다양한 접근을 시도 합니다.

이번에는 왜사발을 그림의 일부로 받아들였고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 마음과 정성에 대해 표현해보았습니다.

부루단지의 주제에 대한 접근은 저에게는 정안수그릇으로 해석되었고, 정안수는 종교를 초월한 성수로도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 홍경희 작가노트